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속이는 건 인간 본능, 엄격한 거짓말 기준 세워야

입력 2022. 12. 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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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에이징
하루가 멀게 등장하는 가짜뉴스와 폭로, 진실 공방 등으로 우리 사회의 양분화와 불신의 골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부정부패를 일삼는 정치인들의 거짓말은 1년 365일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국민 4501명을 대상으로 한 ‘2022년 한국인의 직업의식 및 직업윤리’ 조사에서 정치인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지위는 가장 높은 반면 윤리의식은 최하위인 집단’으로 지목됐다. 정치인을 바라보는 민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500여 년 전공자는 ‘짐승은 궁하면 사람을 해치고 사람이 궁하면 거짓말을 한다’는 격언을 남겼다. 하지만 현실은 ‘사람은 궁하지 않아도 거짓말을 하면서 남들을 해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지난 한 달간 세간의 관심을 끈 일명 ‘7월 청담동 술자리’ 의혹도 남녀 간 사적인 대화 중에 만들어진 거짓말에서 시작됐다. 유혹적인 내용의 거짓말과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인간적 욕망이 뒤섞이면서 사회적 파장은 커졌다.

남을 잘 속이기 위해 자기기만까지

사랑하는 사이에도 비밀은 존재한다. 이때 상대방이 굳이 캐물으면 거짓말로 둘러대는 경우는 흔하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거짓말에 현직 대통령, 법무부장관, 청담동 술집 등이 등장하면서 폭발력이 커졌다. 물론 조금만 이성적인 시각을 가졌다면 첼리스트가 묘사한 청담동 술자리 장면은 2022년 한국보다는 수십 년 전 군사 정권 시절의 권력형 술파티에 더 적합해 보인다. 또 그랜드피아노와 첼로 반주에 맞춰 누군가가 동백아가씨를 부르는 모습은 낯설고 어색하다.

사실 확인이나 교차 검증(cross-check)의 과정을 거쳤다면 진위는 어렵지 않게 확인됐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월 24일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기자 출신 국회의원이 연인 사이에서 오간 거짓 주장을 중대한 비리를 폭로하듯 발표했고 더탐사는 방송을 내보냈다. 그들이 첼리스트의 거짓말을 사실로 믿었는지, 아니면 거짓말일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폭로 형식으로 발표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인간의 거짓말은 의식 세계뿐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도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인간을 포함한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는 생존과 번식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시로 속임수를 활용한다. 적자생존의 잔인한 생태계에서 자신의 본모습과 의도를 솔직하게 드러내다가는 최상위 포식자도 먹잇감을 못 구해 아사(餓死)할 수 있다. 사자도 은밀한 위장술로 접근한 뒤 순식간에 먹잇감을 공격하며, 초식동물은 사자에게 도주 방향을 속이기 위해 지그재그로 달아난다. 이처럼 서로 속고 속이는 과정을 거치는 사자의 사냥 성공률은 20% 선이다.

사피엔스는 만물의 영장답게 상대방을 속이는 능력이 탁월하다. 화려한 언어 구사 능력은 거짓말의 범주를 무한대로 확장시켰다. 유전자에 각인된 사피엔스의 거짓말 본능은 말을 시작하는 유아기부터 발휘된다. 거짓말하는 법을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아기도 물건을 깨거나 동생을 때린 뒤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는 식의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한다. 호기심 때문에, 자존감을 높이려고, 인정받기 위해 수시로 거짓말을 하던 아기도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면 거짓말이 나쁜 행동인 줄 안다. 그래도 이후 3~4년간은 수시로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그러다 열 살쯤 되면 거짓말로 얻는 이득보다 탄로 났을 때 감수해야 할 손해(비난, 따돌림 등)가 더 크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거짓말 횟수가 줄어든다. 물론 이후에도 거짓말은 지속되지만 들키지 않는 교묘한 방법을 모색한다.

이렇듯 타고난 거짓말쟁이인 인간은 남을 잘 속이기 위해 자신을 속이는 자기기만 능력도 뛰어나다〈표 참조〉. 자기기만의 핵심은 진실된 정보가 의식 세계에서는 배제된 채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거짓말을 할 때 알면서 하는 건지, 무의식적인 행동인지, 아니면 거짓말을 진실로 오인한 건지 구분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개인적 경험담 하나를 말하면 이렇다. 6명의 전공의가 한 병동에 근무하면서 환자 정보를 공유하던 때다. 하루는 심장병 수술 후 뇌경색이 생긴 환자가 입원했다. 주치의는 명의 교수에게 해결책을 물었고 그는 막힌 혈관을 녹여줄 아스피린 사용을 권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다음 날 아스피린의 출혈성 경향 탓에 뇌출혈이 발생했다. 때마침 그 교수가 회진을 돌다가 그 환자 상태를 확인하더니 대뜸 “왜 아스피린을 투여했느냐”며 주치의를 질책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용감한 친구가 “선생님의 권유로 처방했다”고 주치의를 대신해 해명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그랬을 리 없다며 화를 냈다. 그 교수가 거짓말을 했던 건지, 아니면 자기기만에 빠져 있었던 건지 지금도 판단할 수가 없다.

거짓말 안 하도록 꾸준히 교육해야

거짓말은 종류와 방법이 다양하지만 목적은 이익 추구다. 속임수가 통하면 거짓말쟁이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다. 만일 나만 거짓말을 하고 남들은 모두 진실을 말한다면 나의 이익은 극대화될 것이다. 반면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본능을 좇아 거짓말을 한다면 사회는 혼란스러워지고 매사에 진위를 가리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속임수나 거짓말에 대해서는 법적, 도덕적 책임을 부과한다. 거짓말쟁이 숫자를 줄여 사회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다.

거짓말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인간의 본능이다. 반면 거짓말을 안 하는 것은 꾸준한 교육을 통해 뇌가 철저하게 인식해야 하는 후천적인 노력의 결과다. 향후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거짓말에 대해 보다 엄격한 기준이 필요해 보인다. 거짓말에 관대한 사회에는 거짓말쟁이가 넘쳐나기 마련이다.

황세희 연세암병원 암지식정보센터 진료교수.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다수의 칼럼을 연재했다. 2010년부터 12년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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