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로 겪은 도하의 비극, 감독으로 만든 도하의 기적···명장이 된 모리야스
일본 축구에 있어 가장 기억하기 싫은 순간이 있다면 지금으로부터 29년 전 일어났던 ‘도하의 비극’을 첫 손에 꼽을 수 있다. 1993년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최종전에서 일본은 이라크를, 한국은 북한을 상대했다.
한국이 북한을 3-0으로 이긴 가운데, 같은 시간 일본은 이라크와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2-1로 경기를 앞서는 상황이었고 그대로 경기가 끝나면 일본이 승점 7점을 확보해 1위, 사우디 아라비아가 2위로 본선에 진출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경기 종료 직전 이라크에 동점골을 내주며 2-2 무승부로 경기가 끝났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가 1위로 본선에 진출했고, 일본과 한국이 승점 6점으로 같아졌는데, 골득실에서 앞선 한국이 일본을 누르고 2위로 본선에 올랐다. 아이러니하게 한국 축구사에는 ‘도하의 기적’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선수로 뛰었던 사람 중 한 명이 현 일본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맡고 있는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54)이다. 기억하기도 싫은 추억을 안겨준 땅에 이번엔 감독으로 온 모리야스 감독은 29년 만에 악몽같은 기억을 행복으로 바꿔놨다.
일본은 1일(현지시간) 카타르 알 라이얀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E조 최종전에서 스페인을 2-1로 누르고 승점 6점(2승1패)을 확보,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독일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2-1로 승리하는 이변을 연출했던 일본은 최약체로 분류되던 코스타리카에 0-1로 덜미를 잡혔으나 ‘무적함대’ 스페인을 최종전에서 누르는 이변을 다시 만들어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일본을 향한 전망은 부정적이었다. 스페인과 독일이라는, 유럽 축구의 강호들과 한 조에 속해 조별리그 통과는 힘들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모리야스 감독은 이런 예상을 전부 비껴갔다. 승점을 얻기 위해 일본 특유의 패스 축구 스타일을 버리고 철저한 실리 축구를 펼쳤다. 독일과의 1차전에서는 전반에 선제골을 허용하긴 했지만 촘촘한 수비망을 구성하며 독일의 공격을 원활치 못하게 했다. 다득점이 필요했던 코스타리카와의 2차전에서는 주전을 5명이나 빼는 무리수를 두면서도 패스 축구로 점유율을 월등하게 가져가며 맞섰지만 0-1로 패했다. 하지만 스페인과 최종전에서는 다시 선제골을 내주는 등 전반을 버리다시피 하면서도 스페인의 공격을 답답하게 만들 정도의 수비로 버텼다.
모리야스 감독은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질식 수비만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 전반전에 상대가 공격에 체력을 쏟게 만든 뒤 후반에 투입한 교체 카드로 승부수를 띄웠다. 독일전에서는 후반 중반 교체카드로 투입한 도안 리쓰(프라이부르크)와 아사노 다쿠마(보훔)가 각각 동점골과 역전골을 터뜨렸고, 스페인전에서는 역시 후반전 시작과 함께 투입한 도안과 미토마 가오루(브라이턴)가 후반전 시작 6분 만에 경기를 바꿔놨다. 도안은 후반 3분 그림 같은 중거리슛으로 동점골을 터뜨렸고, 그 3분 뒤에는 미토마가 아웃 직전의 공을 슬라이딩하며 크로스로 올려놔 다나카 아오(뒤셀도르프)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조 1위 16강,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2개 대회 연속 16강을 이끈 모리야스 감독은 이번 대회 최고 명장 중 한 명으로 주가가 치솟았다. 모리야스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우린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인 스페인과 경기를 했다. 매우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실제로 그랬다”며 “선수들이 한 골을 내줬지만 끈질기게 버텨줬고, 경기의 흐름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이제 8강, 혹은 그 보다 더 나은 새 기록을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알 라이얀 |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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