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주의 테크 오디세이]무역 적자 해법은 ‘디지털 기술 수출’
우리는 과거에 사람을 수출했다.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서독으로 떠난 광부 삼촌이나 간호사 고모, 중동으로 일하러 간 이모부를 둔 아이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다음 수출품은 물건이었다. 경공업 제품부터 시작해 이제는 정보통신기술(ICT) 제품을 주력으로 하는 세계 10대 수출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IMF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무역수지 7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더니 누적 무역적자는 400억 달러를 넘겼다. 집계를 시작한 1956년 이래 역대 최대치다. 이에 정부는 수출 전략 회의를 열어 상황을 점검하고 정책을 새롭게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수출 활성화를 위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시점에서 정부는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사람과 물건을 수출했던,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 찾아온 수출 위기는 무엇으로 타개해야 할까. 그 답은 디지털 기술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스태티스타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디지털 전환 시장 규모는 2000조 원이 넘는다. 4년 후에는 2배 이상 뛰어 4500조 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온갖 경제적 불안 요소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전환을 위한 투자는 멈추지 않는다. 당연하다. 디지털화는 거대한 구조적 흐름이다. 디지털 기술 없이는 그 어떤 산업도 살아남을 수 없다. 디지털 기술을 선제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성장은 물론 산업의 판도도 변화시킬 수 있지만 아직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지 않았다면 이미 경쟁에 뒤처졌을 것이다.
팬데믹 이전에 모더나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모더나는 3년 전만 해도 시판 제품을 하나도 내놓지 못한 매출 제로의 회사였다. 하지만 모더나는 코로나바이러스 유전자 정보 공개 3일 만에 백신 후보 물질 설계를 완료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아무리 빨리 끝내도 20개월은 걸렸던 임상 시험까지의 준비는 단 42일 만에 마쳤다. 비결은 디지털 기술이다. 모더나는 기존의 제약 기업과 다르게 디지털화를 전제하고 퍼블릭 클라우드에 연구개발 플랫폼을 구축했다. 디지털 기술에 크게 투자했으며 신약 개발의 전 과정을 디지털로 관리함으로써 경이적인 속도로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는 제약 산업의 판도를 바꿨다.
우리가 강점을 가진 산업 분야를 디지털화해 새로운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디지털 기술 수출의 시작이다. 현재 한국의 세계 수출 1위 품목은 77개로 세계 10위 수준이다. 여기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면 어떻게 될까. 2000개 이상 품목으로 세계 1위에 올라서는 것이 과연 허황된 것일까.
격변의 시대다. 스태그플레이션, 미중 패권 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다양한 변수들이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다. 영원한 1등도, 절대적 강자도 없다.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법은 없지만 얼마든지 기회가 있기도 하다. 한국에는 기술 역량을 가진 인재와 전자·조선·반도체 등 산업별 최고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 강대국 사이에서 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사업을 추진하고 싶은 국가에도 최적의 파트너다.
이미 디지털 기술을 활발히 수출하고 있는 우리 기업도 많다. 베스핀글로벌은 2019년 중동·북아프리카 법인을 설립해 클라우드 인재를 양성하고 아랍에미리트의 디지털 전환을 진행하고 있다.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은 전 세계 700여 개 기업과 기관에 AI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협업 툴 ‘잔디’는 70여 개국에 서비스 중이며 대만에서는 협업 툴 시장 1위를 차지했다.
디지털 기술 수출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의 역량을 집약시킨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를 수출하고 현지에서 인력을 양성하면 단순한 판매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업무 방식, 철학, 경험까지 전달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 수출로 이룰 수 있는 가장 큰 비전이 바로 이것이다. 전 세계 디지털 경제의 주도권을 손에 넣는 것도 결코 꿈이 아니다. 디지털 기술 수출이야말로 한국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자 5대 수출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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