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밀라 왕비가 폐지한 영국의 시녀 제도는?
현재는 귀족 출신 보좌·말동무
왕실 음모·정치 갈등에 휘말리기도
커밀라 왕비가 용어 변경·역할 축소
2일 외신들에 따르면 영국 시녀제의 역사는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워싱턴포스트(WP)는 “시녀의 개념은 중세 이래 유럽 역사에서 여왕·왕비를 지원하기 위해 존재해왔다”며 “여왕·왕비가 옷을 입거나 목욕을 할 때에도 시녀가 도움을 줬으며, 초창기에는 급여를 받는 하인들이 그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온라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국왕과 떨어져 오랜 시간을 보낸 왕비들은 하인과 가신들로 구성된 별도의 궁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으며, 하인 중 일부는 왕비의 의복 착용, 개인 위생 및 기타 사적인 일들을 보조해야 했기에 여성들로 구성됐다”고 설명한다.
거느리는 시녀의 규모는 군주마다 달랐다. 100명 이상의 시녀를 둔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훨씬 더 적은 규모를 유지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경우 최소 5명의 시녀를 유지했고, 여왕이 직접 선발했다고 영국 스카이뉴스는 전했다.
여왕이나 왕비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임무를 맡은 까닭에 시녀들은 왕실 음모에 휘말리거나, 정치권의 영향을 받는 일도 있었다. 1839년 발생한 이른바 ‘침실 위기’(Bedchamber Crisis)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은 휘그당 성향이 강했는데, 휘그당 출신 윌리엄 램 총리가 사의를 밝히자 마지못해 토리당(현 보수당) 대표 로버트 필에게 새 정부를 구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필 대표는 일부 침실 시녀들을 휘그당 정치인의 아내나 친척들로 교체해야 한다며 조건부 수락 의사를 밝혔다. 빅토리아 여왕이 이를 수용하지 않자 필 대표 역시 총리직을 거부하는 것으로 맞서면서 왕실과 정치권 사이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영국의 새 왕비가 된 커밀라는 최근 시녀 대신 ‘왕비의 동반자들’(Queen's Companions)이라는 용어를 쓰겠다고 밝혔다. 서신에 답장하기, 침실 보필 등 시녀가 하던 기존 일상적·행정적 역할은 아예 폐지하고, 중요한 공식 행사에만 참여해 왕비를 보필하는 훨씬 더 가벼운 역할을 맡게 된다고 BBC방송은 전했다.
그런데 왕비의 동반자들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행사에서 사달이 났다. 커밀라 왕비가 세계 여성 폭력 피해와 관련해 버킹엄궁에서 주최한 행사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최측근 시녀였던 수전 허시(83)가 흑인 참석자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내뱉은 것이다.
허시는 엘리자베스 2세가 셋째인 앤드루 왕자를 출산한 1960년 왕실에 처음 들어와 서신에 답장하는 일을 맡았다. 찰스 3세의 첫 번째 부인 고 다이애나, 해리 왕자의 부인 메건 마클이 새로 왕실에 합류했을 때 예법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여왕의 신임을 듬뿍 얻어 ‘넘버 원 헤드 걸’(No.1 head girl)이라고 불렸고, 여왕의 남편 필립공 장례식 때 여왕 옆에 서 있던 유일한 인물이다. 여왕의 곁을 60년 이상 지킨 그는 영국 왕위 계승 1순위인 윌리엄 왕세자의 대모이기도 하다.
그의 작고한 남편은 1986년부터 10년간 BBC 이사장을 지낸 마마듀크 허시다. 이들 부부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삶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에도 살짝 등장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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