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같은 '42번가'…배우의 피와 땀이 주는 원초적 감동 있죠"
앙상블부터 안무감독까지, 18년 인연 이어온 권오환 감독 "내 인생 바꾼 작품"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무대 위의 배우들이 힘들어야 관객이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배우가 피땀을 흘려 노력한 결과물이 주는 원초적인 감동이 있잖아요. 이는 만드는 사람들이 정말로 솔직하게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절대 느낄 수 없죠."
자로 잰 듯 정확한 팔의 각도, 컴퓨터 그래픽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일사불란한 탭댄스 군무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가 지난달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국내 18번째 시즌으로 개막했다.
'브로드웨이 쇼 뮤지컬의 정석'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에서는 배우들의 노력으로 빚어낸 탭댄스가 그 자체로 음악이 되고 때로는 주인공이 되어 극의 메시지를 전한다.
극의 핵심 요소인 탭댄스를 총괄하는 인물은 권오환 안무감독. 22년 차 탭 댄서기도 한 그는 2004년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앙상블 배우로 작품과 인연을 맺은 뒤 2016년 안무 조감독, 2020년 안무감독을 거쳐 올해 공연에서도 안무를 책임지고 있다.
지난 달 29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권 감독은 이 작품이 본인에게 가지는 의미를 묻자 "이 작품이 그 자체로 나 자신"이라며 "운명과도 같고 내 삶을 크게 바꾼 작품"이라고 답했다.
1980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브로드웨이 42번가'는 42년간 세계 각국에서 꾸준히 공연된 스테디셀러 뮤지컬이다. 시골에서 온 배우 지망생 페기 소여가 브로드웨이 스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긴 시간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는 작품이 공연을 거듭하며 꾸준히 발전해 왔다는 사실이 있다.
24살에 처음 이 작품과 만나 이제 42살이 되었다는 권 감독은 "2016년에 한 차례 대대적으로 작품을 개선해 새 버전으로 공연했고, 그 이후에도 이 작품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해왔다"며 "원작이 가진 메시지와 의미를 더 잘 끌어내 전달할 수 있도록 디테일한 부분을 계속 수정한다"고 말했다.
변하지 않는 건 배우와 창작진이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다. 이번 시즌 공연에서 중점을 둔 부분을 묻는 말에 권 감독은 "매 시즌 변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건 '무조건 열심히 하자'는 것"이라며 "이 작품이 전하는 감동은 만드는 사람이 정직하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으면 절대 관객이 느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탭은 정말 정직한 춤이에요. 딱 연습한 만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무대에서 드러나죠. 연습할 때는 정말 작은 부분까지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습니다."
가장 오래 연습하는 역할은 주인공인 페기 소여 역. 페기는 극 중에서 탭댄스를 독보적으로 잘하는 춤꾼으로 나온다.
권 감독은 "페기 역의 배우는 오디션 합격 직후부터 바로 연습에 들어가 최소 8∼9개월을 연습한다"고 설명했다.
막이 오르는 순간부터 관객을 압도하는 대규모 탭 군무와 수백 벌에 달하는 화려한 의상 등 때문에 이 작품을 그저 눈이 즐거운 '쇼 뮤지컬'로 보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극은 화려한 무대 이면에 1930년대 대공황이 휩쓸고 지나간 당시 사회 현실을 놓치지 않고 담아낸다.
극 중 인물들이 만드는 뮤지컬 '프리티 레이디'는 여배우 도로시 브룩의 돈 많은 후원자이자 제작자인 애브너 딜런의 입김에 따라 내용이 마구잡이로 바뀐다. 낡은 옷차림의 거지들이 나와 돈을 구걸하던 장면과 이에 이어지는 거대한 금화 모형을 들고 화려한 군무를 추는 '머니' 장면은 당시의 경제난과 돈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쇼 비즈니스의 현실을 정면으로 풍자한다.
권 감독은 이 작품이 단순한 '쇼 뮤지컬'로만 여겨지는 것에 대해선 아쉬움을 보였다.
"줄거리만 들었을 땐 배우 지망생이 스타가 되는 단순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인물 간의 관계에서 디테일한 설정들이 많이 숨어있어요. 이야기뿐 아니라 안무와 음악 자체에서도 그 시대의 상황을 풍자하는 요소들이 정말 많죠. 단순한 쇼라고만 보기엔 담긴 의미가 많은 작품입니다."
쇼 비즈니스의 차가운 현실은 그 안에서도 꿈을 간직하는 이들을 더욱 빛나게 한다. 브로드웨이라는 '찬란하지만 험난한 계곡'에서도 때 묻지 않은 열정을 간직한 주인공 페기의 모습은 실제로 이 공연을 만든 이들의 열정이 묻어나는 무대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감동을 배가시킨다.
권 감독은 "이 공연에 참여했던 배우들은 실제로 공연을 볼 때마다 무조건 눈물을 흘린다"며 "저도 수십번 넘게 공연을 봤지만 매 시즌 첫 공연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했다.
경제난으로 공연예술은 뒷전이 되는 극 중 상황은 코로나로 인해 공연이 어렵던 최근의 현실과도 닮았다. "공연이 주는 가치는 밤새도록 말해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 권 감독은 공연이 너무 쉽게 2순위로 밀리는 현실에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코로나 때 저도 수없이 많은 공연이 엎어졌어요. 누군가에겐 이게 생업이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이에 대한 공감대가 모두에게 생기면 좋겠습니다."
공연은 내년 1월 15일까지 이어진다.
wisef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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