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를 빛내는 메이드 인 K리그들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만난 태극전사들 사이에선 첫 골을 넣을 선수로 손흥민(30·토트넘)과 황희찬(26·울버햄프턴), 황의조(30·올림피아코스) 등이 입길에 올랐다.
유럽파인 이들의 농익은 경험과 기량이 한국 축구를 이끌 것이라는 기대감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달랐다. 국내파 골잡이 조규성(24·전북)이 지난달 28일 가나와 2차전(2-3 패)에 선발 출전해 한국의 이번 대회 첫 득점과 한국 월드컵 역사상 첫 멀티골을 터뜨린 것이다.
원래 백업 멤버로 분류된 그는 우루과이와 첫 경기에선 교체 투입돼 처음 월드컵 무대를 밟았지만 선발 기회를 잡은 가나전에선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조규성이 가나 수비수들보다 높이 떠올라 골문에서 잇달아 내리꽂은 헤더골은 폭격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잘생긴 외모로 먼저 주목받았던 그가 실력까지 뽐내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팔로워도 3만명에서 160만명으로 폭증했다.
조규성은 “월드컵이란 무대에서 골을 넣는다는 걸 상상만 했지 실현될 줄은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고만 생각했을 뿐”이라고 웃었다.
조규성의 겸손한 발언과 달리 그는 원래 준비된 공격수였다. 조규성은 지난해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한 뒤 다부진 체격으로 변신했는데, 올해는 득점 감각도 물이 올라 K리그1에서 득점왕(17골) 타이틀을 따냈다. 전쟁터나 다름 없는 골문에서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클래식을 듣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국내파로 주목을 받는 것은 조규성이 전부가 아니다. 측면 공격수인 나상호(26·서울)도 자신을 둘러싼 팬들의 비판을 사랑으로 바꿔놓았다. “축구 선수라면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곱씹었던 그는 쉼없이 상대를 괴롭히는 질주가 일품이었다. 화려한 골과 도움은 없었지만 그의 헌신적인 플레이가 있었기에 한국 축구도 강호들과 맞설 수 있었다.
수비수인 김진수(30)와 김문환(27·이상 전북)도 메이드 인 K리그의 힘을 발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개막 전 햄스트링 부상으로 고전했던 김진수는 진통제를 먹으며 상대를 묶는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몸이 완벽하지 못해 가나전에서 실수도 나왔지만 조규성의 극적인 동점골을 돕는 크로스로 만회했다. 김문환 역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의 공격수 다르윈 누녜스를 꽁꽁 묶으면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예년과 다른 국내파들의 월드컵 활약상은 K리그의 경쟁력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K리그는 아시아 무대만 따졌을 때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에 이은 3번째 리그로 ‘가성비’를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발판으로 K리그에서 통하는 선수는 유럽에서도 통한다는 믿음을 줬다는 평가다.
조금 다른 경우이지만 한국 축구에서 실력을 키운 크로아티아의 미슬라브 오르시치(30·디나모 자그레브)는 캐나다전에서 월드컵 첫 도움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오르샤’라는 등록명으로 K리그 전남 드래곤즈와 울산 현대에서 활약했던 선수인데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도하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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