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출신 서른 살 억만장자, ‘제2의 워런 버핏’ 10일 만의 몰락

전효진 기자 2022. 12. 3.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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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 FTX 파산보호신청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 /연합

‘코인계 리먼 사태(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

2019년 설립 후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로 급성장한 FTX와 130여 개의 관계사 등 FTX그룹이 11월 11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자 외신들은 암호화폐 시장의 위기감을 이렇게 전했다. 올해 1월만 해도 기업 가치가 320억달러(약 42조7840억원)로 평가됐던 FTX가 10일 만에 대규모 뱅크런(고객의 연쇄 자금 인출)과 더불어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는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났지만 파산보호 신청 하루 전인 10일부터 트위터에 연신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취지의 변명만 올릴 뿐 이렇다 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암호화폐 업계의 JP모건”

1992년생인 뱅크먼프리드는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했다. 부모는 모두 스탠퍼드대 로스쿨 교수다. 기술 엘리트인 그가 FTX를 창업한 지 3년 밖에 안 된 지난 8월 미국 경제 잡지 ‘포천’은 표지 모델로 그를 선정했다. ‘넥스트 워런버핏?’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30세의 억만장자가 위기의 순간에 암호화폐에 큰 베팅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붙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외모로 자신을 브랜드화하면서 큰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공식 행사에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쿨(cool)한 트레이더 이미지를 내보였던 그는 미국 중앙은행이 없던 시절 중앙은행 역할을 한 존 피어폰트 모건에 빗대 ‘암호화폐 업계의 JP모건’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FTX가 몰락하자 미 블룸버그통신은 “‘암호화폐의 제왕’에서 ‘테크 버블 패배자’들의 왕이 됐다. 한때 160억달러(약 21조3920억원)에 달했던 재산이 며칠 만에 ‘제로(0)’로 줄어 역사상 가장 빠른 수준으로 부(富)가 파괴됐다”고 전했다.

특히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FTX의 파산 신청 소식이 알려진 뒤인 11월 12일 트위터 실시간 음성 채팅 서비스(트위터 스페이스)에서 “트위터 인수 자금 마련 건으로 30분간 대화했는데 내 ‘헛소리 탐지기’에 경고등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뱅크먼프리드가 머스크 CEO와 대화에서 ‘트위터 인수에 최소 30억달러(약 4조원)를 투자하고 SNS와 블록체인 통합을 논의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으나, 머스크가 거절했다는 의미다. 머스크는 뱅크먼프리드에 대해 “헛소리하는 녀석”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NBA 구장 이름을 사들이고, 직원 회의 중에 컴퓨터 게임을 하는 등 본업에 충실하지 못했던 사례들도 속속 전해지고 있다.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 FTX 몰락 일지

계열사 간 자전 거래 폭로 10일 만의 몰락

FTX가 열흘 만에 몰락한 배경에는 세계 1위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 창업자 자오창펑과 불화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재무 불안정성 때문이다. 11월 2일 미국 블록체인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를 통해 FTX 자회사인 알라메다리서치의 대차대조표가 공개됐다. 146억달러(약 19조5200억원) 자산 가운데 대부분이 FTX 토큰(FTT) 혹은 FTT 담보대출물로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계열사 간 자전 거래를 통해 몸집을 불렸다는 의혹을 받는 이유다. 닷새 후인 11월 7일 돌연 바이낸스의 창업자 자오창펑은 가지고 있던 FTT를 모두 매도하겠다며 “(지난 5월의) 루나 사태 때 얻은 교훈을 토대로 한 리스크 관리”라고 했다. 바이낸스의 행보 직후 FTX 거래소 자체에 대한 불신까지 커지며 투자자들이 FTX에 넣어놨던 암호화폐를 앞다퉈 현금으로 인출하는 뱅크런 사태가 이어졌다.

9일 FTX가 자오창펑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바이낸스가 FTX 인수를 검토한다고 해 반전이 이뤄지는 듯했으나 하루 만인 10일 철회를 발표하면서 FTX는 파산의 길을 걷게 됐다. FTX가 회생파산을 신청한 직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FTX 거래소 내 자금 중 6억6200만달러(약 8732억원) 상당의 암호화폐가 무단으로 출금되는 등 해킹의 정황마저 포착됐다.

FTX의 파산보호 신청은 가상자산 역사상 최대 규모다. 신고된 부채 규모가 최대 500억달러(약 66조8500억원)다. FTX는 ‘구조조정 전문가’로 불리는 존 J. 레이 3세가 CEO를 맡아 파산 절차를 진행한다.

FTX 로고. /로이터

연결 포인트 1

FTX 채권자 100만 명?소프트뱅크·테마섹·블랙록도 물렸다

FTX의 채권자가 애초 알려진 것보다 10배 많은 100만 명을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11월 15일 미국 경제 전문매체 CNBC에 따르면, FTX 변호사들은 최근 법원에 “100만 명 이상의 채권자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FTX는 11월 11일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채권자 수를 10만 명 이상으로 추산했었는데, 크게 불어난 것이다. CNBC는 앞선 암호화폐 시장 파산 사례에서 플랫폼 거래자는 ‘후순위 채권자’로 지정됐다며, 이번에도 “다수의 채권자가 상환을 요구하는 긴 줄의 뒤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미국에선 은행이 파산하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보험 등을 통해 예치금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암호화폐 시장의 경우엔 제도 미비로 자금 회수가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특히 월가에서는 FTX발 연쇄 유동성 위기를 우려한다. 블랙록, 캐나다 교사 연금,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일본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 등 알려진 거대 채권사만 10만 곳에 이른다. 블룸버그는 11월 14일 “대형 투자사인 소프트뱅크마저 FTX에 투자한 1억달러(약 1330억원)를 전액 손실 처리했다”고 보도했다.

소프트뱅크 로고./연합

연결 포인트 2

FTX 이용자 가장 많은 곳?美 외에 한국·싱가포르·독일순

파산보호를 신청한 FTX 이용자 중 미국을 제외하고는 한국인의 비중이 가장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11월 16일 웹사이트 분석 업체 어스웹에 따르면, 지난 8월 FTX 거래소를 방문한 이용자의 국적을 분류한 결과 한국(6.21%), 싱가포르(5.26%), 독일(4.2%), 러시아(3.66%), 일본(3.56%)순으로 조사됐다. 미국인은 FTX가 아닌 FTX.US를 이용하기 때문에 어스웹과 시밀라웹의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 업체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11월 7일 기준 FTX 모바일 앱의 일일 이용자는 약 8300명인데, 업계에서는 이를 근거로 PC 접속 이용자까지 합쳐 하루에 1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접속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글로벌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번 사태가 본격화하기 직전 개당 22달러였던 FTT가 11월 14일 1.3달러 아래로 추락했다. 국내 5대 거래소 가운데 FTT를 상장했던 고팍스와 코인원, 코빗은 11월 26일부터 FTT를 상장 폐지하기로 했다. 다만 국내 투자자가 정확히 몇 명인지는 불확실하다. 미국 당국도 FTX가 외국 거래소(본사가 바하마에 소재)인 데다가 관련법 미비로 파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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