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도 ‘승리를 위하여’…트랜스픽션이 돌아왔다

한겨레 2022. 12. 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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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응원가의 달인, 록밴드 트랜스픽션’
트랜스픽션 누리집 갈무리

월드컵 시즌만 되면 돌아오는 록밴드 트랜스픽션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응원가를 발표했다. 힙합 그룹 호미들, 언에듀케이티드 키드와 함께한 ‘하나 되어’. 분명 신곡인데 듣자마자 후렴구를 흥얼거리게 된다. 이러니 인정할 수밖에. 트랜스픽션은 그야말로 응원가의 달인이 되었구나!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월드컵 응원가로만 그들을 알고 있을 테다. 설령 그룹 이름이나 노래 제목은 몰라도 ‘승리를 위하여’를 안 들어본 대한민국 국민은 거의 없을 터. 오늘 칼럼에서는 결성 20년을 훌쩍 넘긴 록밴드 트랜스픽션을 소개한다.

탄생부터 월드컵과 뗄 수 없는 인연이구나 싶다. 해랑(보컬), 전호진(기타), 손동욱(베이스), 오천기(드럼)의 동갑내기 멤버들로 결성된 트랜스픽션은 월드컵 열기가 온 나라를 달구던 2002년에 첫 음반을 발표했다. 나 역시 같은 해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배우 소유진을 진행자로 내세워 첫 프로그램을 만들었기에 그들의 시작을 정확히 기억한다. 함께 출발선에 섰으니 같이 잘 되면 좋겠다는 동기 사랑 비슷한 감정도 있어서 그들의 노래를 무척 자주 선곡했음을 고백한다. 처음에는 이국적인 외모와 독특한 의상으로 화제가 되었는데 타이틀곡 ‘내게 돌아와’가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마침 그즈음이 록음악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한일월드컵의 들뜬 분위기와 함께 윤도현이 방송과 무대를 누볐고, ‘낭만 고양이’를 앞세운 메탈 밴드 체리필터의 기세도 대단했다.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은 ‘밤이 깊었네’를 내놓으며 대중적 기반을 마련했고 노브레인도 팬층을 넓혀가던 시절이었다. 마왕 신해철도 “대~한민국 짝짝짝짝짝”으로 유명한 응원가 ‘인투 디 아레나'를 발표하고 그룹 넥스트를 재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데뷔곡부터 히트시킨 트랜스픽션은 다음 세대의 록스타가 되기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록의 전성시대는 너무 짧았고 트랜스픽션의 공백기는 너무 길었다. 그들의 두번째 음반은 4년이 지나서야 나왔다. 타이틀곡 ‘타임 투 세이 굿바이’는 지금 들어도 상당히 괜찮은데, 앞부분과 뒷부분에 ‘내게 돌아와’를 연상케 하는 기타 연주를 왜 붙였는지 모르겠다. 공백기가 길었던 탓에 대중이 기억하지 못할까 걱정해서였을까? 군더더기 같아 아쉽다. 결론적으로 2집 음반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생각지 못한 곳에 기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위해 만든 노래 ‘승리를 위하여’가 인기몰이를 한 것이다. 2002년의 열기가 재현되었던 그때 월드컵 특수를 노리고 수많은 가수들이 응원가를 발표했지만, 최종 승자는 트랜스픽션이었다.

4년 뒤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트랜스픽션은 또 다른 응원가 ‘승리의 함성’을 발표한다. ‘무슨 응원가를 월드컵 때마다 만드나’라는 비아냥은 막상 노래를 듣고 나면 찬사로 바뀌었다. “오오, 막 흥분되는데?” “이런 응원가라면 또 만들어줘서 감사하지!” 이 노래는 무려 김연아, 빅뱅이 참여한 버전도 있고 나중에 걸스데이와 오마이걸의 멤버까지 참여하는 등 꾸준히 새로운 버전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외에도 국내 리그 축구팀 응원가를 만들고 축구 게임인 ‘피파 온라인’에도 노래가 실리고. 이러니 응원가 밴드로 이미지가 굳어질 수밖에. 이번 카타르월드컵을 위해 또 다른 응원가 ‘하나 되어’를 발표한 걸 보면 본인들도 이런 이미지를 싫어하지 않는 듯하다.

걸출한 응원가에 가려진 좋은 노래도 많다. 앞에서 소개한 데뷔곡 ‘내게 돌아와’, 2집 음반의 ‘타임 투 세이 굿바이’도 좋고 이 노래의 후속곡이라고 할 만한 4집 음반의 ‘네버 세이 굿바이’도 잘 만든 록발라드다. 절절한 후렴구는 기본이고 기타 솔로와 장중한 현악기 연주 등 편곡도 예사롭지 않다. 발라드가 별로라면 ‘너를 원해’를 강력히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아하나 듀란듀란 같은 1980년대 신스팝의 상쾌한 느낌을 트랜스픽션 특유의 멜로딕한 하드록으로 담아냈다.

안타깝게도 트랜스픽션은 2011년 4번째 음반을 발표하고 더는 정규 음반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 음반이 정말 괜찮아서 록밴드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기대했지만, 간간이 싱글만 발표하고 벌써 10년 넘게 음반 소식이 없다. 작년에 발표한 새 음반은 타이틀이 아예 ‘우리는 수원에프시(FC)’이고 노래도 모두 축구팀 수원에프시 응원가다. 케이(K)리그 팬이 아니라면 모를 수 있는데, 수원은 축구팀을 2개 가진 연고지다. 수원삼성블루윙즈가 훨씬 더 유명하고 수원에프시는 2부 리그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다가 가까스로 1부 리그로 승격되었다가 다시 2부로 떨어졌다가 작년에 재승격되는 되는 오뚝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록 스피릿과 잘 어울리는 팀같지만, 아무리 그래도 록밴드가 10년 만에 내놓은 음반이 특정 축구팀 응원가 음반이라니, 너무하다!

비범한 능력의 뮤지션 서지민을 객원 연주자로 영입했다가 정식 팀원으로 삼은 트랜스픽션은 한달쯤 전 신곡 ‘피닉스’를 발표했다. 록밴드에게 가혹한 우리 음악 시장에서 원년 멤버를 아무도 잃지 않고 20년 넘게 살아남았으니, ‘불사조’(피닉스)라는 제목을 쓸 자격이 있다. 부디 다음 음반은 응원가 말고 빵빵한 신곡들로 채워주기를. 개성 만점 보컬이, 탄탄한 연주 실력이, 함께 버틴 세월이 너무 아깝다.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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