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당구계 '캣우먼' 이우경
친구 서한솔 선수와 3쿠션 동행
[스포츠한국 김동찬 기자] 이우경(25·SK렌터카 다이렉트) 선수는 차가운 이미지에 냉철한 표정, 여기에 고양이를 닮은 얼굴로 당구계 '캣우먼'이라 불린다. 강한 외모 때문에 그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쉽게 말을 걸지 못하지만 실제 성격은 '어리버리'에 가깝다. 학창시절엔 외모처럼 무뚝뚝하고 차가운 성격을 지녔던 이우경이다. 하지만 당구를 시작하면서 내성적인 성격도 조금씩 변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융화하는 성격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당구 동호인으로 활동하다 '2020-2021 시즌' 와일드카드로 LPBA 무대를 밟은 그는 4강 고지를 밟고 이제 우승을 향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취업의 갈림길서 큐 선택한 이우경
공부에는 큰 흥미가 없던 이우경은 고등학교 미용과를 선택하며 자신의 진로를 일찌감치 정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취업을 앞둔 시기 이우경은 당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포켓볼과 4구를 재미로만 치던 그는 친구 서한솔(25·블루원엔젤스) 선수와 함께 국제식대대 3쿠션을 접한 뒤 당구 선수로서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는 당구를 '무언가 재미있다고 느끼고 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은 내 생애의 첫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친구들이랑 고2 때부터 포켓볼이랑 4구를 했어요. 그런데 같이 당구를 치던 한솔이가 3쿠션을 하자고 권유하더라고요. 사실 당시만 해도 3쿠션은 재밌어 보이지 않아서 제가 한솔이한테 '너가 3쿠션을 하면 난 누구랑 놀아'라고 투정을 부렸죠. 같이 어울리던 친구가 3쿠션을 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저도 3쿠션을 시작한 겁니다."
국제식대대를 접한 이우경은 이전에 본인이 즐기던 당구와는 전혀 다른 흥미에 빠졌다. 같은 당구라도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했다. 급기야 밤새도록 3쿠션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던 그는 결국 고등학교 3학년 때 미용관련 취업을 포기하고 당구의 길을 선택했다.
"당시 고3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무조건 취업을 나가야만 했어요. 제가 살면서 스스로 무언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게 당구가 처음이었는데, 취업을 하면 당구를 할 시간이 없으니 그 자체가 싫었어요. 그래서 담임 선생님한테 찾아가 본격적으로 당구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고, 저를 믿어준 선생님도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사실 그때 담임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을 수도 있었죠. 그래서 지금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킹스맨' 김재근 만나 혹독한 훈련
"세계 1위 테레사 잡는 것이 목표"
이우경은 당구 동호인 활동을 하다가 '킹스맨' 김재근(50∙크라운해태) 선수를 만나면서 본격적인 당구의 기틀을 잡았다. 그에게 김재근은 첫 스승이자 유일한 당구 스승이었다.
"아는 동생이랑 당구장을 갔는데 그곳에 당구장을 운영하는 김재근 프로님이 계셨어요. 제가 공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시더니 당구를 제대로 배워볼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셨죠. 마침 저도 선수를 해보겠다고 고민하던 무렵이라 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졸업한 후엔 선수에 대한 생각은 접고 동호인 활동만 했거든요. 김재근 프로님은 제가 선수를 하고픈 의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진짜 독하게 당구를 가르치셨어요."
이우경은 스승인 김재근 선수의 호칭은 아직도 '사장님'이 익숙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장님의 가르침은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독했다. 6가지 유형의 스트로크 방법을 하루도 빠짐없이 각각 500번씩 연습하라는 숙제를 내줬다. 결국 스트로크만 하루에 3000번을 하라는 주문이었다.
"당시 목표가 세계 1위인 테레사 클롬펜하우어(네덜란드)를 잡는 거였어요. 그래서 정말 이 악물고 배웠습니다. 김재근 사장님 주변에 계신 분들도 사장님이 누군가를 이렇게 가르쳐준 걸 처음 본다고 했거든요. 아마 사장님도 그렇게 독하게 가르친 제자가 처음이실 거예요. 지금도 가끔 통화하면 '너는 정말 내가 본 최고의 스트로크를 가졌던 아이였다'라고 좋게 말씀을 해주세요."
하지만 테레사를 꺾겠다던 이우경은 지독한 훈련에 지쳐서 결국 도망을 치게 된다. 그는 선수를 하려던 마음도 접고 큐를 내려놓았다.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성인이 되자마자 스파르타 훈련을 받다가 결국 탈이 난 셈이다.
"7개월인가 8개월 정도 배우고선 제가 도망갔죠. 너무 힘들어서 그때는 그냥 무작정 쉬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당구는 취미가 돼 버렸죠. 그 시기에 친구인 한솔이는 대한당구연맹에 들어가면서 선수생활을 시작했어요. 주변에선 저도 선수를 하라고 말하는데 저는 이미 취미로 즐기는 상태였어요. 당시 제 당구 수지는 20점 정도였기에 '실력도 안 되는 내가 무슨 선수야'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선수 등록은 생각도 안 하고 동호인 활동에 만족했죠."
프로 도전 첫 관문인 서류심사 탈락
와일드카드 출전 후 정식 프로로
취미로 동호인 활동을 하던 그는 프로당구 PBA 창설 소식을 들었지만 시큰둥했다. 그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다른 사람 이야기라고 여겼다. 선수 생활을 포기한 데다 동호인 활동도 지속적으로 이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승은 이우경을 잊지 않았다.
"당구장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김재근 사장님한테 연락이 왔어요. 당시 차유람 선수가 몇 번 빠졌을 때였는데 와일드카드로 저보고 나가보라고 권유하셨어요. 그때가 불과 시합 1주일 정도 남은 상태여서 제대로 준비가 된 상태도 아니었기에 거절했죠. 그런데 사장님은 저한테 '당장 짐 싸서 올라와라. 스파르타로 알려주겠다'라고 계속 권유를 하셨어요. 하지만 괜히 나갔다가 금방 떨어지는 게 싫어서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김재근 외에도 주변에서는 지속적으로 이우경을 자극해 선수 등록을 권장했다. 실력이 아깝다는 이유에서다. 와일드카드마저 거절했던 그는 주위의 계속되는 권유에 밀려 결국 LPBA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프로당구 입문은 첫 관문인 서류 심사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진지한 고민도 없이 무성의하게 대처한 일 때문에 결과적으로 선수 등록이 미뤄졌다.
"제가 성격이 단순해요.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질문에 'PBA 신청을 한 이유' 이런 걸 쓰는 게 있었거든요. 그때 저는 그냥 '프로 선수가 되고 싶어서'라고 한 줄로 적었습니다. 나중에 보니까 A4 용지를 꽉 채울 정도로 쓴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서류 탈락도 탈락이지만 제가 단순하게 쓴 한 줄 때문에 떨어진 것 같아 너무 황당해서 '이불킥'을 엄청 했습니다."
운명의 장난일까. 서류 탈락이라는 황당한 실패를 겪은 그에게 다시 한번 와일드카드 출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우경은 그 기회를 잡았다. 그는 첫 출전한 대회에서 16강에 머물렀다. 눈에 띄는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어도 나름 의미가 있는 결과물이었다.
"첫 출전에서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게 봐주셨는지 다음 와일드카드도 제가 받았어요. 그렇게 와일드카드로 몇 번 출전하면서 랭킹이 나오니까 프로당구 선수 등록의 기회도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정식으로 선수자격을 얻었습니다."
'당구 여제' 김가영이 롤모델
4강 발판삼아 우승까지 노려
이우경의 롤모델은 김가영(39.하나카드) 선수다. '포켓볼 여제'에서 수많은 견제와 난관을 극복하고 '3쿠션 여제'로 등극한 김가영의 걸어온 길 자체가 경이롭게 다가왔다. 선수 생활을 막 시작한 그에게는 여러모로 감명이 깊었다.
"가영이 언니가 대단한 것 같아요. 포켓볼에 이어 3쿠션 여제로 등극을 했는데 정말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거잖아요. 특히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점은 정말 배우고 싶어요. 멘탈 관리라던지 이런 부분을 따라하고 싶은데 사실 이게 배우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다 보니 더 존경스러워요. 경기에서 몇 번 마주쳤는데 아직까지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습니다."
이우경의 든든한 지원군은 부모님이다. 어머니는 항상 자신을 믿어주는 '영원한 내 편'이다. 아버지는 평소 무뚝뚝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따뜻한 '츤데레' 스타일이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제가 하고 싶은 거를 다 해보라고 하셨어요. 저를 믿는 이유 하나 때문이죠. 그래서 제가 고3때 당구를 한다고 했을 때도 반대를 하지 않고 믿어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처음에 '당구는 무슨 당구냐'라고 마땅치 않게 말하셨지만 당구장까지 매일 차로 데려다 주시곤 하셨어요. 말과 행동이 다른 츤데레 스타일이시죠. 어느날 아버지가 장례식장에 가셨는데 술을 드시곤 저보고 오라고 해서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버지 친구분들이 저를 보더니 '아빠한테 잘해'라며 한마디 하셨는데 그 소리를 듣던 아버지가 '지금보다 어떻게 더 잘하냐'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보고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칭찬해 주시더라고요."
이우경은 프로 데뷔 후 자신의 한계를 한 단계씩 극복해 오고 있다. 16강 벽에서 몇 번 좌절을 겪다가 8강으로 올라선 뒤 바로 4강까지 진출했다. 이 같은 속도라면 올해 그의 최종 안착지는 결승 진출이다.
"올해 목표는 솔직히 우승입니다. 저는 항상 목표를 정할 때 16강 진출 후 8강, 그 다음 목표는 4강 이런 식이거든요. 일단 이번 시즌이 아직 끝난 게 아니니 목표는 우승으로 잡고 싶습니다. 다만 제가 최근 템포가 꼬여서 당구가 잘 풀리지 않는 편인데 빨리 제 리듬을 찾는 게 우선입니다. 제가 원하는 폼을 빨리 찾은 후 최대한 좋은 성적을 내서 우승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김동찬 기자
스포츠한국 김동찬 기자 dc007@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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