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본초여담] 추운 겨울, 만취(滿醉) 후 길에서 쓰러진 사내의 죽음은 ○○때문이었다

정명진 2022. 12. 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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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조선시대 한성부(漢城府)에서 변사체를 검안 중인 검시관(檢屍官)들.

먼 옛날, 한겨울. 동이 트자마자 관청에 길거리에 어느 사내가 쓰러져 죽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관청에서는 바로 포졸들을 보내서 확인해 보니 마을 어귀에 있는 주막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 한복판에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포졸들은 사내가 죽은 것을 확인 후 관청에 보고하자 바로 검시관(檢屍官)이 투입되었다.

검시관이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을 보던 검시관의 머릿속에는 아주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른 새벽, 한 사내가 쓰러져 있고, 이미 죽었다. 사망 시간을 따져 보면 어제밤부터 오늘 새벽이니 반나절도 되지 않은 시간이다. 한겨울이기는 하지만 동사할 정도의 추위는 아니었다. 옷은 더럽혀져 있지 않고 얼굴에 피가 나거나 피멍이 없으니 누군가와 싸우거나 맞아 죽은 것도 아니었다. 입에서 술냄새가 진동을 한 것을 보니 이미 술에 취한 상태였으나 술을 마셨다고 모두 죽지는 않는다. 입이 헐거나 입안에 수포가 없고 구토도 없고 입안과 항문에 넣어둔 은채(銀釵, 은비녀)도 변색이 없으니 독극물에 의한 것도 아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사인(死因)은 확실하지 않았다. 검시관은 시체를 관아로 옮겨 놓고 주변 사람들에게 탐문을 시작했다. 먼저 주막에 들러서 사내의 얼굴 그림을 내밀며 물어보았다.

“어제 이렇게 생긴 사내가 와서 술을 마신 적이 있는가?” 주모는 어제 그 사내가 와서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고 갔다고 했다. 시간은 해가 떨어진 이후에도 한참을 마셨으니 밤이 돼서야 일어났다고 했다.

“이 사내가 어젯밤에 길거리에서 쓰러져 죽어 있었네!”라는 검시관의 말에, 주모는 “그럼 혹시 내 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것이요? 그렇다면 어제 여기에서 술을 마신 사람들은 모두 죽었어야 했던 것 아니요? 나원 참~~ 아침 댓바람부터 재수없게 별일이 많네 그려~ 퉤퉤!!”하면서 뒤돌아 주막 부엌으로 총총총 향했다. 검시관은 단지 ‘술을 마시러 왔느냐?’만을 물었을 뿐이데, 주모는 과민반응을 보였다.

검시관은 흔한 반응이라는 듯 아랑곳하지 않고, 주막에서 나와 그곳으로부터 그 사내가 쓰러져 있는 길을 따라가다가 쓰러졌던 근처에서 집 마당을 쓸고 있는 어느 남자와 마주쳤다.

검시관은 남자에게 “혹시 어젯밤에 이 사내를 본 적이 있소?”하고 물었다.

남자는 “봤죠. 어제 이 사내가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면서 이 길을 지나가는데 반대편에서 오는 한 남자와 시비가 붙었소이다. 그런데 말다툼을 하다가 남자가 사내의 어깨를 주먹인가 뭔가로 한 대 치자 사내가 쓰려졌죠. 사내가 픽하고 쓰러지자 그 남자는 놀라서 재빨리 사라졌소. 이후 사내는 다시 일어나 비틀거리며 걸어가다가 10여 발자국 후에 다시 쓰러졌다오. 나는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괜히 취객의 싸움에 말려 들까봐 그냥 방으로 들어왔소이다. 난 그냥 보기만 했고. 이게 전부요.”라고 안절부절못했다.

‘웬 남자의 구타라~’ 검시관은 분명 구타가 사내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검시관은 사내의 집으로 갔다.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이 이미 전해졌는지 집안에서는 곡소리가 들렸다.

검시관은 사내의 부인에게 “혹시 남편분에게 원한이 있거나 하는 사람이 있었소?” 그러나 부인은 “남편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인데, 서로 간에 무슨 원한이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검시관은 다시 “그렇다면 혹시 남편분이 어제 어디를 다녀온다거나 누구를 만난다거나 하는 말은 없었소?”라며 물었다.

부인은 남편이 간혹 코피를 흘리고 머리가 아픈 증상이 있어서 약방에 가서 침이나 한방 맞고 오겠다고 해서 오후에 집을 나섰다고 했다. ‘코피와 두통이라~ 그리고 침!’ 검시관은 그 길로 바로 의원을 찾았다. 검시관은 의원에게 사내의 증상과 치료 정황을 자세하게 물었다.

의원은 “그 사내는 덩치는 있었지만 몸이 몹시 허(虛)한 상태였소. 전에 온 몸에 종기가 난 이후로 종기는 치료가 되었는데, 몸이 많이 허약해졌던 것이요. 이후 간혹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침을 맞으러 왔는데, 요즘 무슨 괴로운 일이 있는지 항상 술에 기대어 산다고 했던 것 같소.”라고 했다.

그러고서는 사내가 어젯밤에 길거리에서 쓰러져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의원은 깜짝 놀랐다. 어제 오후에도 약방에 와서 침을 맞고 갔는데, 필시 자신의 침술을 의심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감도 있었다.

그러더니 의원은 “지금 시수(屍首, 죽은 사람)는 어디 있소? 내가 한번 살펴봐야겠소!”라고 하면서 검시관보고 앞장을 서라고 했다. 의원은 걱정스러움과 동시에 그 사내의 사인이 궁금했고 무엇보다 자신의 치료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할 셈이었다.

검시관과 함께 의원이 관아에 도착했다. 의원은 시신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 사내는 중풍(中風)으로 돌연사를 한 것 같소~”라고 했다. 검시관은 “어떤 연유로 중풍으로 죽었다는 확신을 하는 것이요?”라고 물었다.

의원은 몇 가지 이유를 들었다. “먼저 입이 한쪽으로 돌아가 있는 것이요. 이것은 바로 중풍에 의한 와사풍으로 풍이 왔다는 증거요. 어제 오후에 침을 맞으러 왔을 때는 와사풍이 없었기 때문에 필시 밤중에 풍이 온 것이 분명하오. 그리고 살빛이 누렇고 입은 벌리고 있으면 눈은 닫혀 있고, 입술 언저리에 침이 말라 있고 목에 가래가 치성해 있는 것을 보면 중풍졸사(中風卒死)의 형증이요. 또한 사내가 소변을 지린 듯한데 대변은 막히면서 소변을 지린 것 또한 졸중풍의 증상이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원은 “이 사내는 길에 어떤 자세로 쓰러져 있었던 것이요?”라고 물었다.

검시관은 “한 손을 머리쪽으로 올린 상태에서 옆으로 쓰러져 있었소이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의원은 “이 역시 한 손을 머리쪽에 두었다면 필시 갑작스런 풍으로 뇌혈맥이 터져서 심한 두통이 일어났을 것이고, 동시에 한쪽 편마비가 생기면서 옆으로 쓰러졌을 가능성이 높소. 중풍의 발병시간이 낮 동안이었다면 누군가 보고서 의원에게 알려 침으로 구급처치를 할 수 있었지만 밤중에 쓰러졌던 것이 안타깝구려. 뒤통수 후발제(後發際,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한 곳, 숨골부위)에 있는 풍부혈 부위의 혈맥이 터졌다면 쓰러지면서 즉사했거나, 즉사는 아니더라도 아마 2식경(食頃)을 넘기지 못했을 거요.”라고 안타까워했다.

의원은 자신의 침술과는 무관하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검시관은 의원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사인이 술이나 구타는 원인이 아니겠소?”
의원은 “얼굴은 온통 붉게 달아오른 것을 보면 술에 만취했었던 형증(形症)처럼도 보이고, 또한 배는 과도하게 부풀어 올랐고 코피가 약간 보이는 것을 보면 법문에 쓰여진 중주사(中酒死, 술을 많이 먹어 죽음) 조문과 일치하는 것도 같소이다. 그러나 이 사내는 평소에도 이 정도의 술은 마셨기에 이 정도의 술로 돌연사를 한 정도는 아닌 것이요. 간혹 만취 후 구토를 해서 토사물이 기도를 막아서 죽기도 하지만 입안에 토사물은 없소. 무엇보다 과음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와사풍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요. 허나, 술도 연관이 있는 것이 술을 마시면 혈맥이 확장되는데 추운 겨울날 밤에 과음을 하고서 밖에 있었으니 혈액이 갑자기 쪼그라들어서 중풍을 재촉했을 수는 있겠소. 마치 불에 달군 뜨거운 항아리를 갑자기 찬물에 넣으면 항아리가 박살이 나는 것과 같소.”라고 설명을 했다.

검시관은 의원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세하게 기록을 했다. 의원은 이어서 “아마도 이 사내는 평소에 몸이 허(虛)한 상태에서 풍기(風氣)가 있었는데, 이기지 못할 술까지 과음하는 것을 일삼았으니 허해서 풍이 생겼고, 술기운이 풍을 더 재촉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오. 중풍은 청천벽력과 같아 모든 병 가운데 가장 갑작스럽게 일어나고, 또한 급사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 질환 중 하나요.”라고 설명을 했다.

검시관은 다시 한번 검험(檢驗)을 했다. 그러고 보니 ‘몇 번을 검시해도 상처가 없는 경우’의 법문의 내용과 일치했다. 특히 명치, 심장, 간부위 그리고 고환과 같은 급소를 자세하게 살펴야 한다는 내용을 보고 다시 한번 검험했지만 역시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이를 보던 의원이 “누군가 어깨를 쳤다고 하는데, 어깨 부위에 피멍도 없고 게다가 어깨는 급소라고 할만한 것도 없기 때문에 어깨의 구타가 어찌 즉사의 원인이 되겠소?”라며 거들었다.

검시관은 형증(形症)만 쫓게 되면 이면의 핵심을 벗어나게 되고, 허상(虛像)만 쫓으면 객관적인 형증을 놓치게 되니 한순간에 시비가 갈려 생사의 길이 나뉘게 되기에 항상 객관적인 증거를 중시했다. 이번 사건은 자칫 의원이 아니었으면 사내의 사인을 구타에 의한 것으로 판단해서 애먼 사람을 잡아들일 뻔했다.

검시관은 의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서는 ‘남자의 사망 원인은 만취(漫醉) 후 추운 겨울날 밤길에서 중풍으로 인해 졸연히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실인(實因)은 병사(病死)임’이란 결론을 내서 검시장(檢屍狀)으로 보고를 올렸다. 억울한 죽음뿐만 아니라 억울한 누명도 없어야 하는 것이 검시관의 임무였다. 검시관의 오늘 하루도 그렇게 지났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검요> 醉後中風卒死. 相關一說, 卽此獄關捩, 而某日往來之事, 可訝. 觸寒二字, 亦此獄肯綮, 而某女然疑之言, 莫辨. 計其死, 則一晝夜有寄, 不打固如是乎? 詰其打, 則半半句語無著, 速死, 此何故也? 氣喘也聲咽也, 瘡餘之筋骨易虛, 而瘡未必皆死. 身煩焉胸鬱焉, 醉中之臟腑難全, 而醉未必皆死. 旣憑招而不得, 當以檢爲主. 중략. 唉, 彼已枵之軀, 加以難勝之酒, 虛故生風, 醉故引風. 風是諸病之最急者也, 急症急死, 更無他疑. 而肉色黃, 口眼合, 流涎沫等症, 鑿鑿脗合於無冤錄中風卒死條是乎等以, 實因段, 以醉後中風卒死懸錄後.(취한 뒤 중풍으로 갑자기 죽은 것. 서로 관련되었다는 것이 이 사건의 관건인데, 어느 날 왕래했던 일이 미심쩍었다. 한기가 들었다는 것도 이 사건의 핵심인데, 모 여인의 그랬던 것 같다는 말을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었다. 사망 시간을 따져 보니 하루 밤낮 남짓인데, 맞지 않고서 이럴 수가 있을까. 맞았는지를 추궁했지만 한마디 말도 나오지를 않았으니, 빨리 사망한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숨을 헐떡이고 목이 메이는 것은 종기를 앓고 보면 몸이 허해지기 쉬워서라지만, 종기를 앓는다고 다 죽지는 않는다. 몸이 괴롭고 가슴이 답답한 것은 취중에 오장육부가 온전하기 어려워서인데, 취했다고 다 죽지는 않는다. 진술을 가지고 해결이 안 되니, 검시를 위주로 해야 했다. 중략. 아, 그 허한 몸에 이기지 못할 술까지 먹어 놓았으니, 허해서 풍이 생긴데다 술기운이 풍을 더 불렀다. 풍은 모든 병 가운데 가장 갑작스러운 것이니, 갑작스러운 병증으로 급사했음은 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살빛이 누렇고, 입과 눈이 닫혀 있고, 침 거품이 흘러나온 형증은 무원록, 중풍졸사 조문과 확실히 일치하기에 실제 원인은 ‘취한 뒤 중풍으로 갑자기 죽은 것’으로 기록했다.)

< 부인대전양방> 夫中風者, 虛風中於人也. 중략. 血氣虛損, 故令中風也. 當察口眼開闔以別重輕, 涎沫有無以明證治. 如眼開口閉, 手足不開, 涎不作聲者可治. 如眼閉口開, 聲如鼾睡, 遺尿者死.(중풍은 사람이 허약한 것을 틈타 풍이 적중한 것이다. 중략. 혈기가 허약하고 손상되어 중풍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입과 눈의 여닫음을 살펴 병의 경중을 감별하고 침과 거품의 유무에 따라 병증과 치료법을 명확히 한다. 만약 눈을 뜨고 있고 입을 닫고 있으며 손과 발이 벌려져 있지 않고 침을 흘리지 않으며 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치료할 수 있다. 만약 눈을 감고 있고 입을 벌리고 코를 골며 곯아 떨어진 듯한 소리를 내고 소변을 통제하지 못하고 흘리는 경우에는 사망한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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