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80] 불멍 물멍 차멍 멍멍...

백영옥 소설가 2022. 12. 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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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우울증 약을 처방받기 위해 다섯 군데 신경정신과에 갔다가 진료를 받지 못했다. 모두 예약이 차서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과정에서 상처받는다. 역설적인 건 힘들게 번 돈을 상처를 치유하는 데 다시 지불한다는 것이다.

2014년도에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제1회 멍 때리기 대회’ 포스터를 봤을 때, ‘죄책감 없이 쉬는 법’의 최신 버전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대에 ‘하지 않음’의 축약판이라 할 수 있는 ‘멍 때리기’처럼 비효율적인 일은 없다. 기왕 쉴 거 등산이나 요가처럼 내 몸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하고 싶다는 게 현대인이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정보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바라게 된다. 이곳에 있으면 저곳에 가고 싶고, 여기에서 저기를 꿈꾼다. 이런 이유로 어떻게 모든 것을 해낼 것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더 소중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 마음에 ‘빈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호흡을 수련하며 끊임없이 흘러가는 과거, 미래의 생각을 알아채고, 현재로 돌아와 바로 여기에 머무는 명상은 오래전부터 현자들의 지혜였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스마트폰으로 오염되고 분절된 시간 속에 사는 우리에게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건 ‘멍’이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모닥불을 바라보는 ‘불멍’부터 호숫가에 앉아 잔물결을 바라보는 ‘물멍’, 한강이 보이는 호텔에 앉아 차를 바라보는 ‘차멍’, 집중해서 간식을 먹거나 노는 반려견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멍멍’은 현대인이 특별한 수련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상의 명상’이다. 멍해지는 동안 시간은 느려지고, 잡념은 옅어지고, 호흡과 맥박이 안정되는 것이다.

쉬는 것과 잘 쉰 것 같은 느낌은 다르다. 최근 각광받는 ‘간헐적 단식’ 역시 내장기관에게 주는 휴식이다. 불멍은 ‘뇌’에게 주는 휴식이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필요한 건 훈련이 아니라 휴식이다. 마음이 부러진 사람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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