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기획파업" 왜곡보도와 '세 가지 무지'
노사 합의했는데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방문 뒤 결렬됐다?
양대노조 "사실 아냐"…이뤄지지 않은 합의, 방문시간도 틀려
보수언론이 따라쓰고 정치권서 인용하는 패턴 되풀이
"당사자 취재 않고 익명에 기댄 보도, 1면 올라가도 되나"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문화일보가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 당일 '노사가 합의했으나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이 방문한 뒤 교섭이 결렬됐다'며 “민주노총의 기획 파업 의혹”을 제기했으나 잘못된 사실 관계에 기초한 왜곡 보도였다. 문화일보는 1면 머리에 익명의 서울시 관계자를 출처로 이같이 보도하면서도 당사자인 양대 노조 취재는 거치지 않았다. 언론이 문제적 보도를 하고 정치권이 이를 언급하며 노조의 쟁의 행위에 부정적 프레임을 씌우는 양상이 이번 파업에도 되풀이됐다.
문화일보는 지난 11월30일자 1면 머리에 '화물연대 업무복귀 안 하면 안전운임제 전면 폐지' 보도를 냈다. 문화일보는 이 보도에서 “서울교통공사 노사가 합의문 완성 직전 단계에서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방문 직후 교섭이 결렬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민주노총의 기획 파업 의혹이 제기된다”고 했다.
문화일보는 “노사는 전날 협상을 통해 126명 올해 인력 감축안 내년 연기, 기본수당 총액임금제 반영 등에 합의해 두 차례 기초문안까지 작성했다. 그런데 서울교통공사 노조 상급단체인 공공운수노조의 현 위원장이 오후 6시쯤 서울교통공사를 방문한 후 교섭이 정회됐다”며 “이후 명순필 서울교통공사 노조위원장이 오후 10시쯤 교섭 결렬을 선언한 후 퇴장했다”고 했다. 문화일보는 “민주노총 지휘 아래 노조가 협상을 결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출처는 “서울시 고위관계자 등”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 연합교섭단에 참여한 양대 노조는 해당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현 위원장이 방문한 시간은 오후 6시가 아니고 그 후 교섭이 정회된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현 위원장은 오후 4시40분에 공사에 방문했으며, 정회는 그에 앞선 오후 2시5분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노조는 “명순필 위원장이 오후 10시쯤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퇴장했다는 보도도 사실이 아니다”라며 “9시42분께 속개된 연합교섭단위원회에서 부결돼 교섭이 결렬됐다”고 했다.
합의 이뤄지지 않아…방문 시간도, 정회 순서도 틀려
서울교통공사 노사가 현 위원장 방문 전 합의 단계였다는 주장도 사실과 달랐다. 김판규 한국노총 서울교통공사통합노조 교육실장은 당시 상황을 두고 “합의 그런 건 없었다”며 “공사 측이 경영 혁신안을 유보하겠다고 구두로 밝혀 노측이 문서화하자고 해 정회했다”고 했다. 그는 “문화일보가 어디서 그 얘길 듣고 썼는지 모르겠다”며 “보도 이후에 (정치권이) 파업을 '정치파업'이라 몰아가는 발언들이 나왔다”고 했다. 김정섭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 교육선전실장도 “합의가 아니었다”며 “문화일보는 우리에게 아예 취재가 없었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노조에 따르면 현 위원장은 노조 지원 요청에 따라 공사를 찾았다. 김정섭 실장은 “교섭 쟁점이 난항이라 상급단체인 현 위원장에 지원을 부탁했다. 안을 가지고 나갈 수 없어 방문 요청했다”며 “핵심 쟁점은 공사가 2021년 (강제 구조조정 않기로 한) 합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공사와 대화가 안 되니 공사를 사실상 지휘 감독하는 서울시에 이 문제를 수용하도록 압박하고 설득할 조치를 취해달라 했다”고 했다.
김 실장은 이번 파업에서 보수언론이 틀린 보도를 받아쓰고 정치권이 언급하며 노조에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는 패턴이 반복됐다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당일 아침 기자회견에서 파업을 두고 '정치파업'이라고 주장한 뒤 문화일보의 '서울시 관계자' 발 보도가 나왔고,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이 따라썼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이후 합의가 타결된 뒤까지 국민의힘 의원은 물론 서울시당에서도 '정치파업'을 언급하며 파업을 비난했다”고 했다.
화물노동자 특수고용인데 “비정규직 관심 없는 민주노총”
문화일보의 다른 파업 기사에서도 노조와 관련해 기본 사실관계를 틀린 대목이 여럿이다. 문화일보는 같은 날 '경기동부가 장악한 민노총, 별안간 협상 엎어'에서 “화물연대와 지하철노조 파업 등이 이어지면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 실제로는 상위 10% 대기업 노동자만 대변하고 있을 뿐 비정규직 문제 해소에 관심이 없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현재 파업 중인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해당 기사는 또 현 위원장이 방문한 뒤 노조가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며 “이에 한국노총 집행부가 항의차 민주노총 사무실을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김판규 교육실장은 이에 “사실이 아니다”라며 “항의차 찾아간 것이 아니었으며 만남도 이뤄졌다”고 했다.
문화일보 데스크 “신뢰할 만해서 썼다”
문화일보 데스크는 취재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병권 문화일보 사회부장은 2일 통화에서 익명 관계자발 오보에 대한 입장을 묻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얘기해서 썼다. 당시에 틀리지 않았다고 봤다”고 했다. 당사자 반론을 취재하지 않은 이유에는 “서울시도 파업에 대해 책임 있는 기관”이라고 했다. 기사 수정 의향에 대해선 “(틀렸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 그걸 왜 당신이 그리 묻느냐”고 밝힌 뒤 “한 쪽 얘기만 들을 수 없다. 공식적으로 요청하면 절차와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했다.
'경기동부가 장악한 민노총, 별안간 협상 엎어'를 작성한 기자는 2일 문자메시지로 “'항의 차'라는 게 취재 내용이었고 '설득차'라는 건 사후 주장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보도와 달리 실제로는 노조 간 만남이 이뤄진 데 대한 입장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특수고용노동자임을 알고 있는지 등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당연한 노조활동을 이상한 행위처럼 덧씌워”
이승철 공공운수노조 기획실장은 이번 보도가 노조에 대한 무지와 취재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화일보 오보는) 기본적으로는 세 가지 무지 때문에 비롯된 일”이라며 “첫째는 교섭에 대한 무지다. 파업은 노사가 요구를 가지고 줄다리기하다 불일치가 있을 때 발생하는 쟁의 행위다. 상급단체가 와서 파업하라 해서 되지 않는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노동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해 갈등이 생긴 게 파업의 원인인데, 그 본질과 교섭 양상을 살펴보지 않고 낸 기사”라는 것이다.
이 실장은 이어 “두 번째는 노조에 대한 무지”라며 “한국 노동조합 구조는 단위사업장과 상급단체, 민주노총이란 총연합단체로 이뤄진다. 유사한 요구를 가진 사업장들이 함께 모여 싸우자는 취지다. 공공운수노조의 연대 파업도 정부 혁신 가이드라인이나 예산 감축에 함께 맞서고자 시기를 잡아서 진행한다”고 했다. 이 실장은 “그 힘을 모으는 것이 상급단체 역할인데, 이걸 마치 꺼려야 할 이상한 행위처럼 그렸다. 노조 자체를 몰라서 나온 보도”라고 했다.
이 실장은 “앞서 두 쟁점은 산별조직이나 노조에 문의하면 금방 답을 받을 수 있다. 기본적 확인도 없이 익명에 기대 1면 보도하는 게 과연 허용돼야 하는가 의문”이라며 “당사자 이야기를 듣지 않고 공식 채널보다 익명에 의지하는 취재 관행이 특히 노동조합 관련 보도에서 심한데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은 지난 30일 서울교통공사의 반복적인 인력 감축 추진에 반발해 파업했다. 공사와 양대 노조 연합교섭단이 같은 날 자정께 합의를 타결했다. “재정 위기를 이유로 강제적 구조조정이 없도록 한다”는 지난해 합의를 재확인하고, 신당역 스토킹 살해 사건과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제기된 안전 인력 부족 문제는 노사TF를 꾸려 충원 방안을 찾기로 했다.
미디어오늘을 지지·격려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Copyrights ⓒ 미디어오늘.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영상] 권성동 “회의개판” 정청래 “누가 개판”… “정청래 방송법 두고 보자” - 미디어오늘
- 방통위, TBS 지원 조례 폐지에 ‘재고’ 입장낸다 - 미디어오늘
- “민주당 공영방송 영구장악법” 국민의힘 주장 맞나 - 미디어오늘
- 권성동 “공영방송 탈 쓴 편파”…KBS·MBC 반응은 - 미디어오늘
- 검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5년 구형 - 미디어오늘
- 이태원 참사 ‘떼창’ ‘심폐소생술’ 영상보도 언론사들 ‘주의’ - 미디어오늘
- 연합뉴스 사옥 앞 연합뉴스TV노조 “경영 정상화하라” - 미디어오늘
- ‘BBC기자 폭행’ 중국 공안, 기자들에겐 반복된 악몽 - 미디어오늘
- 롯데홈쇼핑 업무정지 제재는 왜 ‘새벽시간’일까 - 미디어오늘
- 엄마 민원 해결 위해 취재 나선 KBS 기자? -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