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 도전 끝에 우승…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이혜운 기자 입력 2022. 12. 3. 03:03 수정 2022. 12. 3. 06: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주말] [이혜운 기자의 살롱]
전세계 2억명 MZ가 관람한 ‘롤드컵’
10년 만에 우승한 프로게이머 데프트
“팀게임은 팀이 가장 중요해요. 외부에서 뭐라고 하든 우리끼리는 무너지지 말자고 했어요.”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에 있는 롤 전용 경기장(롤파크)에서 만난 데프트 김혁규 선수는 ‘롤드컵’으로 불리는 ‘2022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에서 10년 만에 우승컵을 들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동갑내기 두 소년이 있었다. 한 소년은 열여섯에 프로 선수로 데뷔한 후 줄곧 ‘최강자’의 삶을 살았다. 국내 리그 우승만 10회, 세계 최고 대회 트로피도 세 번이나 들어 올렸다. “부진은 있어도, 몰락은 없다”는 말을 듣는 그는 프로게이머 페이커(26·이상혁)이다.

또 한 소년은 페이커와 같은 시기 프로 선수로 데뷔했고, 대부분 라이벌 팀에서 활동했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는 법. 그는 늘 ‘언더독(약자)’이었다. 국내 리그는 2회 우승, 중국 리그에서도 두 번 우승했지만, 유독 세계 대회와는 인연이 없었다. 불과 작년까지 그의 최고 기록은 4강, 그마저도 데뷔 직후인 2014년 기록이다. 이후 다섯 번이나 8강에서 탈락한 그는 프로게이머 데프트(26·김혁규)다.

게임업계에선 노장(老將)으로 불리는 두 청년이 지난달 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내경기장 체이스센터에서 만나 세계 최강자를 가렸다. 탑독과 언더독의 대결, 영원한 우승후보와 아무도 우승을 점치지 않은 선수의 만남. 승자는 언더독, 데프트가 이끄는 ‘DRX’였다.

이들이 프로 선수로 활동하는 종목은 e스포츠 중 하나인 ‘리그오브레전드(이하 롤)’다. 2009년 미국 라이엇게임즈가 개발한 게임으로 5명씩 팀을 이뤄 싸우는 전투 게임이다. 각 팀별로 탑, 정글, 미드, 바텀, 서포터란 포지션이 있고, 이들은 150개 이상의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챔피언을 선택해 게임을 할 수 있다. 상대방 진영에 있는 최종 목표 ‘넥서스’를 파괴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5명이 각자의 포지션에서 상대방의 진영을 노리며 돌진한다는 점에서는 축구와, 앉아서 하는 두뇌 게임으로 상대방의 최종 목표를 파괴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란 점에서는 한국의 장기, 서양의 체스와 비슷하다. 현재 전 세계 롤은 매월 1억명 이상, 매일 2700만명 이상이 경기를 하고 있다.

이들이 일 년에 두 번 전 세계 대항전을 치르는데, 한 해 중간에 치르는 경기가 ‘MSI(미드 시즌)’, 연말에 치르는 경기가 ‘월즈(Worlds·League of Legends World Championship)’다. 축구의 월드컵과 비슷하다고 해서 ‘롤드컵’으로도 불린다. 롤은 2023년 열리는 제19회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기도 하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자사 보고서를 통해 예측한 올해 전 세계 예상 시청자수는 2억7600만명, 이는 미국 최대 스포츠인 미식축구리그(NFL)의 2022년 시청자(2억7000만명)를 웃도는 수치다.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프로 야구) 시청자 수보다 많다. 미국 메이저리그가 팬들의 고령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반면, 롤드컵은 젊은 관객이 꾸준히 유입되는 분야. 전 세계 MZ 세대 남자들의 축구이자 체스로, 이들은 “BTS는 몰라도 페이커와 데프트는 안다”고 말한다.

그들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 데프트 김혁규를 지난 18일 서울 종로에 있는 롤 전용 경기장(롤파크)에서 만났다.

지난달 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내경기장 체이스센터에서 우승컵에 입을 맞추고 있는 데프트. /LoL Esports 트위터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롤드컵이 시작되기 전, 데프트가 이끄는 DRX의 우승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롤드컵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국내 리그에서 상위권에 들어야 한다. 한국에 주어진 출전권은 4장. 우승과 준우승팀인 젠지와 T1이 출전권을 받았고, 여름 리그 4위였던 담원 기아와 6위였던 DRX가 선발전을 통해 출전권을 받았다. 4시드로 롤드컵에 진출한 DRX는 예선전부터 치러야 했다. 각국에서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 세계 대회. 어느 경기든 만만할 리 없었다. 힘들게 예선을 통과하고, 만난 첫 본선 조별리그 경기 상대는 유럽 강호팀 ‘로그’. 예상대로 DRX가 로그에게 패하자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DRX의 롤드컵 일정은 여기까지구나’. 그러나 DRX 주장 데프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팀 플레이만 잘한다면, 충분히 상대를 꺾을 수 있어요. 패배에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끼리만 안 무너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요.”

이 말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갔고, ‘언더독 승리의 상징’이 됐다. 현재 진행 중인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약체였던 사우디아라비아가 강호 아르헨티나를 꺾었을 때도 데프트의 이 말이 회자됐다.

-언더독의 상징이 됐다. 우승 비결은?

“팀이다. 그동안 내가 계속 패배했던 건 상황이 어려워졌을 때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팀원들을 믿었다. 힘든 경기를 많이 치르면서 서로 단단해진 것도 있었다. ‘내가 무너져도 팀원들이 잡아줄 것이다, 반대로 팀원들이 무너지면 내가 잡아줄 수 있다’고 독려했다. 올해는 우리가 정말로 ‘팀다운 팀’이어서 우승했다.”

-’팀’이 그렇게 중요한가?

“우승한 팀들, 아니 다른 스포츠들을 다 통틀어봐도 최고의 선수들만 모여 있다고 우승하는 게 아니더라. 결국 다섯 명이 다 자기 역할을 해줘야 이길 수 있다.”

-팀원들에게 무슨 말을 했나.

“우리끼리는 무너지지 말자. 믿어야 한다. 외부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든 우리끼리만 안 무너지면 결국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무엇보다 재밌게 하자.”

다시 롤드컵 결승전. 우승팀 선정 방식은 5전3승제, 경기는 치열한 접전 끝에 마지막 5세트였다. 비장한 분위기가 흐르던 T1 선수석과는 달리, DRX 선수들의 얼굴은 평온했다. 자신의 챔피언을 선정하는 시간, 데프트는 서포터 베릴(조건희)에게 평소 잘 쓰지 않던 챔피언 ‘바드’를 권한다. 축구로 본다면, 결승전에서 주전인 손흥민 대신 후보 선수를 조커로 넣은 것이다. 베릴은 주장을 믿고 ‘바드’를 택했고, 데프트는 씨익 웃으며 말한다. “가자!” 이 장면도 “즐기는 사람은 누구도 이길 수 없다”는 문구과 함께 게이머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마지막 세트, 웃으면서 ‘바드’를 택한 게 화제였다.

“우리는 언제나 5세트를 꽉 채우며 싸웠다. 그런데 5세트까지 가면 대부분 이겼다. ‘또 5세트네? 재밌다.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그래서 모험일 수도 있는 ‘바드’를 택했다. 즉흥적인 선택이었지만, 베릴이 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재미있게 하자고 해도, 큰 경기를 즐기기는 힘들지 않나?

“준비하는 과정이 재미있지 않았을 뿐이지, 경기 할 때는 재미있었다. 그만큼 열심히 준비했다.”

-결승전에서 바론을 빼앗겨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놓쳤을 때, 팀원들에게 “할 수 있다”며 다잡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정말로 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빨리 하려고 했다. 보통 이런 순간을 당하면, 팀원들의 분위기는 급격히 가라앉는다. 이 공기를 빨리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팀의 장점은 피드백, 특히 위기 상황에서 수정 과정이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우승한 날 밤 축하 파티를 했나?

“술을 안 좋아해서 그냥 밥만 먹고 들어가서 쉬었다. 다음 날에는 바로 포상 휴가를 받아 라스베이거스로 갔다. 거기서도 실감이 안 나서 ‘어떻게 놀지?’보다는, ‘이거 진짜 우승한 거 맞나’란 생각에 호텔에서 계속 경기 영상을 찾아봤다.”

“당신들이 틀렸다고 말할 자격을 갖추는 데 10년 걸렸다.” 서울 종로 롤파크에서 만난 데프트는 “날 비판하는 사람들을 이길 방법은 결과로 보여주는 것밖에 없었다”고 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당신들이 틀렸다고 말할 자격

롤은 선수들의 에이징 커브(aging curve·나이가 들면서 신체 능력이 하락하고 성적이 떨어지는 것)가 가장 빠른 종목이다. 데프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수들은 현재 감독과 코치를 맡고 있다. 특히, 그가 맡고 있는 포지션인 ‘원딜’이 가장 에이징 커브가 심하다. 롤드컵에는 ‘원딜 21세 징크스’라고 해서, 역대 우승팀 중 21세를 넘는 원딜이 없었다는 말도 있다. 데프트는 이 징크스를 깨트리고,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올렸다. “매일 ‘너는 우승할 수 없다, 부상 이후로 끝났다, 나이가 많아서 끝났다’ 같은 얘기들을 보면서 당신들이 틀렸다고 말할 자격을 갖추는 데까지 10년이 걸린 거 같아요. 저희 팀의 우승이 저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께 희망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들이 틀렸다고 말할 자격?

“프로 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은 비판, 비난을 들었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연습해, 경기 결과로 보여주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매번 그것을 못 보여주니까, 항상 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이겼다. 너희들이 틀렸다’ 그런 말을 자신있게 할 자격이 생긴 것 같아서 좋았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2020년 롤드컵 8강에서 떨어졌을 때. 남들보다 더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뒤처지는 느낌을 받았다. 부상까지 겹치면서 ‘내가 다시 경기를 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부상과 기량 저하도 같이 왔다.”

DRX 데프트 김혁규 선수

-어떻게 극복했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가장 컸다. 동료 선수, 감독, 코치 등 나랑 꼭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손대영 감독(현 한화생명e스포츠)이 ‘당장은 네가 못할 수도 있지만 나는 너를 믿는다. 무조건 너와 같이 할 거다’라고 말해준 것도 정말 감사했다.”

롤은 선수들의 팀 이동이 많은 종목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데프트는 지금까지 ‘삼성 갤럭시 블루’, ‘중국 에드워드 게이밍(EDG)’, ‘KT 롤스터’, ‘한화 라이프 이스포츠’, ‘DRX’ 등을 거쳤다. 올해 스토브리그에서는 ‘담원 기아’로 이적했다.

-중국 리그는 어떻게 진출하게 됐나?

“2014년 롤드컵 4강에서 떨어진 후였다. 그때 우승팀이 삼성 화이트라는 팀이었는데, ‘그 팀을 이길 수 있는 팀을 가고 싶다, 그래서 롤드컵에서 우승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팀을 알아봤다. 그때 중국 리그에서 제안이 왔다. 당시 중국 EDG팀에는 클리어러브(밍카이)라는 선수와, 아론(지싱)이라는 코치가 있었다. 두 사람과 이야기를 하며 나와 비슷한 기질이라고 느꼈다. 게임에 대한 진심과, 롤드컵 우승을 위해 사는 삶. 이들과 함께라면 내가 후회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국 리그와 한국 리그, 어떻게 다른가?

“사실 가기 전까지만 해도 ‘뭔가 좀 다르겠거니’ 하고 갔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깐, 결국 잘하는 선수들의 연습 방식이나 생활은 다 똑같더라. 다만 팬분들이 조금 더 적극적이었다. 공항이나 호텔 앞에도 꽉 차 있고. ‘내가 연예인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중국 리그가 롤에 많이 투자하기로 유명한데.

“확실히 구단이 돈이 많은 것 같긴 했다. 대회가 있으면 주변 지인들을 모두 초대해주는데, 그들이 묵는 호텔이 구단주 소유였다.”

-롤드컵 우승 후 중국 언론도 “하늘의 선택을 받아 빛나는 별이 됐다”며 축하하더라.

“중국에서 활동한 기간은 겨우 2년이다. 떠나온 지도 오래됐는데, 내게 좋은 일 있을 때 같이 기뻐해주는 걸 보면서 ‘열심히 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진출 후에도 롤드컵 8강에서 여러 번 고배를 마셨다. 그래서인지 이번 롤드컵에서 4강 진출이 확정됐을 때 반응이 더욱 극적이었다.

“사실 경기 끝나고 인터뷰하러 나갈 때 ‘안 울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진행자 분이 ‘2942일 만에 4강 진출’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그 시간들이 전부 머리에서 스쳐지나가면서 다리에 힘이 풀리더라. 그대로 주저앉아 울었다.”

-그날이 생일이기도 했다.

“데뷔한 후로 내 생일은 언제나 롤드컵에서 떨어지고 난 뒤였다. 그래서 생일을 행복하게 보냈던 기억이 없다. 그런데 그날은 내가 생각했던 가장 큰 벽을 뚫기도 했고, 많은 분들이 내 생일을 축하해주시니깐.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다.”

지난달 5일 열린 ‘롤드컵’ 결승전에서 별명이 알파카인 데프트를 응원하는 팬의 모습. / LoL Esports 트위터

◇ 실력으로 부모님 설득

-이번 결승전은 페이커와 ‘마포고 더비’로도 화제였다.

“페이커(이상혁)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비교도 많이 됐는데, 좀처럼 같은 위치에 서거나 따라잡을 기회가 없었다. 페이커는 같은 학교 출신을 떠나서, 롤이라는 게임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다. 그런 선수를 이기고 우승했을 때는, 누구든지 다 인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와 결승에서 붙는다는 게 굉장히 좋았다.”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초등학교 때는 밝고 나서는 걸 좋아하던 아이였다. 맨날 까불고. 그런데 집이 잘 살지 못해 이사를 다니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계속 다른 동네로 진학하다보니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학창시절 꿈은?

“초등학교 때부터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자라서, 막연히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었다. 어릴 때라 잘하진 못했고, 그냥 컴퓨터랑 하거나 형이 하는 걸 보는 정도였다. 그때 스타크래프트를 하려면 치트키(명령어)를 영어로 외웠어야 했는데, 내가 영어로 말하며 컴퓨터를 하니, 어머니가 영어 공부한다고 되게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웃음).”

-어떻게 프로게이머로 데뷔를 했나?

“고등학교 때 롤을 하다 게임 점수가 높아지니 프로팀 눈에 띄어 데뷔하게 됐다.”

-데뷔 후 하루 일과는?

“낮 12시 반에 일어나서 오후 1시부터 연습하고, 새벽 3~4시쯤 퇴근해서 잔다. 이 일과가 1년 내내 반복이다.”

-부모님 반대는 없었나?

“당연히 심했다. 특히, 난 부모님 몰래 게임을 하다, 깜짝 프로 데뷔 선언을 한 거라 더욱 놀라셨을 거다. 특히 공무원인 어머니의 반대가 컸다. 그런데 형이 부모님을 대신 설득했다. 내 성적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실력이고, 타고난 재능이다’라며 부모님께 설명했다. 롤드컵에서 우승하자 형이 완전 오열을 했다고 하더라. 고마웠다.”

-롤드컵 우승 후, 부모님 반응은?

“굉장히 좋아하셨다. 10년 동안 내가 힘들어 하는 걸 가장 가까이에서 보셨으니깐. 어머니는 이번 미국에서 열린 결승전에도 오셨다. 경기 끝나고 잠시 만났는데 얼마나 응원하셨는지 목이 다 쉬셨더라.”

-자녀가 프로게이머가 되는 걸 반대하는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은?

“솔직히 말하면, 난 부모님이 적극적으로 밀어줬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 같다. 부모님은 반대하는 게 맞다. 그 반대를 꺾을 만한 의지와 실력이 있는 사람만이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그 정도로 원하는 직업이고 자신이 있다면, 결국은 부모님도 막을 수 없다.”

보통 프로게이머의 전성기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다. 당시만 해도 프로게이머 활동과 학교 생활을 병행하는 건 불가능해 데프트와 페이커 둘 다 마포고를 중퇴했다. 그러나 지금 마포고 정문에는 ‘마포고 전설의 듀오, 2022 LOL 월드챔피언십 제패’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10년 전과 비교해, 프로게이머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 마포고에서 명예 졸업장을 주겠다는 연락도 왔다. 초반에는 프로게이머라고 하면 어디 PC방에서 컵라면 먹으면서 연습하는 줄 알더라. 얼마 전에는 후원사인 진옥동 신한은행장님과 저녁을 먹었는데, 롤뿐만 아니라 철권 등 다른 게임도 많이 알고 계시더라.”

-대학에 진학할 생각은 있나?

“없다.”

DRX 데프트 김혁규 선수

-현재 연봉은?

“액수를 공개하긴 어렵고, 처음 시작했을 땐 0원이었다. 그땐 연봉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상금이 세 달 해봤자 100만원 나왔나? 지금은 남부럽지 않게 받는다.” 데프트의 연봉은 국내 리그 최고 수준으로 업계에서는 20억원 정도로 추산한다.

-그렇게 적은 돈으로 어떻게 생활했나?

“‘잘하자’는 생각뿐이었다. 한국 리그가 커진 이후에도 크게 생활이 바뀐 것은 없었다. 이번 시즌 중간에 신한은행이 후원사가 되면서, 비행기 비즈니스 클래스도 처음 타봤다.”

-프로게이머가 안 됐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을 것 같다. 내 주변에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다. 난 롤이 가장 재미있었고, 지금도 가장 재미있다.”

-e스포츠 발전을 위해 바라는게 있다면?

“예전 스타크래프트 시절에는 공군 상무팀 ACE 부대가 있었다. 만약 롤도 이런 게 가능하다면, 군대에서도 쉬지 않고 경기를 하고, 제대하고도 프로 선수로 활동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의 목표는?

“그냥 변하지 않는 것. 아직 은퇴는 모르겠다. 군 복무 후에도 기량이 안 돌아온다면, 그때 은퇴할 생각이다.

-데뷔부터 우승까지, 매 순간이 ‘소년 만화’(스포츠 만화에서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우승하는 것) 같다.

“우리가 생각해도 DRX 우승은 정말 말이 안 된다. 영화 ‘트루먼쇼’도 떠올랐다. 우리끼리 ‘너 사실 연기자지?’ 이런 말도 하고. 다 같이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하하!”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