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일본 경제에 보낸 노학자의 경고…신간 '1940년 체제'

이세원 2022. 12. 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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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을 '기술 후진국'이라 지적한 노구치 명예교수의 경고
1940년 체제 지속이 일본 장기침체 원인이라 지적
'1940년 체제' 표지 [글항아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닛폰나라데와노…"(일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최근 수년 사이 자국의 기술이나 시스템을 자세히 소개하는 일본 공영방송 NHK 등의 프로그램에서 기자가 종종 들었던 표현이다.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본 일본 평균임금이 한국에 따라잡히는 열도 경제의 취약성이 최근 부각된 점을 고려하면 이에 앞서 경고 대신 '일본은 뛰어나다'는 마취제와 같은 메시지가 반복된 셈이다.

신간 '1940년 체제'(글항아리)는 '기술 후진국' 등 꽤 강한 표현으로 일본의 시스템을 비판해 주목받은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82) 히토쓰바시(一橋)대 명예교수가 일본 경제에 보낸 경고 메시지를 집약한 저서다. 2015년 펴낸 '전후경제사'와 2019년 같은 책의 문고판 발행을 계기로 덧붙인 후기를 묶어 번역한 책이다.

현지 발간 시점을 고려하면 한국어판 늦은 감이 있다. 하지만 일본 경제의 위기에 대해 일찍부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 학자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노구치 유키오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노구치 명예교수가 이 책을 낸 것은 일본 헌정사상 최장수 재임 기록을 세운 아베 신조(安倍晋三·1954∼2022) 전 총리의 정치적 구심력이 꽤 강한 시기였다. 당시에는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 은행 총재가 주도하는 이차원(異次元) 완화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는 주류에 속하지 않았다.

경제관료 시절부터 이단아 취급을 받았던 저자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정부와 당국의 인식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 책은 일본이 1995년 이후 장기 쇠퇴기에 접어든 원인이 디플레이션 때문이라는 일반적인 견해를 부인하고 일본이 총력전을 수행하기 위해 구축한 1940년 체제를 지속하고 있는 것을 길게 이어진 침체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일본은 전쟁 수행을 위해 구축한 체제를 변용해 전후 통산성과 대장성(大藏省. 재무성의 전신) 등 경제 관료의 입김이 센 시스템을 유지했으며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수직 통합형 생산을 축으로 삼아 경제 성장을 이뤘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하지만 "일본의 산업구조와 경제 체제가 시대의 새로운 조건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이 전후 70년(2015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노구치 명예교수의 판단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아베 정권이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을 표방하며 추진한 경제정책이 1940년 체제의 부활 그 자체라고 혹평했다.

이런 정부 개입형 체제는 1980년대 이후 효력을 상실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이를 고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1940년 체제라는 틀로 일본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네 살 무렵 겪은 도쿄 대공습의 기억, 1964년 대장성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이후의 일화, 미국 유학 후 귀국해 비로소 느낀 문화적 충격 등 개인적 경험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가치 급락한 엔화와 각국 통화(달러·유로·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저자가 분석한 일본인의 의식 변화도 흥미롭다.

그는 자신이 미국에서 공부했던 1960년대 말에는 일본이 극동의 작은 섬나라일 뿐이었고 일본인들은 고도성장기에 "세계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겸허한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이런 자세가 일본을 발전시키는 긍정적 요소로 작용했지만 1980년대에는 '우리는 세계 톱클래스'라는 생각이 확산하는 등 일본인이 오만에 빠졌다는 것이다.

노구치 명예교수는 스탠퍼드대에서 강의하던 2003년에 중국인 유학생은 400명이 넘었고 한국 출신 유학생이 300명이 넘었지만 일본 유학생은 100명도 안 됐고 수년 뒤에는 일본에서 온 유학생이 '기타'로 분류돼 그 수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지적 경쟁에서 일본의 처한 상황을 소개했다.

저자는 자신이 일본의 땅값 상승에 관해 '거품'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쓰는 등 다가올 위기를 알리기 위해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는 고독한 싸움"을 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노구치 명예교수는 1992년 간행한 '거품의 경제학'이라는 책에서 "거품은 붕괴했지만 일본의 제조업은 여전히 강하다"고 쓴 것이 철저한 오판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역사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오롯이 파악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노학자의 한 마디가 오래 기억에 남을만한 책이다.

노만수 옮김. 372쪽.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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