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결핍의 베를린에 살다 보니…한국의 겨울 햇살은 황홀한 축복이다[다른 삶]

기자 입력 2022. 12. 2. 16:02 수정 2022. 12. 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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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광·이은혜의 ‘베를린 육아일기’

한국 방문은 우리 가족에게 설과 추석에 못지않은 연례행사다. 그래서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다. 통상 체류 기간이 아무리 짧아도 2주를 넘기기 때문에 시기와 기간을 정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 방문 계획의 첫 번째 체크 사항은 직장이나 유치원의 상황, 굵직한 행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대략의 시기와 기간이 정해지면 그다음엔 오며 가는 데 필요한 비행기표를 예약해야 한다. 여름 성수기, 겨울 연말연시는 물론이고 봄 부활절 방학 기간, 가을 방학 기간과 겹치느냐 아니냐는 타국에서 비행기를 타는 이들에게 무척 중요한 ‘변수’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매년 2~3월 즈음, 그해 여름 한국행을 위한 할인 항공편 판매가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특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 이후 항공편의 가격 변동성이 너무 커져 늘 하던 예측이 아무 소용 없어졌다. 급한 일이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눈물을 머금고 구입하던 값비싼 성수기 요금은 일상이 되고 그 가격조차도 치솟았다. 일상적인 예측에 소망까지 섞어야 한다니 답답한 일이다. 다행히 이번 한국 방문은 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었고, 소위 말하는 비수기라 ‘그나마’ 납득할 만한 가격으로 항공편을 구할 수 있었다. 비로소 한국행 여정의 굵직한 뼈대가 정해진 것이다.

한국에 간다는 건 보통일이 아니다
비싼 항공료에 베를린 직항도 없고
비용·시기·기간 퍼즐 맞추기 수준
그래도 한국에 오면 언제나 설렌다
오랜만에 직접 마주하는 가족들
음식·공간…모든 순간이 귀하다
쇼핑몰·키즈카페 등 실내 문화
베를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재미
한국인이지만 한국은 이색적이다

우리 가족의 한국 방문은 아이가 태어난 뒤 총 세 차례 진행됐다. 첫 방문은 아이가 태어나 6개월 정도 됐을 무렵, 두 번째 방문은 코로나19 록다운 중 그리고 세 번째가 이번 겨울이다. 처음은 처음이라 힘들었고 두 번째는 팬데믹 때문에 힘든 여정이었다. 더욱이 첫 한국 방문은 파리를 경유해 무려 16시간을 비행기 안에 있어야 하는 험난한 코스였다. 당시 나는 회사의 휴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아내와 아이만 먼저 한국으로 출발했는데, 탑승 전 눈물로 작별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분유에, 기저귀에, 장난감에 바리바리 싸 들고 출국장으로 향하던 그때와 다르게 이렇게 큰 아이를 보고 있으니 ‘아련한 추억’이라는 표현이 절로 떠오른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유럽의 대도시 중 거의 유일하게 한국행 직항편이 없는 도시다. 반드시 최소 1회 경유를 해야만 한국에 갈 수 있다. ‘무늬만 수도’라는 베를린의 별칭이 딱히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보통 한국을 오기 위해서는 뮌헨과 프랑크푸르트로 향해야 한다. 이곳에는 직항이 있다. 새로운 공항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공항(Flughafen Berlin-Brandenburg)의 개장과 함께 한국으로 향하는 직항이 생길 것이라는 교민들의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직항의 꿈은 무산된 탓에 공항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요즘, 서운함과 아쉬움도 더욱 크다.

마침내 출발. 이번 경유지는 헝가리다.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에서 출발하는 폴란드 항공사의 한국행 직항편을 예매했기 때문이다. 좋게 포장해 ‘부다페스트 구경도 할 겸’이라고 위로했지만 이 과정에도 숨은 이유가 있다. 평소 대비 3배 가까이 웃돌던 항공편 가격에도 많아진 여행객, 그런 여행객을 응대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인력, 아수라장인 공항을 경험하고 나니 독일에서의 출발이 정답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동유럽 도시에서 출발하는 한국행 직항편을 알게 됐고, 그렇게 부다페스트가 우리의 경유지이자 출발지가 된 것이다.

긴 여정 끝에 도착한 한국, 가장 신이 난 것은 아이다. 반대로 우리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달라지는 아이의 반응을 보는 재미가 있다. 집안에서 쓰는 한국어와 유치원에서 쓰는 독일어가 다르다는 걸 최근 인지한 아이에게 한글 표지판은 흥미로운 모양이다. 더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쓰는 한국말이 신기한지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린다. 신기함에 쉼 없이 재잘대는 아이를 보니 진짜 한국에 오긴 왔구나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에 왔음을 느끼게 해주는 건 가족이다. 오랜만에 직접 마주하는 가족들은 그동안 멀리 살아온 시간을 단번에 느끼도록 해준다. 화상통화가 다 전하지 못한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가까이 마주 보며 나누는 시간은 소중하다. 어디 그뿐일까. 한국 방문은 모든 순간이 귀하다.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촘촘하게 스케줄도 세웠다. 기필코 먹고 오겠다 다짐하며 유튜브로 열심히 예습한 음식도 그중 하나다. 현재는 우리 부부를 위한 시간을 조율하느라 바쁘지만 아이가 좀 더 성장하면 자신만의 일정을 요구할지도 모르겠다. 이 조율 과정 역시 여행의 일부가 되겠지.

포근한 날씨와 아직 불그스름한 가을 잎사귀가 달린 풍성한 나무들 역시 언제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따스함을 준다. 해가 짧아진 것 말고는 지금이 봄인지 가을인지 헷갈릴 정도의 날씨는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그래도 11월 말인데’라는 생각에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두꺼운 오리털 외투를 하나씩 샀던 우리 부부의 생각은 ‘이 외투를 입을 일이 있을까’로 바뀌었다.

햇빛의 결핍을 자주 느끼는 베를린의 겨울을 생각하면 한국의 따스한 겨울 햇빛을 진공포장이라도 해가고 싶은 마음이다. 동시에 ‘한국만큼 실내 문화의 강국이 또 있을까’라는 ‘현타’를 얻기도 했다. 늘어나는 대형 쇼핑몰과 지하 주차장 등 외부 날씨로부터 독립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시설들…. 주거공간, 업무공간 가릴 것 없이 어딜 가나 공기 청정기가 환기를 대신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실내’ 하면 이곳도 빠질 수 없다. 키즈카페다. 아이는 물론 보호자까지 배려한 이 시설은 실생활과 너무 밀접해 가히 ‘문화’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주말에 되레 한산한 놀이터의 모습이 처음엔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지난 방문 때였나. 분명 주말이었음에도 아이들이 없어 한산했던 놀이터를 거의 점유하듯이 아이와 함께 논 적이 있었다. 쨍쨍한 햇살에 정수리가 익을 뻔했지만. 영하 10도를 웃도는 날씨에 실외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꽁꽁 얼어붙은 놀이기구들은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 한여름과 한겨울의 극한의 날씨 차이를 생각하면 한국의 실내 문화는 어찌 보면 적응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평소보다 주말에 훨씬 붐비는 베를린의 놀이터 풍경도 ‘키즈카페’ 문화가 생기면 분명 바뀌겠지. 비록 해가 뜨는지, 해가 지는지, 바깥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볼 수 없지만 항상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갖춘, 심지어 일주일 내내 휴일 없이 운영되는 실내 키즈카페들이야말로 아이 양육에 있어 병원만큼 소중한 존재 아닐까. 한국에 오면 지칠 때까지 키즈카페를 돌며 베를린에서 누릴 수 없었던 문화를 즐기는 것도 이제는 우리 가족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됐다.

한국 방문의 아쉬움은 단 하나, 이렇게 1년에 한 번 정도 한국을 다녀오면 다른 휴가를 계획하기 힘들다. 한국에 다녀오면 유럽 여행을 가는 것과 비슷한 시간과 경비가 드니 휴가 이후에는 씀씀이의 공백을 메꾸느라 또 한 계절이 간다. 휴가 기간만 더 길면 빚을 져서라도 열심히 유럽을 더 열심히 구경하러 다닐 텐데 아쉬운 마음뿐이다. 그럼에도 여행의 묘미는 일상과 다른 새로움이 주는 이색적인 풍경이 아닐까. 눈으로, 입으로 느껴지는 새로움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공간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미지의 시간은 매일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사진, 동영상을 보며 추억하고 또 다른 추억을 만나러 갈 때까지 말이다.

▶신혜광·이은혜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인 3인 가족이다. 닭띠 아빠는 건축설계사무실에 다니고, 돼지띠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돼지띠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단독주택에 사는 것, 자동차로 베를린에서 나폴리까지 여행하는 것이 꿈이다. <스페인, 버틸 수밖에 없었다>와 <어느 멋진 일주일, 안달루시아>를 쓰고 그렸다.

신혜광·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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