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의 ‘봉인 해제’된 모습 보여주는 ‘술방’[이진송의 아니 근데]

기자 입력 2022. 12. 2. 16:15 수정 2022. 12. 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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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며 취하는 재미…잊지 말라, 술은 ‘자유’의 매개체일 뿐
짧은 시간 출연자와 술을 마시고 다소 두서없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콘셉트로 큰 인기를 끈 래퍼 이영지의 유튜브 콘텐츠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유튜브 갈무리

2022라는 숫자가 어색하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는데, 어느덧 연말이다. 2년간 팬데믹으로 각종 모임이 축소되거나 없어졌다가, 최근 들어 조금씩 재개되는 추세이니 올해는 모처럼 흥겨운 연말 분위기가 날지도 모르겠다. 법적 성인들의 연말 모임에는 으레 술이 함께하기 마련이다. 참고로 나는 ‘알코올 쓰레기’라는 뜻의 ‘알쓰’인데 이 말은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알쓰의 몸은 세 갈래의 상충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술 권하는 사회에서 당하는 구조적(!) 배제 혹은, 술부심(‘술’=‘자부심’) 부리는 자들에게 당한 구박에 대한 서러움. 그리고 “나는 술을 못 마셔서 다행”이라는 안도. 마지막으로 ‘술’이 표상하는 다양한 흥과 정서, 경험에 대한 동경. 마지막의 감정은 술자리를 통해 끈끈해지는 친구들이나 동료들을 볼 때 느끼기도 한다. 최근에는 래퍼 이영지가 진행하는 유튜브 콘텐츠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이하 차쥐뿔)을 보면서 술자리의 흥을 간접 체험했다. 얼마 전 시즌 1을 마무리한 ‘차쥐뿔’은 술방(술을 마시는 방송) 형식을 취하며, 짧은 시간 출연자와 경쟁적으로 술을 마시고 취해 다소 두서없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콘셉트로 큰 인기를 끌었다. 오늘은 술자리의 시즌을 맞아, ‘술방’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술방은 먹방(Mukbang·먹는 방송)의 하위 계열로, 먹방이 인기를 끌고 먹는 음식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등장했다. 먹는 방송이 주로 무언가를 먹는 장면에 집중한다면, 술방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소통하거나 술 또는 안주를 소개하는 정보성 리뷰가 많았다는 점 또한 특징이다. 술방 시청 동기를 분석한 선행 연구에 따르면, 술방 시청 동기는 총 6가지로 분류된다. 정보탐색, 음주 생동감, 시간 때우기, 사회적 상호작용, 대리만족, 재미가 그것이다. 이 중 ‘음주 생동감’은 다른 콘텐츠와 구별되는 술방만의 고유한 시청 동기라고 할 수 있다. 음주 생동감이란 술을 따거나 마시는 소리, 생생하게 술을 마시는 장면 등을 의미한다. 종합해보면 술방 시청 동기 중 호의적인 태도가 형성되는 것은 ‘정보탐색, 사회적 상호작용, 음주 생동감, 재미’와 같은 뚜렷한 목적이 있을 때이다. 113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애주가 TV’는 “세상 모든 안주를 리뷰한다”를 채널의 정체성으로 걸고 있다. 다양한 술과 안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명이 등장해 함께 술을 마시고 대화하는 장면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음주 생동감’, ‘재미’의 측면을 두루 충족하는 요소이다.

술 마시는 소리나 생생하게 술을 마시는 장면으로 음주 생동감을 주는 이은지의 유튜브 콘텐츠 ‘해장님’. 유튜브 갈무리
함께 술 마시거나 술·안주 소개
돌발상황 통해 ‘진정성’ 엿보며
출연 인물과 내적 친밀감 쌓아
미화나 강권 문화 재생산 말고
맘놓고 즐길 수 있는 변화 필요

술방 자체가 채널의 취지인 유튜버 외에도, 연예인이 출연하는 술방 또한 대부분 유튜브 콘텐츠이다. 이영지가 진행하는 ‘차쥐뿔’, 김희철이 진행하는 ‘술트리트 파이터’, 딩고뮤직의 ‘이슬 라이브’, 이은지의 ‘해장님’ 등이 있으며 연예인들의 개인 채널이나 자체 콘텐츠에도 술방이 등장한다. 성시경의 ‘먹을 텐데’는 맛집을 소개하지만, 술을 곁들이는 장면이 자주 나오고, 세븐틴의 자체 콘텐츠 ‘고잉 세븐틴’에서는 MT 콘셉트로 여행을 떠난 멤버들이 술을 마신다. EXID는 데뷔 10주년을 맞아 컴백하면서 기안84의 유튜브 채널 ‘인생84’에 출연하여 술을 마시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주로 유튜브 콘텐츠가 대다수지만, TV 프로그램도 있다. tvN에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시즌제로 방송한 <인생술집>은 술을 마시며 하는 토크쇼였고, 역시 tvN에서 2021년까지 방영한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는 규현이 지인들을 초대해 술과 각종 안주를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시즌 2가 시작되었다. TV 프로그램에 실제 음주 장면이 나오는 것은 아직도 조금 조심스러운 소재인지라, <인생술집>은 처음 방영되었을 때 꽤 이슈였다. 시청등급 15세로 시작했다가 19세로 조정되었으며, 시즌 2에 이르러서는 5잔 이하로 마신다는 영업 기준을 세우고 다시 15세 시청 가능으로 바뀐 배경이 이를 암시한다.

<인생술집>에 얽힌 재미있는 일이 있다. 일명 ‘홍진영 파데 대란’이다. 2018년 <인생술집>에 출연했던 가수 홍진영이 술을 마신 후 목이 새빨개졌는데, 얼굴은 아무렇지 않아서 도대체 무슨 파운데이션을 썼냐고 화제가 된 것이다. “언니 파운데이션 뭐 써요? 정보 좀!” 홍진영이 절대 광고나 PPL이 아니라고 하면서 더 신뢰가 치솟아 일명 ‘홍진영 파데’ 대란이 났다. 여기에서 술방 시청 요인의 흥미 요소 하나를 추출할 수 있다. 음주로 인한 돌발상황과 그로 인해 증명되는 ‘진정성’. 진정성은 “자기 자신의 진솔한 내면세계를 인식하고 그 내면의 생각 및 기분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함께 술을 마시거나, 술 마시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타인의 매우 사적인 모습을 관람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서 친해지기 위해서, 혹은 친해졌다는 뜻으로 하는 게 술자리이다. 한국인의 공통 인사이며, 상호 간에 호감이 있을 때 오고 가는 “밥(커피) 한번 같이 먹어요”는 관계의 신호탄이다. “술 한잔할까요?”는 훨씬 강력하다.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내밀한 느낌이다. 그 사람이 사회적 체면과 예의 때문에 꽁꽁 감춰둔, 남들은 아직 못 본, 진솔하고 신선한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순식간에 몇 다리를 건너뛰어 더 깊은 친밀감을 형성할지도?! 더군다나 지금은 ‘날것’, 즉 ‘진정성’의 시대이다. 꾸며낸 것, 준비해온 멘트나 개인기에 대중은 관심이 없다. 국내 광고업계나 소셜미디어 광고 연구 분야에서도 소비자의 진정성 인식은 최근 몇 년 사이 중요한 주제로 급부상했다. 데뷔 15주년을 맞아 예능에 출연한 소녀시대는 “요즘에는 자연스럽게 하더라, 아무것도 안 하더라”면서 달라진 예능 판도에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했다.

술방 콘텐츠의 인기 요인에는 이러한 ‘진정성’에 대한 욕구가 한몫한다. 우리가 보는 대중이나 셀럽은 가꾸고 연출된 ‘이미지’의 총합이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사람은 다소 풀어지기 마련이다. 술자리에서 확 달라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유명인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매력을 술에 취해 ‘봉인 해제’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가슴이 뛴다. 술방에서 출연자들은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언행으로 매력을 어필한다. 술을 마시는 사적인 모습에 공감하거나 감탄하며, 그 사람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낄 수도 있다. 진정성과 결탁한 술방이 매력적인 이유다. 한편 어디까지나 ‘방송’이기 때문에, 취해서 하는 행동이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한들 그것은 편집을 거치게 된다. 적당히 재미있게, 적당히 귀엽게, 적당히 엉뚱하게. ‘차쥐뿔’에서 화제가 됐던 장면 중 하나는 호시가 얼음을 끌어안고 울거나, 최예나가 술에 취해 신발을 신지 않고 나가거나, 이영지가 채령에게 감자와 소금을 건네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주사를 관람하는 시청자는 (현실과 달리) 그를 어깨 빠져라 부축할 일도, 옷에 토사물이 튈 일도, 똑같은 이야기를 열두 번 들을 일도 없으므로 그저 즐거워하기만 하면 된다. 아, 이토록 원초적인 재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그런가 하면, 술방의 인기를 바라보는 우려 섞인 시선 또한 타당하다. 유튜브 채널은 시청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고, 제작 역시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지기에 무분별한 음주 관련 정보나 문화가 확산할 위험이 크다. 또한 경쟁적으로 술을 마시거나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마시는 행위를 ‘흥겨움’, ‘재미’, ‘제대로 노는 것’이라는 인식과 연동하고, 더 마시기를 회피하면 ‘빼는 것’, ‘손가락질받을 행동’이라고 몰아가는 장면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음주문화를 반복 재생산한다. 출연자 간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으면, 술방은 누군가에게는 그마저 노동이자 고역인 회식에 불과할 수도 있다(개인 방송에서는 음주 현장에서 종종 성희롱이 발생하기도 한다). 잊지 말자. 술방의 인기는 결국 ‘술을 마셔서’라기보다는, 술을 마신다는 행위가 보장한 ‘자유로움’에서 기인한다. ‘차쥐뿔’의 인기는 술방이어서가 아니라, 호스트 이영지가 형성하는 독특하고 편안한 분위기와 대화 기술 덕분이다. 물론 합법적 망나니를 표방하는 그의 주사가 웃긴 것은 사실이지만…. 술자리 환경을 안전하게 만들고, 술을 마신다는 행위 자체가 독보적인 즐거움이나 진정성으로 미화되지 않는 다양한 사회적 장치와 변화가 동반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술방은 술방으로, 방송은 방송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 강승미, <왜 그들은 ‘술방’을 보는가? : 소셜미디어 음주 1인 방송 시청동기와 협찬 광고효과에 대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박사논문, 2021.

강승미, 유승철, <술방은 주류광고의 새로운 정착지인가? 술방 시청동기와 진정성 인식이 주류제품 광고효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미디어경제와 문화’, Vol.20, (주)에스비에스, 2022.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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