고구려 역사와 중국의 ‘동북공정’ [고구려사 명장면]

2022. 12. 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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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회

얼마 전 대부분 언론에서 중국 국가박물관 전시에서 한국사 연표를 왜곡한 사실이 크게 보도한 바 있다. 역사왜곡 논란을 빚은 중국 국가박물관의 전시는 7월 26일에 개막된 한중일 삼국의 고대 청동기 문화를 소개하는 ‘동방길금(동방의 상서로운 금속)-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이다. 한중 수교 30주년과 중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도 공동으로 참여한 전시였다.

그런데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전시 설명용으로 만들어준 한국 역사 연표에서 고구려와 발해의 건국 연도를 멋대로 빼고 전시를 한 것이다. 이를 9월 13일에 국내 한 언론사 특파원이 발견하여 보도하였고,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은 그제서야 알고 뒤늦게 부랴부랴 연표 수정과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충국 국가박물관은 단지 한·중·일 역사 연표를 철거하는 미봉책으로 마무리지었으며, 우리측 국립중앙박물관이 제공한 유물을 포함한 전시는 계속되었다.

중국 국가박물관에 전시된 한국고대역사연표
한국사 연표. /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이 사건 보도에서 많은 언론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역사 왜곡 사태는 ‘동북공정’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역사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래서 우선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이 무엇인지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20년 전인 2003년 하반기에 중국의 ‘동북공정’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온나라가 “고구려역사 지키기”에 들끓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동북공정’이란 말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요즘 분위기는 필자에게는 격세지감으로 다가온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약칭으로 부르지만 공식명칭은 ‘동북공정(東北邊疆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이란 긴 이름으로, “동북 변강의 역사와 현재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프로젝트”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2002년~2007년 5년 동안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란 기관이 주도한 연구 프로젝트로서,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 동북 지방의 역사, 지리, 민족 문제 등과 관련된 여러 사안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동북지역이란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이란 동북 3성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만주’라고 부르는 곳인데, 중국에서는 만주라는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동북 3성’이라고 통칭한다.

이 ‘동북공정’ 프로젝트에는 중국의 강역이론 연구, 동북지방사 연구, 동북민족사 연구, 고조선?고구려?발해사 연구, 한중관계사 연구, 중국 동북국경지역과 주변 국가와의 관계사 연구 등 한국 역사 또는 한반도와의 관련 연구가 이 사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 이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였던 고구려를 비롯한 고조선, 발해 등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주제가 포함되었는데, 동북공정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우리의 고대사 인식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뒷받침하는 역사관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統一的 多民族國家論)’이다. 1980년대 전반에 일반화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은 “중국은 현재뿐 아니라 2000년전부터 통일적 다민족국가를 형성하였기 때문에, 현재 중국 영역내에 위치한 주변 소수 민족은 다민족국가인 중국의 구성원으로서, 중원 대륙의 통일?분열에 관계없이 중원 왕조와 항상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밀접한 연계를 가지며, 중국 영역의 일부를 구성하고 중국사에 공헌하였다.”는 주장이다.

이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은 중국의 현실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우리와는 달리 중국이란 국가가 한족(漢族) 이외에도 55개나 되는 많은 소수 민족(小數民族)을 포함하고 있는 나라이다. 현재 중국 입장에서는 소수민족이 분리 독립하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초래되기 때문에,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도 중국 내의 모든 민족의 융합과 통일을 표방하며 소위 ‘중화민족(中華民族)’이라는 새로운 민족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소위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이란 논리가 그래서 나타나게 되었다. 이 주장은 다수의 소수민족을 포함하고 있는 현 중국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의 소수민족 정책 방향을 추진한 것이지만, 이러한 ‘현재의 논리’를 ‘과거의 역사 해석’에 적용함으로써, 심각한 역사 왜곡의 폐해를 낳게된 것이다.

이러한 ‘중화민족론’과 관련하여 중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국가주의 고양의 일환으로 여러 형태의 역사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과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中國古代文明[中華文明]探源工程)’이 대표적이다. ‘하상주단대공정’은 1996년 5월~ 2000년 9월에 추진된 것으로 일종의 ‘중국 역사 늘리기 작업’이다. 그 결과 중국의 역사 기원을 1200여 년 가량 더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2002~2005년에 추진되었던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은 전설 시대를 역사 시대로 전화시켜 중화문명의 유구함을 통하여 중국 인민의 자긍심과 중화주의 열정을 고취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이처럼 현재 중국에서 추진하는 역사연구 프로젝트는 ‘중화민족’의 민족적 자부심을 북돋울 수 있는 국가적 상징을 창조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동북공정도 그러한 역사프로젝트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와같이 중국 정부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과 중화민족론‘을 기초로 하는 국가주의 애국주의 역사관, 신중화주의 문명사관을 통해 ‘국민적 통합’과 ‘영토적 통합’을 확고히 하려는 다양한 정책을 실현해왔다.

이렇듯 중국의 ‘동북공정’을 변강 정책이나 중국 애국주의 역사관, 신중화문명사관의 맥락에서 보면 결코 2002년에 갑자기 돌출한 연구프로젝트가 아니다. ‘하나의 중국’을 유지하기 위해서 중국 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한 것은 ‘변강’ 지역과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화 전략이었다. 동북공정은 2007년에 종료되었지만, 그것이 동북공정을 추진한 의도와 정책 방향이 종료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바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동북공정 이후’가 시작된 것이다.

5년 동안 진행된 ‘동북공정’의 결과를 놓고 중국학계가 스스로 자평하고 있듯이 110여개 과제 수행 그 자체만으로도 동북공정이 의도한 성과를 거두었고, 여기에 향후 연구 기반이 확보되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즉 동북변강역사와 동북민족관계학 연구 인력이 대거 배출되었고, 또한 동북3성의 대학과 연구소 등에 관련 전문 연구기관이 다수 설립되었으며, 이와 관련한 학과체계가 형성되었다. 다시말해서 동북공정을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 것이다. 이는 동북공정 이후에도 동북공정에서 제기한 연구 방향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고, 또 추진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사실 우리가 더욱 주목할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그리고 동북공정 이후 고구려 역사 부분에 한정해서 보아도 여러 변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학계에서 고구려사 귀속 문제를 둘러싼 연구 방법론에 대한 모색이 활발해지고 있으며, 한국학계의 비판에 대한 대응도 늘어나고 있다. 민족공동체와 국가공동체를 구분하여 고구려는 ‘독립’성을 갖는 민족공동체이지만, 중국이라는 하나의 국가공동체에 속한다는 논리도 등장했다.

중국학계 대부분 학자가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는 논지를 견지하고 있지만, 일부 학자들은 여전히 고구려역사가 중국사와 한국사 양쪽에 귀속된다는 ‘일사양용론(一史兩用論)’, 역사공유론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일사양용론’자도 역사의 범위와 귀속의 근거로 강역론(彊域論)을 주장하고 있다. 강역론은 “통일적다민족국가론”에 기초하여 오늘날의 강역 범위가 역사의 귀속을 결정짓는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동북공정 단계에서부터 역사적 강역론이라고 해서 현재의 강역 범위를 넘어서는 역사도 중국사에 귀속시키는 논리가 나타났다. 즉 한반도 북부는 현 중국 영역 밖인데, 이 지역이 과거 한군현의 영역이었다는 역사적 강역론으로 고구려사 전체를 중국사에 귀속시키는 논지이다. 따지고 보면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을 벗어나는 논지라는 점에서 동북공정 이후를 경계해야하는 주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만주지역의 고구려 역사 고고자료를 독점하면서 이들 자료를 중국측의 관점에서 정리하고 있는 상황도 우리에게는 심각하게 다가온다. 이와 관련하여 중원문화의 동북지역 전파에 초점을 맞춘 연구도 증가하고 있다. 또한 ‘장백산문화론’을 통해 숙신-여진-만주족을 동북지역의 역사주인공으로 부각하면서 상대적으로 고구려 발해 역사를 축소시키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어 이 역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동북공정이 마무리된 이후 동북3성 지역에서는 다수의 박물관이 신설 개관하였다. 이들 박물관의 전시 맥락에서 상대적으로 고구려사의 위상이 소략하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중원문화의 영향이나 중원세력의 진출, 중원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 복합성 등이 강조되는 등 ‘중국문명론’의 틀에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축소하거나 아예 그 역사적 흔적을 지우려는 흐름을 읽어볼 수 있다. 따라서 동북공정기와는 다른 또다른 형태의 역사왜곡이 진행되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올해 중국 국가박물관의 한국역사 연표 왜곡 사건은 이러한 동북공정과 그 이후 중국측의 고구려사와 발해사에 대한 인식이 전시를 통해 돌출되었을 뿐이다. 한국 역사 연표에 고구려와 발해를 다시 넣지 않고, 한·중·일 3국의 역사 연표를 모두 철거하는 방식은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한국 역사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자신들의 입장을 전혀 바꿀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표시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측의 미봉책에 더 이상의 문제 제기나 항의없이 전시를 계속한 것은 두고두고 우리측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물론 3국이 함께 참여하고 또 삼국간의 우호를 기념하는 전시이니만큼 우리 측 입장만을 내세워 우리 유물을 철수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측의 태도는 고구려와 발해 역사의 귀속 문제가 앞으로도 언제든 터져나올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번 사안처럼 전적으로 중국측에 귀책 사유가 있을 때 우리의 입장을 보다 강경하게 보여줄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 측에서도 이점을 충분히 고려하고 대응했으리라고 믿고 싶다.

이번 사태에서도 보듯이 고구려와 발해 역사의 귀속 문제는 한국과 중국 양국 사이에서 역사 갈등의 요소가 될 수 밖에 없다. 양국의 역사인식 차이는 무엇보다 역사 기술의 주체인 ‘민족’의 개념 차이에 있다. 중국의 민족은 한족을 비롯한 56개의 민족이 융합하여 만든 ‘중화민족’으로 이는 곧 현재의 정치적 민족인 셈이고, 한국에서의 민족은 혈통적?역사적 민족 개념이 중심을 이룬다. 이 둘은 쉽게 그 접점을 만들기 어려운 민족 개념의 차이를 드러낸다. 따라서 서로 다른 ‘민족’의 개념으로 인해, 각자의 ‘민족’을 기준으로하는 역사적 범주는 중첩되기 마련이고, 그 역사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주장할 경우 의당 ‘역사 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은 커지게 된다.

이러한 평행선 사이에서도 역사 인식의 접점을 찾는 노력은 서로 중요하다.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 이후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나 혹은 변화상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조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번 한국 역사 연표 왜곡 사건처럼 일회적이고 즉자적인 대응 태도는 곤란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사에서 고구려사의 위치와 의미를 올바르게 자리매김하는 학문적인 기반 및 시민들의 역사의식을 확장하는 일이 중요하다. 역사의 소유란 결국 그 역사를 기억하고 잘 이해하는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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