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문화 생산기지’로의 완벽한 자리매김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입력 2022. 12. 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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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수장고형 미술관’으로 탄생…국립현대미술관 4관 체제 완성
충북 산업 거점이던 ‘청주제초창’ 공백 메우고 문화 거점으로 부활

(시사저널=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옛 청주 연초제초장을 리모델링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우측). 좌측은 본관으로 비엔날레 전시장 등으로 활용된다. ⓒ김지나

2018년 12월 말, 우리나라 국립현대미술관은 4관 체제를 완성했다. 1986년에 개관한 과천관을 시작으로 1998년 덕수궁관, 2013년 서울관에 이어 2018년에는 충북 청주시에 네 번째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이렇게 국립현대미술관이 4개의 지점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는 방식이 처음부터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도 국제적인 수준의 현대미술관이 필요하다는 여론과 정부 방침에 따라 과천관이 설립됐고, 그 이전까지 현대미술관 역할을 하던 덕수궁미술관은 분관이 됐다. 과천관은 훌륭한 건축과 남부럽지 않은 규모를 자랑했지만 접근성의 문제가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그 아쉬움은 '서울에도 현대미술관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더 실어주었고, 서울 한복판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옛 국군기무사령부 건물이 미술관이란 새로운 용도를 찾은 것이 바로 서울관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수장품을 있는 그대로 관람객들에게 개방하는 '수장고형 미술관'이다. ⓒ김지나

친근한 매력의 '코스트코 미술관', 그 이상의 역사적 맥락

마지막으로 포화상태가 된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이슈 속에서 청주관 건립이 결정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장고형 미술관이다. 단순한 수장센터 이상의 '수장고형 미술관'이 된 데는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도 현대미술관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당위성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나라 국립현대미술관은 저마다의 특징과 의미를 가진 독특한 4관 체제를 이루게 됐다.

'기존의 전시장이 백화점이라면 청주의 국립현대미술관은 코스트코'라고 비유했던 큐레이터의 표현은 엄청난 화제가 됐다. 작품을 선별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관람객들에게 개방하는 수장고형 미술관이 마치 창고형 매장과 유사하다고 본 것이다. '재미없고 어려운' 현대미술의 이미지가 아니라 대중적으로 친근한 공간이라 어필하기에 괜찮은 비유로 여겨졌는지, 많은 매체에서 이 '코스트코' 표현에 주목했다. 하지만 보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 청주관이 들어선 장소의 맥락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1940년대에 세워진 연초제조창의 남동관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청주연초제조창은 일제강점기에 설치됐던 경성전매국의 담배공장이었다. 이곳은 수천 명이 근무하며 지역 경제를 책임졌던,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중요한 산업 거점이었다. 월급날이면 공장 앞에 장터가 들어섰고 근무자 중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여성들을 위해 하루에 세 번 수유 시간을 운영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 시절 많은 이들이 그랬듯 고된 노동의 시간은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공부시킨 뿌듯함으로 남았다. 연초제조창은 단순한 일터 이상의 커뮤니티 공간이자 삶의 희망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랬던 청주제초창도 기술과 시대의 변화를 겪으며 60여 년간의 소임을 내려놓게 됐다. 2004년에는 연초제조창 시설 모두가 완전 폐쇄됐으며, 근대의 다른 많은 산업유산처럼 수년간 방치돼 도시의 흉물이란 오명을 한동안 쓰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버려져 있었을지언정 잊히지는 않았다. '충북을 상징하는 기업'이라 불리던 과거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기억하는 시민들에겐 청주제초장의 빈자리를 언제 어떻게 메울지가 늘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담뱃잎 보관창고를 시민참여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동부창고' ⓒ김지나

주변 활기 끌어올리며 연착륙, 또 하나의 문화 자산으로

공백은 길지 않았다. 청주시에서는 공장이 단계적으로 폐쇄되기 시작했던 2000년대 초반부터 유휴지를 사들이며 문화산업 육성 기지로 전환할 준비를 했다. 청주제초장의 새로운 모습은 이곳이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되면서 조금씩 가시화됐다. 예산 부족 등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2014년 도시재생 선도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다시 한번 동력을 얻었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센터 건립 수요에 적극 부응한 것이 결정적인 도약판으로 작용했다.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쓰이는 본관은 각종 식음료 매장이 들어오면서 시민들의 일상에 한 걸음 다가섰다. 담뱃잎을 보관하던 동부창고는 여러 체험 프로그램과 문화예술 활동이 벌어지는 장으로 재탄생했다.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 주말 오후, 동부창고의 너른 야외마당에는 어린 자녀와 함께 마지막 가을 날씨를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활기가 가득했다.

이렇게 옛 연초제초장은 담배가 아니라 문화의 생산기지로 완벽히 부활한 모습이었다. 청주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돼 있었던 북부의 문화적 거점이란 점에서 더 의미 있는 변신이었다. 인근의 율량동 신시가지 일대에는 트렌디한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들어섰고 주민들의 생활편의를 돕는 상권도 자리를 잘 잡았다는 모양이었다. 리움미술관, 대림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등 주변 지역에까지 문화적 파급력을 보여준 서울의 많은 선례처럼,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역시 그러한 영향력을 적지 않게 발휘했을 것이다.

이 '문화제초장'은 청주뿐만 아니라 인근의 세종시, 대전시까지 충북권 일대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에 중요한 자산이다. 그래야 하는 책임만큼이나 가능성도 충분한 공간이었다. '코스트코'란 표현은 그 의미를 일부밖에 대변하지 못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방대한 수장품과, 좋은 큐레이션을 바탕으로 한 기획전시들이 이 지역에 가져올 앞으로의 변화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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