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세종 일회용컵 보증금제 혼란…"형평성 어긋나" 보이콧도(종합)
보이콧 매장 "형평성 없고, 고객·매장에 부담 전가…허점 많아" 비판
(세종·제주=연합뉴스) 이은파 전지혜 백나용 기자 = 2일 오전 제주시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 매장.
무인 주문기에서 5천원인 카페라테를 주문해 일회용컵에 받으려 하자 자동으로 '종이컵 보증금' 300원이 포함돼 결제 금액이 5천300원으로 표시됐다.
매장 내 흘러나오던 음악이 중간중간 멈추고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고, 카운터 앞에는 일회용컵 무인 반납기가 한 대 설치돼있었다.
무인 반납기는 뚜껑·홀더·빨대 등을 제거하고 남은 음료를 비운 뒤 보증금 반환 앱의 바코드를 스캔하고, 컵의 바코드를 스캔하면 보증금이 반환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점원들은 포장 주문 고객들에게 음료를 내주며 "오늘부터 보증금 제도를 시작했다. 바코드를 훼손하지 않고 제주도에 있는 저희 브랜드 매장을 방문해서 컵을 반납하면 300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연신 설명했다.
한 남성이 따뜻한 음료를 일회용 종이컵에 받으면서 "공항에서도 반납할 수 있나요?"라고 묻자 점원이 "공항에는 저희 브랜드 매장이 없다"며 난처한 듯 답하기도 했다.
이날부터 세종과 제주에서는 일회용컵 보증금제(이하 보증금제)가 시행됐다.
보증금 결제는 음료값과 함께 이뤄지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지만, 보증금을 돌려받는 과정은 다소 번거롭다. 컵의 바코드를 인식한 뒤 보증금을 내줘야 해서 음료를 구매할 때와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또한 보증금 중복 반환을 막기 위해 컵에 스티커로 부착되는 바코드가 훼손될 경우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
A업체 컵을 B업체 매장에 반납하는 이른바 '교차반납'도 현재 안 되기 때문에 컵 회수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시행 첫날이어서인지 곳곳에서 혼선도 빚어졌다.
제도가 시행되는 것을 모르는 채로 매장을 찾았다가 설명을 듣고 당황하는 고객도 있었고, 반납 방법 등 구체적 질문에 대해 점원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무인 반납기에서 보증금을 반환받으려면 휴대전화에 자원순환보증금 앱을 설치하고 본인인증 절차 등을 거쳐야 해서 불편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일부 프랜차이즈 카페는 보증금제 적용 대상이 플라스틱컵만인 것으로 알고 보증금을 받지 않고 종이컵에 커피를 그냥 내주는가 하면, 의무 참여 매장이 아닌데도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줄 알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카페도 있었다.
박모(57·세종시) 씨는 "오늘 아침 출근길 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들러 테이크아웃으로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는데, 점원이 '종이컵은 일회용컵 보증금제 적용 대상에 제외된다'며 보증금 300원을 함께 결제하지 않았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세종시의 또 다른 시민은 "지역 한 행정기관에 설치된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면서 보증금제에 대해 물었더니 '걱정이 태산'이라고 하더라"며 "하지만 그 매장은 보증금제 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파스쿠찌 등 일부 프랜차이즈 매장은 보증금제 시행에 맞춰 다회용컵을 도입, 아예 일회용컵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제주시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 운영자는 "환경보호에 동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부만 고통을 감내하라고 하면 당연히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실제 일회용품 배출이 더 많은 편의점이나 관광지 대형 카페에 대한 규제는 없이 동네 카페만 규제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일부 매장은 형평성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아메리카노가 1천500원으로 저렴한 가격대의 모 브랜드 제주지역 매장 중 여러 곳은 '형평성 없고, 고객에게 보증금을 전가하는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보이콧 중입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현수막을 내걸지 않았더라도 제주의 프랜차이즈 매장 중 여러 곳이 이날 보증금을 받지 않고 일회용컵에 음료를 내줬다.
제주프랜차이즈점주협의회는 앞서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어 "보증금제가 열악하고 영세한 프랜차이즈 카페에 희생을 강요한다"며 "일방적 시행을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제도에 불편함이 있고 시행 매장은 전체 매장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다 보니 손님들은 자연히 제도 대상이 아닌 매장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관광지에서의 쓰레기 배출 문제가 심각한 제주 관광지에 있는 대형 개인 카페들조차 대상에서 제외됐다며 "현재 제도 대상은 영세한 프랜차이즈 매장이 대부분이며 그마저도 수거와 보증금 반환의 불편함, 교차반납 금지 등으로 큰 성과를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협의회 관계자는 "보증금제 보이콧 매장이 몇 곳인지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지만 100여곳은 될 것으로 추측한다"며 "프랜차이즈점만이 아닌 일회용컵을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으로 대상을 확대해 형평성 있게 시행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용객 반응도 다양했다.
제주시에 사는 양모(32)씨는 "외근하러 다니며 이곳저곳에서 커피를 자주 사 마시는데, 300원 때문에 일회용컵들을 모아놨다가 반납하지는 않을 것 같다"며 "결과적으로는 음료 가격이 300원 오른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모(31)씨는 "소비자에게 환경부담금을 전가하는 것 같다"며 "도내 모든 카페가 아니라 프랜차이즈점에서만 한다면 일회용컵 회수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모(35)씨는 "지난해부터 스타벅스에서 보증금 1천원을 내고 리유저블컵을 사용해봐서인지 크게 불편하지는 않은 것 같다"며 "다만 환경보호를 위해서는 개인 컵 할인 혜택을 더 줘서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는 방향이 바람직한 것 같다"고 의견을 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카페 등 식음료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일회용컵에 음료를 받으려면 보증금 300원을 음료값과 함께 결제했다가 나중에 컵을 반납하면 돌려받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는 애초 지난 6월 10일 전국에서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가맹점주 반발 등으로 시행이 유예되고 시행지역도 축소됐다.
환경부에 따르면 이번 보증금제 적용 대상은 세종·제주 총 522개 매장(세종 173, 제주 349)이다.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발맞춰 일회용컵을 쓰지 않고 다회용컵을 쓰는 매장도 늘어났다.
세종시에서는 현재까지 일회용컵 보증금제 대상 중 12곳이 다회용컵 전용 매장으로 전환했으며, 제주도에서는 지난해 7월 4곳으로 출발한 다회용컵 전용 매장이 현재 96개로 늘었다고 환경부는 전했다.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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