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미포’ 5천자에 100원…“글을 쓰는 일로 벌어먹고 살 수 있다면”

한겨레 입력 2022. 12. 3. 11:05 수정 2022. 12. 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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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
웹소설가 경이씨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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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 때부터 대학 때까지 줄곧, 경이(가명)씨는 만화를 그려 ‘이야기’를 만들었다. 친구들은 이를 보고 함께 즐거워했다. 미대를 졸업하고는 게임회사 등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이야기가 계속 떠올랐다. 직장생활 10년쯤에 출퇴근을 그만두고 경이씨는 독자에서 작가로 변신했다. 자신에게서 샘솟는 이야기를 따라잡기엔 웹소설이 맞춤했다. 플랫폼에 6년간 연재한 작품은 총 다섯편으로 유료 연재를 완결하고 전자책으로 발간됐다. 한 작품당 짧게는 2권, 길게는 7권 분량이다. 종이책 출간도 앞두었는데 국내가 아니라 국외에서다.

‘공미포’ 5천자에 100원

“웹소설 플랫폼에 무료 연재를 하다 독자가 늘어나고 어느 정도 반응이 있으면 출판사랑 계약을 해요. 출판사가 중개자가 되어 플랫폼과 계약하고 유료 연재를 시작하죠. 보통 150~300화를 연재하는데 주 5~7일 올려요. 독자는 한편당 100원에 사서 읽고 소장하죠. 전자책은 권당 3천~4천원 해요.”

‘공미포’ 4천~5천자. 경이씨가 현재 하루 쓰는 연재 분량이다. 공미포는 공백 미포함 글자 수다. 10포인트 글자로 빽빽하게 채운 에이포 용지 서너장 정도를 떠올리면 된다. 휴대폰 스크롤을 올리거나 미는 독자의 손길이 마지막 마침표에까지 도달하게 하자면 무엇보다 글이 재밌어야 한다. 하이퍼텍스트 소설 특성상 언제든 그만 읽고 창에서 나가 다른 작품을 클릭할 수 있으니.

“웹소설에선 기승전결이 아니라 승전결기 구성이에요. 다음이 궁금한 게 최고죠. 이걸 날마다 반복하는데, 중요한 정보는 지문보다 대화에 넣어요. 다시 삶을 산다면 이렇게 살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욕망, 시간을 되돌리고픈 간절함을 담은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세계관’과 뭐든 쉽게 해결하는 ‘사이다 서사’가 요즘 인기예요. 처음부터 주인공의 고난이 길면 갑갑해서 독자들이 싫어해요. 그렇다고 너무 사이다면 현실성이 없으니까 그 틈을 잘 조절해야죠.”

경이씨는 웹소설의 여러 갈래에서 로맨스판타지(로판)를 창작한다. 로맨스가 현실에는 없을 연애와 사랑을 다룬다면, 로판은 여성이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나서서 사건 한복판에서 직접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변화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결핍된 부분을 채우면서 자기 욕망을 실현하는 이야기에 관심 있어요. 결핍과 욕망은 개인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세계에서 이어지고 확산한달까요? 부모에게 구박받고 버림받거나, 가족도 사랑하는 사람도 없이 외로운 사람, 돈도 못 벌고 회사에서도 차별받는 삶을 사는 사람도 주인공이 되어 행동하죠.”

수익 절반이 플랫폼 손에

디지털콘텐츠 산업이 한창 주목받는 시대다. 웹소설가는 그 콘텐츠를 생산하는 창작노동자다. 진입문만 활짝 열렸을 뿐 아무런 안전망도 도약판도 없는 이 세계에서, 경이씨는 마감 시간과 마감 분량을 지키며 날마다 웹소설이라는 콘텐츠를 플랫폼에 생산·납품해 왔다. 창작에 흠 될까 외출 약속도, 집중력을 떨어뜨릴까 맥주 한잔도 저어했다. 웬만큼 “글 근육”이 붙어 2시간 이내에 하루 마감 분량을 써내지만, 그만큼의 퇴고 시간과 사전 준비를 포함하면 꼬박 7시간은 창작 노동에 붙박인다. 그 외 시간도 여전히 작품과 관련해 긴장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처음 웹소설을 쓸 때처럼 지금도 경이씨는 여전히 무료 연재로 새 작품을 시작한다. 처음과 달리 출판사와 먼저 계약하는데 계약금이 없으니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다. 입소문 나기까지 대략 50화를 무료 연재한다는데, 준비기간을 포함해 최소 4~6개월은 수입이 없다. 플랫폼 한가득 작품을 채워주고도 정작 창작노동자들은 오래 빈손이다.

“글을 쓰는 건 작가인데 플랫폼이든 출판사든 작가한테 주는 돈을 굉장히 아까워해요. 고료가 아예 없으니까 유료 연재로 수익이 나기 전까지는 수입이 0원인 셈이죠. 대체로 연재한 달의 다다음달에 정산하니 수익도 그때 들어오죠.”

플랫폼은 창작노동자가 일군 수익의 30~50%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중개자인 출판사는 나머지에서 30~40%를 가져간다. 선인세는 수수료가 50%다. 예를 들어 선인세가 1천만원이면 작가는 플랫폼에 2천만원을 벌어줘야 한다. 여차하면 1천만원이 1년 돈벌이 총액이 되기도 한다. 플랫폼은 작품을 노출해준다는 명목으로 수수료를 더 요구하고, 독자에게 소장비를 할인해주는 이벤트마다 창작노동자와 출판사도 항상 함께 그 비용을 부담한다. 글을 쓰고 준비하는 시간을 노동이라 한다면 최저임금을 벌지 못하는 작가도 많다.

“플랫폼이 아니면 작품을 내보낼 수가 없으니까 결국은 그 밑에서 일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완재할 때까지 ‘독점 연재’ 명목으로 한곳에만 연재하는데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요. 한국에서 예술은 잉여생산물로 취급해서, 하지 않아도 되는 걸 하는, 그러니까 필수적인 게 아니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글을 써서 돈을 벌고 먹고살려고 하면 ‘네가 좋아서 하는 거고 놀려고 하는 건데 왜 보장해줘야 하냐’고 하죠. 작가들 스스로 그런 의식이 있어서 자기가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내가 선택한 일이니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깔려 있어서 더욱 말을 안 하죠.”

경이씨는 고민이 많지만 오늘도 쓴다. “생각날 때만 쓰는 게 아니라 날마다 쓰는” 사람, 바로 작가다. 작가로 변신해 글을 써온 그간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 아직은 더 버티며 글을 쓰고 싶다.

“다른 일이 아니라 글을 쓰는 일로 벌어먹으며 살고 싶어요. 누구나 필명을 아는 그런 대단한 성공을 바라는 게 아니라, 이런 이야기를 쓰면서 살아도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정도였으면 좋겠어요. 나한텐 하고 싶은 이야기,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든요. 내가 이제 더는 쓸 이야기가 없다든가 쓰기 싫다거나 이래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 굶어 죽을까 봐 그만둬야 한다는 게 너무 싫은 거죠. 그렇지만 않으면 계속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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