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최악 출산율 부른 '표어' [강진규의 데이터너머]

강진규 2022. 12. 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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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장 유명한 인구 표어 중 하나다. 1970년대 말, 인구폭발을 막자는 취지로 나온 말이다. 정부의 요구에 국민들은 호응했다. 2000년대 이후 인구가 감소해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당시엔 생각하지 못했다.

이같은 인구표어는 전쟁 이후인 1950년대 처음 등장해 199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나왔다. 과거에는 효과가 컸지만 개인주의가 확산된 최근에는 소위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평가다.

 "5명은 낳아야" → 베이비 부머

전쟁의 참상 한복판을 지난 1950년대에는 인구 부족이 문제였다. 빗발치는 포탄과 피난행렬 속에 사망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 때 정부가 내세운 표어는 “3남 2녀로 5명은 낳아야죠”. 자녀를 많이 낳아야한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표어였다. 국민들도 많은 자녀를 낳는 데 익숙했다. 이 표어는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베이비부머의 탄생에 일조했다.

약 10년만에 상황은 바뀌었다. 인구 폭발이 국가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인식이 퍼졌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다. 정부는 1961년 대한가족계획협회를 발족하고 인구증가 억제책을 펴기 시작했다. 


 가족계획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표어가 이 무렵 나왔다.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키우자”, “행복한 가정은 가족계획으로” 등이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자극적인 메시지도 등장했다. 이 무렵의 적정 자녀 수는 3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3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 이전에 단산하자”는 내용의 표어도 있었다.


 1970년대부터는 자녀 수를 줄이자는 메시지가 더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1971년 정부는 “딸·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며 자녀 수를 두명으로 줄이자고 강조했다. 당시 한 해 출생아 수는 103만명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었다. 정부가 출산 감소를 유도한 이유가 담겨있는 내용도 있었다. “둘만 낳아 식량조절”이다. 생산성이 낮아 식량이 충분하지 않았을 시절,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 기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란 판단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출산 억제 정책에 출산율 급감


197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메시지는 더 강해졌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는 표어가 이무렵 나왔다. 198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자녀를 한명만 낳을 것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둘도 많다!”는 짧고 강렬한 메시지부터, “하나 낳아 알뜰살뜰”, “축복 속에 자녀 하나 사랑으로 튼튼하게” 등도 표어로 선정됐다. 냉전으로 자유진영과 공산권의 갈등이 심각했던 사회상황을 반영한 “무서운 핵폭발 더 무서운 인구폭발”도 눈에 띈다.


 정부의 목표는 합계출산율을 1986년까지 인구대체수준인 2.1명으로 낮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가족계획 정책의 효과는 예상보다 컸다. 목표보다 5년 이른 1983년 합계출산율이 2.1명으로 떨어졌다.

민주화 이후인 1990년대는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는 인구표어는 많이 등장하지 않았다. 남아선호 사상을 억제하려는 차원에서 “아들바람 부모세대 짝꿍 없는 우리세대” 같은 내용이 일부 있었던 정도다. 

1995년부터 상황이 급반전됐다. 저출산이 노동력 감소와 사회보험재정의 악화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가 각계 전문가와 함께 만든 인구정책발전위원회는 인구 억제정책을 즉각 폐기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정부는 1996년 인구억제정책을 폐기했다.

외환위기 이후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2000년대 이후엔 인구를 늘리기 위해 출산을 유도하는 내용의 표어가 쏟아졌다.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하나는 외롭습니다.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입니다”, “한 자녀보다는 둘, 둘보단 셋이 더 행복합니다” 등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엔 이같은 인구표어에 호응하는 국민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2000년 1.48명이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 수)은 지난 2020년 0.84명으로 크게 줄었다. 말뿐인 표어보다는 보육 친화적인 환경을 구축하고, 실질적인 지원을 늘려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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