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 파업 탓 품절” 주유소 안내문 뒤엔 ‘정부 요청’ 있었다
업주들 “이런 것까지 관여하나”…노동자들도 “국민과 갈리치기” 반발
정부가 최근 휘발유나 경유 품절을 겪는 일선 주유소에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한 품절’이라고 명시한 안내문(사진)을 붙일 것을 요구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이 같은 ‘협조 요청’은 산업통상자원부 담당 부서가 주유소 경영자 모임인 한국주유소협회에 지난 1일 유선으로 통보했다.
장기화하고 있는 화물연대 파업이 휘발유 등의 공급망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주유소나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품절 안내문 문구까지 지정해준 대로 써야 하느냐’는 등 정부의 행태에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과 관계부처 장관들이 ‘불법 딱지’를 붙이고 나선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이 같은 문구 기입을 요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낳고 있다.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주유소협회는 전날 시·도지회를 통해 전국 각 지역 주유소에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품절 관련 안내문 부착 시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한 휘발유 품절’ 등과 같이 소비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안내문을 부착하여 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문자메시지는 산업부 석유산업과의 협조 요청에 따라 발송된 것으로 확인됐다.
충북 지역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A씨(49)는 “말도 안 되는 문자를 받았다”며 “사적인 영업 공간이기도 한 주유소 안에 안내 문구를 적는 문제까지 정부가 관여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어 “주유소에서 팔 상품이 없어서 걱정해야 하는 상황도 답답한데, 이런 문자를 받으니 더 화가 난다”며 “(품절의 원인을) 윤석열 정부의 안전운임제 관련 말 바꾸기 때문이라고 써 붙인다면 정부는 뭐라고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화물노동자들은 “정부가 앞장서서 주유소를 이용하는 국민들과 노동계를 ‘갈라치기’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20년째 탱크로리를 몰고 있는 B씨(47)는 “석유 품절에 파업의 책임이 없지는 않다”면서도 “정유사로부터 일감을 따기 위해 새벽 4~5시에 나왔다가 늦은 밤에 퇴근하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는데 ‘노조 이기주의’로만 몰고 있는 시각은 가당치 않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정부가 앞에서는 협상하려는 형식만 취하고, 뒤로는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식의 메시지를 퍼뜨리고 있다”고 했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게시물 부착은 정부에서 정해주는 사항이어서 요청을 받고 안내한 것”이라며 “단순히 품절이라고만 안내를 하면 시민들이 원인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표시하라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 같은 안내를 내려보낸 배경에 대해 “휴·폐업 때문이거나 주유기 고장으로 판매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며 “화물연대 파업에 의한 품절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협조해 달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철강 출하차질 1조1000억”…정부, ‘차질액’으로 압박
- 국토부, 5일부터 2차 현장조사…“복귀 않을 땐 형사처벌”
- “나도 부정선거라 생각했었다”···현장 보고 신뢰 회복한 사람들
- 국힘 박상수 “나경원 뭐가 무서웠나···시위대 예의 있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 늙으면 왜, ‘참견쟁이’가 될까
-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이사장 해임 “모두 이유 없다”…권태선·남영진 해임무효 판결문 살펴
- 내란의 밤, 숨겨진 진실의 퍼즐 맞춰라
- ‘우리 동네 광장’을 지킨 딸들
- 대통령이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사과해요, 나한테
-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 돌진…70명 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