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의 여가부, ‘여성 지우기’ 대체 어디까지 가나

이주빈 2022. 12. 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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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여성폭력’을 ‘폭력’으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10월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 개편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여성폭력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할 김현숙 장관의 여성가족부가 ‘여성’ 지우개로 나섰다. 여가부는 내년부터 시행하는 양성평등정책에서 ‘여성폭력’이라는 용어를 없애고 ‘폭력’으로 일괄 변경키로 했다.

여가부는 지난 1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 수립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여가부가 공개한 3차 기본계획안에는 ‘여성폭력’ ‘젠더폭력’ ‘성별에 기반한 폭력’ 등의 정책 용어가 모두 빠졌다. 대신 ‘폭력’이라는 용어로 대체됐다. 토론자로 나선 강은영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젠더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의제나 정책과제가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의 취지에 부합하는지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폭력’은 법으로도 정의하고 있는 용어다. 2019년 12월부터 시행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여성폭력’을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신체적·정신적 안녕과 안전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관계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 성희롱, 지속적 괴롭힘 행위와 그 밖에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폭력”이라고 정의한다.

여가부의 ‘여성’ 지우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여가부는 지난 9월, 25년째 해마다 발표하는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보고서 이름을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으로 바꿨다. 보고서가 한국 사회의 공고한 구조적 성차별을 선명하게 드러냈는데도 여가부는 성평등 정책 관련 주무 부처라는 존재 의미를 스스로 부정하듯 ‘여성’을 ‘남녀’로 바꾼 것이다.

여가부 대신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한다는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서도 ‘여성 지우기’라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15개 여성단체는 “2001년 여성부가 출범하고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은 세계성격차지수 99위로 여성의원 비율은 100위권 밖이며, 고위직·관리자 비율의 성별 격차는 125위, 소득 격차는 120위로 조사대상국 가운데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며 “국가의 역할은 잊고 여성 지우기에 몰두하며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는 정부는 국민을 우롱하지 말라”고 했다.

여가부의 ‘여성 지우기’가 폭력적인 행태라며 강하게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2일 “얼마나 무능한지를 보여줘 여가부를 폐지하려는 목적이 아닌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 김현숙 장관이 이끄는 여가부는 여가부 공무원과 여성단체, 여성정책 전문가, 여성 시민이 20년 이상 끈질긴 투쟁으로 만들어 온 젠더폭력 예방 체계를 허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대표는 “무엇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어나는 구조적 맥락을 제거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경험한 수많은 여성 피해자에게 국가가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여가부를 망친 주범은 과거 정부가 아니라 현 정부이며, 그 주동자는 김현숙 장관”이라고 꼬집었다.

공청회에서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여가부를 폐지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한 상황에서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위한 공청회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여가부 폐지 정부조직 개정안은 철회돼야 하며, 국회에서 여가부 권한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개정 입법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여가부는 5년마다 ‘양성평등기본법’ 제7조에 따라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안)’은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양성평등 사회’라는 비전 아래 △함께 일하고 돌보는 환경 조성 △안전과 건강권 증진 △양성평등 기반 확산을 3대 목표로 설정했다. 여성가족부는 공청회 등을 통해 수렴한 의견을 종합 검토한 뒤 ‘양성평등위원회’ 심의를 거쳐 올해 12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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