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고른 음료 '1000배 수익'…피터린치도 감탄한 그의 투자비결 [김재현의 투자대가 읽기]
[편집자주] 대가들의 투자를 통해 올바른 투자방법을 탐색해 봅니다.
7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펀드를 운용하는 조엘 틸링해스트(64)는 '월가의 전설' 피터 린치가 채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피터 린치는 그를 '가장 훌륭하고 성공적인 주식 투자자 중 한 명'이라고 치켜세웠다.
조엘 틸링해스트는 1989년부터 '피델리티 저가주 펀드(Fidelity Low-Priced Stock)'를 운용 중이며 시장 수익률보다 매년 평균 3.7%포인트 높은 수익률을 기록해왔다. 공모 펀드 수익률로는 최고 수준이다. 저가주 펀드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저평가된 우량종목에 투자하는 가치투자자다.
지난 26일 틸링해스트가 미국 투자 저널리스트 윌리엄 그린과 약 1시간 30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투자 여정을 자세히 말했다. 여덟 살 때 투자를 시작한 틸링해스트는 투자실수를 방지하기 위한 4대 원칙, 선물에 투자했다 망할 뻔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소개했다. 또 음료업체에 투자해서 20년 동안 1000배가 넘는 수익을 기록한 이야기는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다.
틸링해스트의 투자 여정을 따라가 보자.
이날 윌리엄 그린과의 인터뷰에서 틸링해스트는 어릴 때 이익과 현금흐름을 다루는 밸류라인을 접하면서 가치투자 스타일에 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밸류라인에서 일한 적도 있으니 보통 인연이 아니다.
틸링해스트도 젊은 시절부터 가치투자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대신 그가 빠진 건 선물투자였다. 틸링해스트는 1982년부터 투자은행 드렉셀 번햄 램버트에서 금융 선물 애널리스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1980년대 정크본드 투자로 월가를 주름잡았던 마이클 밀켄이 이끌던 회사다.
당시 틸링해스트는 거시경제를 전망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주변 동료들이 자신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버는 걸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나도 생산자물가지수(PPI)나 다른 경제지표를 나름 잘 예측하는데, 이걸로 돈을 벌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는 증거금 1500달러로 100만달러짜리 선물계약 하나를 매수했다. 문제는 지나친 변동성이었는데, 선물 가격이 3000달러만 하락해도 계약이 청산되고 계좌가 폐쇄될 수 있었다.
경영대학원을 다니고 있던 틸링해스트는 1983년 1월부터 선물에 투자했는데, 불과 넉 달 동안 4만달러의 수익을 올리자 그야말로 날아갈 것 같았다. 학비 내고 나면 몇 푼 안 남는 월급과 비교하면 너무 큰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학자금 대출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더 좋았다.
틸링해스트가 수익을 몽땅 넣고 피라미딩(보유수량 늘리기)을 하면서 계약규모는 2500만달러까지 불어났다. 그런데 5월부터 시장이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불과 2~3주 만에 4만달러가 몽땅 사라졌다.
4만달러를 벌 때만 해도 한 달에 1만달러를 벌면 1년이면 얼마인지 계산하며 기분이 좋았는데, 4만달러를 잃은 후에는 기분이 비참해졌다. 이때 틸링해스트가 배운 교훈은 빌린 돈(또는 레버리지)으로 베팅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틸링해스트는 너무 광범위해서 예측이 힘든 거시경제보다는 기업이라는 미시경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경영진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는 기업에 대해서라면 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로 ①너무 비싼 가격에 사지마라 ②진부화(obsolescence)되거나 파괴되기 쉬운 기업에 투자하지 마라 ③사기꾼과 바보에게 투자하지 마라 ④이해하지 못하는 사업에 투자하지 마라다.
대신 ①화제(테마성)의 주식 말고 싸게 거래되는 주식에 투자하고 ②위기에도 회복력이 강한 기업에 투자하고 ③능력있고 정직한 경영인에게 투자하고 ④아는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는 것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은 자신이 이길 수 있는 게임을 해야 한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만약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과 승부를 겨뤄야 한다면 우리는 농구보다 체스를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 틸링해스트는 지금까지 40년 넘게 투자를 해왔지만, 바이오 분야는 잘 모르겠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특히 틸링해스트는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어떤 기업들은 적응력이 강하다며 이런 기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예로 든 건 영국 유통업체 넥스트(Next)다. 넥스트는 카탈로그 통신판매 사업을 운영했다. 인터넷 시대로 접어든 후 완전히 사업을 접을 위험에 처했지만, 넥스트는 카탈로그를 인터넷 쇼핑몰로 전환했고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대부분의 이익을 얻고 있다.
넥스트의 이야기는 넷플릭스를 연상시킨다. 넷플릭스도 DVD타이틀을 우편으로 대여해주는 사업을 하다가 2007년 스트리밍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온라인 스트리밍 회사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이처럼 적응력 강한 기업에 투자하면 실패할 확률이 희박하다.
그동안 틸링해스트는 자신은 에너지드링크보다 야채쥬스를 더 좋아한다며 몬스터 음료 투자를 운의 도움으로 돌려왔다. 이날도 그는 "훌륭한 성공은 완벽한 놀라움일 때가 많다"며 "행운을 경시하지 마라"고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행운을 알아보는 것도 능력이다. 틸링해스트는 미국 전자산업협회가 주관한 회의에 참가했다가 협회가 제공한 몬스터의 에너지드링크를 처음 맛봤다. 당시 몬스터 음료는 주가수익비율 10배에 거래되고 있었으며 부채는 거의 없었다. 이익 역시 증가하고 있었다.
그는 몬스터의 에너지드링크를 좋아했고 미친 듯이 일에 열중하는 경영진도 맘에 들었다. 경영진은 하루에도 몬스터 음료를 몇 개씩 마셨는데, 상당히 전략적이고 동기부여가 된 것 같았다. 부채가 없으니 부도 위험도 없었고 경기순환주도 아니었다. 틸링해스트는 아무리 생각해도 몬스터 음료가 잘못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몬스터 음료가 1000배가 넘게 상승하는 동안 20년 넘게 팔지 않고 보유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대해, 틸링해스트는 투자한 지 4, 5년이 지난 후 주당순이익이 매수가격을 초과했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이익이 성장하는 기업은 팔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금 몬스터 음료는 주가수익비율이 높지만, 여전히 똑같은 경영진이 경영하고 있으며 부채도 없어서 잘못될 수 없다는 게 틸링해스트가 여전히 몬스터 음료를 보유하는 이유다. 게다가 소비재는 IT제품이나 여성의류와는 달라서 관성(inertia)이 강하다. 즉 소비자들은 한번 익숙해진 제품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기업 이익에 집중하고 훌륭한 경영진을 가진 기업에 장기 투자하는 것, 바로 틸링해스트가 1000배가 넘는 수익률을 올린 비결이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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