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면’ 버터 샤도네이

유진우 기자 2022. 12. 3.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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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도네만 아니면 다 좋아요! (ABC·Anything But Chardonnay)

1990년대 초반 전 세계 최대 주류소비시장 미국에서는 ‘ABC 운동(movement)’이 벌어졌다. 1995년 8월 뉴욕타임즈(NYT)를 보면 ‘20년 동안 미국 와인 문화 초석(礎石)을 쌓은 포도 품종이 거센 반발을 맞았다’고 한 면을 털어 대서특필했다.

샤르도네라는 포도 품종은 ‘화이트 와인의 여왕’이라 불린다. 와인을 잘 모르는 소비자도 수차례 들어 봤음직한 품종이다.

이 품종의 가장 큰 미덕은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나 무럭무럭 자란다는 점이다. 열매를 빠르게 맺고, 어느 토양에서나 생산량이 풍성하다. 산도나 당도 어느 한쪽으로 모난 특성이 없어 양조자가 원하는 대로 맛을 그려내기도 좋다. 이런 스케치북 같은 특징 때문에 샤르도네는 전 세계 수많은 양조자에게 사랑 받았다.

특히 1970년대부터 미국에서 샤르도네는 슈퍼스타 반열에 오른다. 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소위 ‘파리의 심판(Judgment of Paris)’에서 미국산 샤르도네 포도로 만든 화이트 와인들이 내로라 하는 프랑스산 화이트 와인을 앞지르고 수위를 차지하자 미국인들은 미국산 샤르도네 와인에 열광했다.

파리의 심판은 ‘프랑스 와인이 아닌 와인은 와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1970년대 중반 당시, 미국 와인과 프랑스 와인을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와인 겉면을 가린 채 하는 시음회)한 이벤트를 말한다. 이 이벤트를 계기로 국제사회에서 미국 와인 지위는 일취월장했다.

이후 무수히 많은 미국산 샤르도네 와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파리의 심판에서 1위를 차지했던 ‘샤토 몬텔레나’ 와인을 따라하기 바빴다. 1994년에는 샤르도네는 역사상 처음으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 품종’ 자리에 올랐다. 미국 바깥 나라에 수출하는 물량도 1990년대 들어 매년 12% 이상 늘었다.

포도 재배량은 수요가 늘었다고 해서 갑자기 늘릴 수 없다. 포도 묘목이 와인을 담글 만큼 튼실한 열매를 맺으려면 수년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와인 생산자들은 갑자기 늘어난 수요에 맞추기 위해 포도 열매를 덜 솎아내는 식으로 생산량을 늘렸다. 한 묘목에 달리는 포도 열매가 많아질 수록 와인이 담을 수 있는 풍미는 옅어진다.

생산자들은 이런 결점을 덮기 위해 참나무(오크)통에 와인을 오래 담근 후 시장에 내놨다. 참나무통을 일종의 조미료 역할로 사용한 셈이다. 나무에서 배어 나오는 버터향과 바닐라향이 와인에 깊게 배자 소비자들은 환호했다.

그래픽=이은현

그러나 으레 조미료를 많이 넣은 음식이 그렇듯, 미국 소비자들은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이런 와인들에 금새 지쳤다. 이윽고 ABC 운동에 불이 붙었다.

사람들은 와인바에서 샤르도네를 시키는 소비자를 ‘와인 맛 모르는 초보자’로 취급했다. 소믈리에들은 버터향이나 바닐라향이 강한 미국산 샤르도네 와인 대신 다시 프랑스산 화이트 와인을 구비하기 시작했다.

ABC 운동 이후 10여년이 지나자 미국에서는 이전과 정 반대로 신선하고 우아한 미국산 샤르도네가 프리미엄 와인으로 주목 받기 시작했다.

타락과 과잉의 시대(The era of decadence and excess)였습니다.
더 이상 미국 샤르도네는 예전처럼 세련된 와인이 아니었죠.
영국의 저명한 와인 평론가 고(古) 스티븐 스퍼리어

잼 셀러즈(JaM Cellars) 창업자 존 앤서니 트루차드(John Anthony Truchard)는 미국에서 샤르도네라는 품종이 슈퍼스타로 떠올랐다가 다시 추락하는 광경을 온전히 지켜봤다. 그리고 2008년 스스로 와이너리를 시작했다.

이 와이너리는 창립 3년째였던 2010년 ‘버터 샤도네이’라는 와인을 선보였다. 샤도네이는 샤르도네 품종을 미국식 영어로 발음한 표기법이다.

이 와인은 이름처럼 1970년대에 인기였던 버터향 강하고 완숙한 과실향이 풍부한 미국식 샤르도네 맛을 재현했다. 트루차드는 ABC 운동이 휩쓸고 간 미국 와인 시장에도 여전히 버터향 강한 샤르도네 와인을 그리워하는 소비자가 남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확신하지는 못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와인 대신, 일부가 열광할 와인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그는 첫해 시험 삼아 버터 샤도네이를 1000상자(1만2000병)만 만들었다. 매년 수십만병을 만드는 미국 와인 치고 적은 양이다. 결과는 예상을 넘어선 대성공이었다.

버터향 강한 샤르도네 인기가 한 풀 꺾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여전히 직선적인 매력을 사랑하는 소비층은 미국 전역에 존재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와인 문화가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2000년대에는 가정에서 와인을 마시는 수요가 늘어난 것도 유효했다.

소비자들 역시 굳이 정식으로 비싼 음식과 마시지 않는다면, 다소 풍미가 강한 와인을 꺼릴 이유가 적었다. 영화관 팝콘을 뜯었을 때 나는 버터 향과 막 내린 헤이즐넛향 커피에서 나는 구수함이 느껴지는 샤르도네는 고급스럽지는 않아도, 마시기 편하다는 인상을 줬다.

무엇보다 이 와인 가격은 12~17달러(약 1만6000~2만2000원) 수준으로 저렴했다. 앞서 1970년대 미국 샤르도네를 대표했던 샤토 몬텔레나가 평균 65달러(약 8만4000원) 수준임을 비교하면 5분의 1 정도다.

국내에서 그렇듯 미국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레트로(retro) 열풍이 불어 닥친 점 또한 버터 샤도네이에는 호재였다. 이 와인은 미국에서 야외 음악 페스티벌에서 컨트리 음악을 들으면서 친구들끼리 시원하게 한 잔 마실 만한 화이트 와인으로 자리매김했다.

2016년에는 나파 밸리에서 가장 큰 음악 축제 보틀락 페스티벌에 공식 스폰서로 참여했다. 미국 최대 주류배달 플랫폼 드리즐리에 따르면 버터 샤도네이는 2018년 12달러 이상 미국산 샤르도네 품종 와인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이 팔리는 와인이다.

영국 주류매체 디캔터는 버터 샤도네이를 “풍부하고 대담하면서 상당한 만족감을 주는 와인”이라고 평가했다. 이 와인은 ‘2022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신대륙 화이트 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와인투유코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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