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창의적인 쓰레기들을 봤나”...스티로폼 플라스틱의 변신 [Culture]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2. 12. 2.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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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비엔날레 오는 16일 개막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 주제
제주도립·현대미술관서 선보여
제주현대미술관 인근에 설치된 김기대의 ‘바실리카’ [사진=제주비엔날레]
청보리는 졌지만 가파도에 꼭 가야할 이유가 생겼다. 선착장에서 머지않은 폐가에 프레스코화가 그려졌다. 26세의 이탈리아 젊은 작가 아그네스 갈리오토가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과 해녀들과 물질까지 했던 가파도의 추억을 여러 갈피로 풀어낸 벽화 ‘초록동굴’. 빈집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고 벽에 회벽칠하고 4개월간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매달려 완성했다. 6개월간 머문 섬의 이야기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삶이 얽히고 공존하는 상상의 동굴로 변모했다.
가파도 폐가에 그려진 아그네스 갈리오토의 프레스코화 ‘초록동굴’ [사진=제주비엔날레]
도보 15분 거리 해변가에 있는 글라스하우스에는 해양 쓰레기 위에 청보리가 피어났다. 홍이현숙의 작품 ‘가파도로 온 것들’이다. 섬의 해변으로 밀려오는 스티로폼 부표와 플라스틱 등 쓰레기를 통유리로 만들어진 공간 내부에 쌓아 올려, 시간이 지나면서 악취가 나기도 한다. 바닷속 생명을 위로하는 독경소리도 울려 퍼진다. 해녀들과 함께 작업한 이 설치미술은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염원하는 굿판과 같은 작업이다. 가파도는 이밖에도 레지던시인 AiR과 섬 곳곳에 설치된 앤디 휴즈, 심승욱, 윤향로 등의 작품을 ‘보물 찾기’ 하듯 만날 수 있는 흥미진진한 공간이 됐다.
가파도에 설치된 앤디 휴즈의 ‘씨스루, #씨스루가파도’
올겨울 제주가 다시 한번 예술섬으로 변신한다. 제3회 제주비엔날레가 16일 개막해 내년 2월 12일까지 이어진다. 비엔날레의 공간을 확장해 주전시장인 제주도립미술관 외에도 미디어아트 위주로 꾸린 제주현대미술관, 바다와 관련한 전시를 엄선한 제주국제평화센터, 삼성혈, 가파도 AiR, 미술관옆집 제주 등 6개 공간에서 전시가 펼쳐진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지구적 공생을 위한 예술적 실천을 찾는다는 의미의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을 주제로 삼고 16개국·55팀·165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관광 비수기인 겨울에 열리는, 5년 만의 귀환엔 우려가 더 컸다. 잡음을 일으킨 첫 행사로 사라질뻔한 데다, 전국에서 열리는 비엔날레가 또 필요하냐는 의문이 있었다. 박남희 예술감독이 소수정예 사단을 꾸려 8개월 만에 준비한 비엔날레는 그 질문에 완벽한 답을 내놓았다. 국제적 명성의 작가들을 특색 없이 모아놓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장소 특정적 미술’의 전범을 보여줬다. 왜 제주인가라는 질문에는 자연과 생태, 신화를 주제로 한 ‘맞춤옷’을 입은 신작들로 답했다. 박 감독은 “해외 유명작가들은 제주라는 섬의 매력 때문에 해보겠다고 답한 경우가 많았다. 지속가능한 비엔날레의 길을 찾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6개 공간 모두 장소적 특성도 살리면서 작품과 잘 호흡할 수 있도록 전시했다. 인간 중심 개발에 대한 반성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가능하면 생태와 환경에 저촉되지 않도록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전시 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자원이 소모되지 않는 비엔날레를 지향한다. 도록도 전자책으로 발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주의 작가들은 풍성함을 더했다. 강요배는 높이가 6.7m에 달하는 대작 ‘폭포 속으로’와 제주 바다 영상을 병치시켜 제주 자연의 장엄함을 강렬하게 펼쳐 보인다. 유창훈은 제주의 산수를 세밀한 회화로 담은 ‘한라에서 성산까지’, 박능생은 군산 오름에서 바라본 제주를 9m 화폭에 담은 ‘제주-탐라여지도’를 선보였다. 제주에 거주하며 작업한 신작도 많다. 1년 내내 제주 바다를 일기 쓰듯 128점의 그림을 그린 노석미, 해녀복을 수집해 해녀들이 몸을 말리는 ‘불턱’을 만든 이승업, ‘탐라순력도’를 거울과 미디어아트를 통해 체험형 전시로 확장한 이이남의 작업은 제주국제평화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우정수, 박광수, 윤향로, 박지혜, 자디에 사 등 1980년대생 젊은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것도 특징이다.

제주도립미술관 중정에 설치된 김수자의 ‘호흡’ [사진=제주비엔날레]
스타 작가들 작업도 다채롭다. 윤석남은 제주의 의녀 김만덕 이야기를 재해석해 핑크빛 심장 모양의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를 설치했다. 김주영은 제주도립미술관 입구에 배를 띄워 귀향의 제식을 구현했다. 김수자는 제주도립미술관 중정 유리를 특수필름으로 붙인 ‘호흡’으로 무지개처럼 빛이 부서지는 스펙트럼 효과를 만들어내 관객의 호응을 끌어냈다. 문경원 전준호는 선박 고철을 이용한 조각과 영상 설치로 불안한 미래와 인류의 지향점을 고찰하게 만드는 ‘이례적 산책’을 출품했다. 레이첼 로즈의 ‘인클로저’, 존 아캄프라의 ‘프로피코스’ 등은 놓치기 아쉬운 미디어 작업이다.

제주 전통 가옥을 레지던시로 조성한 ‘미술관옆집 제주’에선 태국 출신 세계적 퍼포먼스 작가인 리트릿 티라바닛이 집과 밭, 작업실로 손님을 초대해 환대하는 퍼포먼스를 매일 이어간다. 세계적으로 호평받은 ‘관계의 미학’을 제주에서도 구현한 것이다. 직접 만든 퇴비로 키운 작물을 이용한 음식과 술로 생과 사의 순환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업이다.

삼성혈에 설치된 신예선의 ‘‘움직이는 정원’
제주 신화의 발원지인 삼성혈은 가히 비엔날레의 하이라이트다. 제주로 이주한 신예선 작가는 원시림처럼 울창한 고목들을 적, 녹, 청 등 색색의 명주실을 촘촘하게 감은 ‘움직이는 정원’을 만들었다. 곰솔, 녹나무 등 삼성혈의 나무들이 신화들을 목격해온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 바람과 빛이 넘나드는 시간의 벽을 만든 것이다. 빛이 스며들 때, 환상적인 색실의 실루엣을 볼 수 있다. 자연과 신화가 연결된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팅통창의 영상 ‘푸른 바다 연인들’도 만날 수 있다.

다만 제주와 가파도가 나오시마처럼 예술섬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비엔날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절실해 보인다. 제주도립미술관의 휴식 공간이 될 수 있는 최병훈의 ‘태초의 잔상’,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보 점자판을 설치한 강승철의 ‘산책’, 김기대의 ‘바실리카’, 가파도의 갈리오토 벽화 등 3개월간 시한부로 설치된 작품 다수는 영구 설치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철거 가능성이 높다. 박 감독은 “장소성이 있는 작품은 영구적으로 남아 제주의 예술적 자산으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파도 글라스하우스에 설치된 홍이연숙의 ‘가파도로 온 것들’
가파도 AiR에 설치된 심승욱의 ‘구축 혹은 해체 - 환영의 틈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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