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 강남역에 빈 택시가 줄서있다니…”

장근욱 기자 2022. 12. 3. 03: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심야 할증제 확대 첫날 서울 도심 달라진 풍경

지난 1일 오후 11시 30분 서울 서초구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 ‘빈 차’라고 적힌 지붕 위 택시 표시등에 불을 밝힌 택시들이 20대쯤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15분 뒤엔 택시 숫자가 약 60대로 늘어나 줄도 400m가량으로 길어졌다. 심지어 길에 택시가 너무 많이 늘어서는 바람에 차로를 차지해, 교통 정체가 빚어지기도 했다. 2일 오전 1시쯤이 되자 한때 강남대로 편도 4차로가 택시로 가득 차기도 했다.

2일 오전 1시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신논현역~강남역 500m 구간) 편도 4차로가 손님을 태우려고 하는 '빈차' 택시들로 가득 차 교통 정체를 빚고 있다. 파란 신호에도 택시가 움직이지 못해 택시 차량마다 빨간 브레이크 등이 켜져 있다. /장근욱 기자

강남역 일대는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번화가 중 한 곳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이 근처에서 시민들은 밤마다 극심한 ‘택시 대란’을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이날은 빈 택시가 길게 늘어서는 낯선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와, 이게 다 빈 택시야?”라고 놀랄 정도였다.

비슷한 시각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도 강남역과 유사한 상황이었다. 이곳 역시 서울의 대표적인 번화가지만, 오후 11시 손님을 태우려는 빈 차가 150m에 걸쳐 20여 대 줄지어 서 있었다. 오전 1시쯤엔 늘어선 택시 탓에 차량 정체가 생기자 경찰이 일부 택시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일도 생겼다.

이런 변화는 서울시가 1일부터 새로운 택시 할증 요금 제도를 시행한 여파다. 서울시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풀린 지난 5월 전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심야 택시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해, 이날부터 심야에 낮보다 더 비싼 요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할증 요금’ 적용 시작 시각을 자정에서 오후 10시로 2시간 당겼다. 요금 자체도 올려줬다. 원래는 할증 기간인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 기본요금이 3800원이었는데 이날부터는 오후 10~11시, 오전 2~4시는 기본요금이 4600원, 오후 11시~오전 2시는 5300원이 됐다. 할증이 적용되는 시각에는 운행거리·시간에 따라 추가로 붙는 요금도 시간대별로 종전보다 20~40% 인상됐다.

거기다 서울시는 강남역이나 홍대입구 등 심야 유동인구가 많은 시내 11곳에서 이날부터 한 달간 각종 모임이 많은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심야 승차지원단’ 제도를 운영한다. 승객을 한 번 태우면 택시 기사에게 오후 11시 30분부터 다음 날 0시 30분까지 1만원, 0시 30분부터 오전 1시 30분까지 1만2000원을 인센티브로 준다. 택시 한 대가 밤사이 인센티브를 여러 번 받을 수 있다. 이날 밤 인센티브 대상 차량은 약 1500대였다. 택시조합 자체 재원과 교통카드 결제 서비스 회사인 ‘티머니’가 조성한 공익 기금에서 인센티브로 나가는 돈을 대기로 했다.

1일 오후 11시 50분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일대인 서초구 강남대로에‘빈 차’라고 적힌 택시 표시등에 불을 밝힌 채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수십 대가 길게 늘어서 있다. 2일 오전 1시 30분까지 현장에서 지켜보니 택시 줄이 가장 길 때는 400m에 달했다. /장근욱 기자

요금 인상에 웃돈까지 얹어주자 택시 수가 늘어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날 심야(오후 11시~다음 날 오전 2시) 서울 시내에서 운행한 택시는 2만3649대로 일주일 전인 지난 24일보다 43% 늘었다. 개인택시가 일주일 전보다 6112대 늘어난 1만6195대, 법인 택시가 984대 늘어난 7454대였다. 개인택시의 경우 코로나 전인 2019년 12월 야간 평균 운행 대수가 약 1만5000대였는데, 지난 1일 심야에 나온 개인택시는 이보다 더 많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24일은 우리나라와 우루과이의 월드컵 첫 경기가 있어서 택시 숫자가 평소보다 적어 대등하게 비교하기는 어렵고 이번엔 한파로 승객이 줄어든 여파도 있다”면서도 “개인택시엔 확실히 정책 효과가 있다고 보고 계속 모니터할 방침”이라고 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한파가 지나면 사람이 많아져 빈 택시 잡기가 다시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 오후 11시 30분쯤 서울 광화문에서 여의도로 이동하는 택시를 부른 직장인 김모(27)씨는 “평소에는 이 시간에 택시 잡으려면 10분은 불러야 하는데 오늘은 바로 잡혀서 좋았다”고 했다. 반면 택시 기사 이중봉(66)씨는 이날 자정쯤 30대 남성 손님을 태우고 강서구 염창동에서 영등포구 선유도역으로 3km 거리를 운전했는데, “손님이 내리면서 ‘택시요금 4000원 나오던 걸 1.5배로 늘려서 받냐’고 항의해 설명하느라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