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의 비극' 모리야스 일본 감독, 29년 만에 '도하의 기적'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이전까지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로 극적인 순간으로는 '도하의 기적'이 꼽힙니다.

한국은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북한에 3-0으로 승리한 뒤 초조한 마음으로 일본의 경기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당시 일본은 이라크전에서 2-1로 앞서가다가 경기 종료 직전에 이라크에 동점 골을 얻어맞았습니다.

이 골 덕분에 한국은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냈고, 일본은 눈앞에서 월드컵 티켓을 놓쳤습니다.

우리에게는 '도하의 기적', 일본 축구에는 '도하의 비극'으로 남은 장면입니다.

당시 일본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쓰러져 오열했는데, 그중에는 대표팀 미드필더였던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축구대표팀 감독도 있었습니다.

'도하의 비극' 일원이었던 모리야스 감독은 29년 만에 다시 카타르에서 일본 축구 역사상 최고의 장면을 연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일(한국시간)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페인과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E조 3차전에서 2-1로 역전승한 겁니다.

앞서 독일에 2-1로 역전승해 파란을 일으켰던 모리야스 감독은 스페인을 상대로도 2-1 역전승을 따내 '죽음의 조' E조를 1위로 통과했습니다.

AP 통신은 29년 만에 '도하의 비극'에서 일본 축구를 해방한 모리야스 감독의 이야기에 주목했습니다.

AP 통신은 "29년 전 대표팀 미드필더로 비극을 경험했던 모리야스 감독이 이제 감독으로 보상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모리야스 감독 역시 경기 종료 1분 전 '도하의 비극'을 떠올렸다고 말했습니다.

전반 11분 스페인 알바로 모라타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일본은 후반 3분, 도안 리쓰가 동점 골을 터트린 데 이어 3분 뒤에는 다나카 아오의 결승골이 나왔습니다.

운명의 장난처럼 29년 전 이라크를 상대로 했던 그날과 같은 '2-1' 스코어가 만들어진 겁니다.

이 때문에 경기 후 모리야스 감독은 "종료 1분 전쯤 도하의 비극이 떠올랐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수비진은 그때와 달랐습니다.

실점을 두려워해 몸을 움츠린 게 아니라, 공격적으로 상대를 압박해 승리를 지켜냈습니다.

모리야스 감독은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실감했다. 선수들은 새로운 모습의 축구를 했다. 그렇게 느껴졌다"고 선수들을 칭찬했습니다.

일본은 6일 알자누브 스타디움에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준우승팀 크로아티아와 맞붙습니다.

(사진=연합뉴스)

고정현 기자yd@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