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미국채의 위기 남의 일이 아니다

이관휘 2022. 12. 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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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휘의 자본시장 이야기] 가장 유동성이 높은 증권으로 여겨지던 미국채 시장에서 유동성 문제를 걱정하게 되었다.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 때문이다. 금융시스템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가능성도 있다.
11월15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NYSE) 객장에서 트레이더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REUTERS

올해 하반기 들어 블룸버그나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경제 미디어들이 ‘미국 국채(미국채)’ 시장의 유동성(liquidity)과 관련해 보도한 기사들은 제목부터 다급하다. ‘유동성이 시장의 모든 것을 규정한다’ ‘유동성이 아주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양적긴축(QT)이 채권시장의 유동성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한 투자전략가는 미국채 시장이 무려 7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약세장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가장 유동성이 높은 증권으로 여겨졌던 미국채(Treasury) 시장에서 유동성 문제를 걱정하게 되었다는 게 놀랍다.

재무경제학에서 유동성을 얘기할 때는 보통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기업의 자본구조와 그에 얽힌 이슈들을 다루는 기업재무 분야에서는 이 용어가 ‘현금성’과 같다. 다시 말해 기업이 얼마나 많은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고 있느냐를 얘기할 때 쓰인다. 투자론 분야에서는 ‘거래 용이성’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거래비용의 측면에서 본 개념이다. 이를테면 당신이 ‘가진 주식을 대량으로 급하게 내다 팔 때 얼마나 쉽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예를 들어보자. 주식 1만 주를 1만원씩에 팔고자 주문을 냈는데 사고자 하는 사람이 없으면 당신은 호가를 예컨대 9900원으로 내려야 한다. 여기서 생긴 주당 100원의 가격 차이는 유동성 비용(liquidity cost)이 된다. 유동성이 많이 떨어지는 주식이라면 당신은 아마도 9500원까지 호가를 내려야 할지 모른다. 다시 말해, 유동성은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위험요인이다. 2007~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 때만 봐도 유동성 감소로 인한 가격 하락이 때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폭이었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미국 연준이 시장에 공급한 유동성은 주로 현금자산을 뜻한다. 이로 인해 거래가 활성화(거래 유동성 증가)되었다. 이렇게 보면 유동성의 두 가지 개념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 여기서는 주로 거래비용으로서의 유동성을 중심으로 미국채 시장을 살펴보기로 한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금리인상을 조기 종료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서는안 된다’고 못 박았다. ⓒREUTERS

미국채 유동성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  

오늘은 가격이 100원인데 내일은 가격이 90원으로 떨어질 것이 거의 확실한 증권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오늘 100원을 주고 이를 매수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수할 사람이 없으면 거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유동성이 떨어진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채권시장에서, 특히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미국 국채시장에서 말이다.

미국 연준은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으며 많은 나라들의 중앙은행이 이를 따르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떨어진다(〈시사IN〉 제712호 ‘미국 장기채 수익률과 연준의 통화정책’ 기사 참조). 앞으로 금리를 올릴 게 ‘확실시’된다는 것은, 채권 가격이 떨어질 것도 확실하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연준은 멀지 않은 미래에 그동안 양적완화(QE)를 통해 보유량이 크게 늘어난 국채를 내다 팔아야 한다. 이를 ‘양적긴축(QT)’이라고 부른다. 국채 공급이 늘면 당연히 가격은 더욱 떨어지게 될 터이다. 아무리 미국채라 하더라도 수요가 떨어지는 것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국채시장의 유동성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미국채 유동성 지수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 1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수의 수치가 높을수록 미국채 유동성이 낮다는 의미다.

유동성 문제는 국채 중에서도 유동성이 낮은 채권일수록 더 심각하다. 예전에 발행되었지만 아직 만기가 남아 있는 채권을 ‘오프더런(off-the-run)’ 채권이라 부른다. 이를테면 5년 전 발행된 만기 10년짜리 채권이 그 예가 된다. 오프더런 채권들은 어느 국가의 외환보유고나 연금, 은행 또는 보험회사의 금고에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거래가 많지 않다. 그만큼 유동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최근 발행된 만기 10년짜리 ‘온더런(on-the-run)’ 채권이 시장에서 아주 활발하게 거래되는 것과 명확히 비교된다. 게다가 오프더런 채권의 경우, 온더런 채권에 비해 이자율이 낮다. 금리가 낮았던 과거에 발행되었기 때문이다. 금리가 오른 지금 발행되는 채권들은 아무래도 더 높은 이자율을 보장해야만 한다. 오프더런 채권들의 경우 가뜩이나 유동성이 떨어지는데 여기에 이자율까지 낮으니 수요가 많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온더런이 아니라 오프더런 채권들이다.

그런데 미국채 유동성에 대해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어차피 남의 나라 채권 아닌가. 그렇지 않다. 수많은 금융거래가 미국채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국채는 상당수 금융거래의 담보자산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단기자금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거래인 레포(RP:담보를 내고 돈을 빌린 뒤 나중에 약간 더 비싼 가격으로 해당 담보를 되사들여 빚을 갚는 거래)에서 주로 사용되는 담보가 국채다. 안전자산(safe asset)이기 때문이다. 만약 국채 유동성이 말라버린다면(다시 말해 살 사람이 없어 팔기가 어려워진다면) 당연히 담보로서의 국채 가치도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담보 가치가 떨어지면 추가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 돈 빌리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게다가 담보를 처분해야 하는 시기는 대개 자금시장의 형편이 좋지 않을 때다. 시장이 좋으면 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원활해 굳이 담보를 처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상황이 열악할수록 국채 같은 안전자산의 중요성 또한 커진다. 하필 이런 시기에 국채 유동성이 떨어진다면 참으로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채의 시장규모는 24조 달러 정도다(미국 명목GDP를 살짝 넘는 액수). 미국채에 투자하고 있는 펀드들이 부지기수이고 투자자들 또한 다양하다. 미국채의 3분의 1 정도는 해외, 나머지(3분의 2)는 미국 내 기관들이 보유 중이다. 한국을 비롯해 수많은 나라들이 외환보유고로 미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은행이나 보험회사들은 미국채의 큰 고객이다. 각종 연금기금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국 국내 기관들의 미국채 보유 현황을 살펴보면 가장 큰 보유자는 역시 연준이다(39% 보유). 뮤추얼펀드가 22%, 상업은행 등 예금취급 금융기관(Depository institutions)과 보험회사들이 14%, 연금이 8% 등이다.

미국채는 수많은 다른 채권들의 벤치마크가 된다. 이를테면 회사채 등 채권수익률이 미국채 수익률보다 얼마나 더 높은지는 채권 선택이나 투자평가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 또 채권수익률이 충분히 커지는 경우라면 주식시장에서 대규모의 자금이 채권시장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미국채 유동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처럼 수많은 금융거래의 중요한 연결고리인 미국채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 연준의 공격적 금리인상의 부작용은 주로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얘기되어왔지만, 이처럼 금융시스템의 안전성을 전반적으로 위협하는 위험 요소가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국채시장의 유동성 문제는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Financial Stability Report)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졌다. 그 장의 제목은 이렇다. ‘시장유동성 부족은 충격 증폭제.’

유동성이 사라진다는 말은 사려는 쪽이나 팔려는 쪽 중 어느 한쪽으로 투자자들이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뜻이다. 시장에서 미국채를 사려는 투자자들이 급속히 줄어들고(수요 감소), 국채 공급 요인이 늘어나면 당연히 거래가 어려워지며(유동성이 떨어지며), 가격은 하락한다. 유동성이 줄어들면 변동성이 커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부동산 거래절벽을 예로 들어보면 이해하기 쉽다.

거래가 없는 와중에 어느 한 아파트에서 거래가 일어나면 그 가격이 다른 수많은 잠재적 거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거래가 자주 일어나면 정보 흡수도 빨라 가격이 상황을 더 효율적으로 반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동안 쌓여 있던, 다시 말해 가격이 반영할 수 없었던 정보들이 거래가 일어났을 때 한꺼번에 반영된다. 당연히 가격이 크게 출렁이게 되는 것이다. 최근 채권 변동성 지표인 ‘MOVE(메릴린치 옵션 변동성) 지수’는 2009년 중반 이후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1분기 때보다 높다.

미국 재무부는 미국채의 바이백(buyback)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위)은 “시장에서 충분한 유동성의 손실을 우려하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AP Photo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에서 비롯된 문제  

위에서 언급한 수요 요인, 즉 금리인상으로 인한 미국채 수요 감소 이외에 공급 측면에서도 미국채 유동성 감소의 원인은 다양하다. 예를 들면 금리인상으로 인해 미국 달러화가 초강세(금리가 높은 국가에 투자하려면 그 나라 화폐가 필요하다. 수요가 늘면 화폐가치가 오른다)가 된 것도 미국채 시장 유동성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했다.

예컨대 다른 나라들의 입장에선, ‘킹달러’로 인해 약세가 된 자국의 화폐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달러 공급을 늘릴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금리가 높은 시기에 달러화를 차입해오기는 부담스럽다. 그것보다는 갖고 있는 미국채를 매각해서 달러를 조달하는 편이 낫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너무 떨어지자 미국채 대량매각을 실행한 일본은행이 좋은 사례다. 일본은 미국 외에 미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연준이 행하는 ‘역레포(RRP)’ 또한 국채 공급을 늘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다. 역레포는 연준이 상업은행이나 머니마켓펀드(MMF:자금을 단기적으로 우량채 등에 투자하는 펀드)에 국채를 담보로 지급하고 돈을 빌려(이때 지급하는 이자율을 ‘역레포 금리’라고 부른다) 자금을 흡수하는 공개시장정책의 하나다. 연준이 돈을 빌린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연준은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시중에 풀린 자금을 흡수할 목적으로 이를 시행한다. 연준이 역레포 금리를 올리면 더 많은 은행이나 펀드들이 역레포에 참여해 연준에 돈을 빌려주려 한다. 그 결과, 이 은행과 펀드들은 더 많은 미국채를 보유하게 된다. 결국 연준의 역레포 또한 시장에 미국채를 더욱 많이 공급하는 수단이 되는 셈이다.

미국채 유동성 문제로 인해 최근 시장의 주목을 받는 것이 바로 ‘프라이머리 딜러(PD)’들의 역할이다. PD는 뉴욕 연준과 계약을 맺고 국채 발행시장에서 국채를 인수하고 이를 유통시장에서 거래해 시장을 조성하는 국채 전문 딜러를 말한다. 현재 JP모건, 시티, 바클리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25개사가 PD로 지정되어 있다. 발행된 미국채의 총규모는 24조 달러에 이르지만 2019년 말 이후 증가한 규모만 7조 달러다. PD들만으로 시장을 조성하기에 규모가 너무 빨리 커져버렸다.

PD들은 보완적 레버리지 비율(SLR) 규제로 말미암아 국채시장 조성 능력이 훼손되었다며 관련 규제를 손봐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SLR은 해당 PD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높을수록 건전’하다는 의미다. 연준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친 2020년 4월1일부터 1년 동안 이 규제를 완화했다. 이 한시적 조치를 지속적 조치로 바꾸어달라며, PD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전 재무장관 팀 가이트너도 지난 6월 SLR 규제 완화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아예 국채 거래도 주식거래에서처럼 모든 거래 참여자가 직접적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어달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런 플랫폼은 PD들에게 미국채 시장 조성 임무를 집중적으로 맡긴 경우보다 확실히 거래 투명성을 높이고, 거래비용을 줄이며, 중앙 청산(central clearing)을 가능하게 하는 등의 순기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프더런 채권들의 유동성을 늘리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오프더런 채권은 아직도 딜러들이 전화 통화를 이용해 거래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오프더런이야말로 유동성이 가장 필요하며 별도의 시장이 존재해야 하는 채권이다. 주식시장에서 유동성이 떨어지는 부문에 시장 조성이 더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모든 문제는 결국 연준의 급격한 금리인상에서 비롯되었다. 연준에서 최근 금리인상 속도 조절과 관련된 목소리들이 나온 배경엔 급격한 인상의 부작용으로 인한 유동성 증발을 걱정한 측면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11월 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금리인상을 조기 종료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월스트리트에서는 미국 재무부가 결국 미국채를 사들이는 바이백(buyback)을 하지 않겠느냐고 기대하는 듯하다. 재무부는 아직까지 공식적인 대답을 내놓고 있지 않지만 이를 계속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재무부가 미국채를 찍어내는 곳인데, 그걸 스스로 다시 사들인다고 너무 의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미 20년 전에도 했던 일이다. 사들이는 채권은 새로 찍는 채권이 아니라 주로 오프더런 채권들에 집중될 것이다.

채권시장의 혼란은 비단 미국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영국은 국채시장의 혼란으로 홍역을 겪으면서 총리(리즈 트러스)가 ‘역대 최단기 임기’라는 불명예 속에 조기 퇴진했다. 채권 지급보증을 해놓고도 나 몰라라 했던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무책임한 행정으로 인한 채권시장의 혼란은 한국 시장에서 지금도 진행 중인 이슈다. 이번에는 미국채 시장만을 살펴보았지만 펀드나 주식시장에서도 유동성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요즘처럼 시장이 어려운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유동성은 건강과 같다. 풍족할 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부족할 때는 그것보다 중요한 게 없다. 건강하지 않을 때는 건강을 최우선으로 챙겨야 한다. 시장 유동성도 그렇다. 면밀하게 주시하고 챙겨야 할 때다.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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