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노가리골목 백년가게, 42년 만에 '씁쓸한 퇴장'
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시초가 됐던 호프집이 얼마전 노가리 골목을 떠났습니다. 42년만입니다.
건물 임대 계약이 연장이 안되서인데, 퇴근길 노가리에 맥주잔을 부딪히던 40년 단골들의 추억을 이예원 기자가 밀착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기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지만 보시는 것처럼 많은 사람이 노가리골목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4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이 골목에서의 마지막 행진을 함께하는 겁니다.
1980년 문을 연 이 노포는 노가리골목의 시작이 된 원조 가게입니다.
[최하용/50대 단골손님 : (사장님이) 10시까지 딱 장사하시면서 다 내쫓았어요. 가정에 가서 충실하고 잠을 자고 내일 또 와서 출근하고 일을 해라… 아버지 같은 분이죠. 손님이 손님이 아닌 '자식'…]
[이석제/50대 단골손님 : 할아버지들이 '그래서 내가 말이야, 40년 단골이야!' 그러니까 (저처럼) 30년짜리는 명함 못 내밀죠.]
노포의 세월은 근처 청계천 공구거리의 세월과 함께했습니다.
[이남이/50대 단골손님 :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손님 중) 거의 이 지역 사람들이 한 70% 이상… 단골이다 보니 제 별명이 '직원'이었어요. 단골들은 다 별명이 하나씩 있거든요. 대표적으로 왕서방이랄지. 자석 장사하시는 분은 '자석'.]
경상도에서 올라와 일을 막 배우던 20대 공구상은 이제 60대가 되었습니다.
[하대성/60대 단골손님 : 85년도부터 자주 갔지. 그때는 뭐 거기서 살았지. 저녁에는. 여름에 한 번 먹으면 5천㏄ 먹었어. 왜냐면 고추장이 매우니까.]
[강문원/60대 단골손님 : 저는 소주를 좋아했었으니까 그 어르신이 '우리 집엔 소주 안 팔아!' (그래도) 주변에 있는 사람하고 대화하고…]
이런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2015년엔 서울시가 미래유산으로, 2018년엔 중기부가 백년가게로 지정했습니다.
하지만 계약 연장이 안되면서 더이상 남아있을 권리가 사라졌습니다.
을지로 노가리골목은 이른바 '힙지로'라고 불리며 유명해졌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단골들은 씁쓸해합니다.
[하대성/60대 단골손님 : 연탄불에 손수 해서 이렇게 손으로 요즘에 기계로 다 하지만, 손으로 맨날 이거 망치로 두드려서 그거 맛은 잊을 수 없지.]
[강문원/60대 단골손님 : 안줏값이 절대 안 올라. 몇십 년 동안 그냥 그대로 1000원. 노가리. 무조건.]
지난 4월엔 결국 노포가 강제 철거됐는데, 문 닫은 가게 앞으로 단골들이 찾아왔습니다.
지역과 함께 성장한 이런 가게를 보호할 방법을 같이 고민하자는 겁니다.
[이석제/50대 단골손님 : 동네 사랑방 같은 존재. 늘 뭐 아무 때고 편하게 가서 술 한잔할 수 있는 그런 집.]
오랜 세월을 뒤로 하고, 노포는 이제 골목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강호신/노포 점주 : 한 분, 한 분 얼굴들이 다 생각이 나고 오늘은 특히… 그분들 덕분에 저희가 있었지요.]
노포를 지지해온 사람들은 앞으로 관할 구청 앞에서 계속 집회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 하나하나가 모여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치를 만들어냈습니다.
추억의 가게는 이제 이곳을 떠나지만, 새로운 골목에서 그 의미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합니다.
(작가 : 유승민 / VJ : 최효일 / 인턴기자 : 이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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