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시위 효과? 장쩌민 효과?…중국, 방역 정책 급변
중국 정부가 분주합니다. 격리와 봉쇄로 상징되는 강력한 방역 정책에서 출구를 찾는 듯한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됩니다. 중국이 마침내 '제로 코로나' 구호를 내려 놓는 것일까요?
■ 중국 당국, 잇달아 방역 완화 조치 내놔
지난 며칠 중국 당국은 잇달아 새로운 조치를 내놨습니다. 우선 대도시들에 대한 봉쇄 완화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광저우입니다. 도심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해도 아파트 단지 전체 대신 동(棟)만 봉쇄하고 구 단위 PCR 전수 검사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충칭도 점진적 봉쇄 완화가 시작됐습니다. 조건에만 맞는다면 밀접 접촉자의 자가 격리도 허용합니다. 베이징에서 가까운 허베이성 성도 스좌좡은 저위험 지역의 상업 시설 운영을 재개합니다. 랴오닝성 선양도 식당 내 식사를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수도 베이징의 경우도 큰 틀의 방역 변화 가능성이 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1일 소식통을 인용해 코로나19 확진자가 집에서 격리할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이라고 전했습니다. 현재 코로나19 확진자는 경중에 상관없이 시설로 보내져 격리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진 보다 열악한 시설 생활이 더 두렵다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서취(구 아래 행정 단위) 등 하부 조직을 다잡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쉬허젠 베이징시 대변인은 지난 달 30일 기자회견에서 "대중이 요구하는 문제를 가능한 힘껏 빨리 해결하고 전염병이 시민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민원이 발생하면 서둘러 해결하라는 이야기입니다.
■ 쑨춘란 부총리 "오미크론 병원성 약화…방역 새로운 정세"
이 모든 변화의 근거로 주목받는 발언이 있습니다. 중국 권력의 핵심,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자 방역 정책의 사령탑으로 불리는 쑨춘란 부총리가 지난 달 30일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좌담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미크론 바이러스의 병원성 약화, 백신 접종 보급, 방역 경험의 축적에 따라 중국의 코로나 방역이 새로운 정세와 임무를 맞이했다". 이때 병원성은 숙주에 전염된 감염체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 즉 질병 유발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관영매체들의 관련 보도에서 '제로 코로나'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이례적입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쑨 부총리의 발언을 중시하며 "중국 지도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부터 출구를 준비하고 있다는 최신 신호"라고 풀이했습니다. 사실 오미크론이 덜 치명적이라는 취지의 쑨 부총리 발언은 이미 '위드 코로나'로 접어든 다른 나라들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새삼스러울 것입니다. 이 때문에 관영매체의 지원 사격도 시작됐습니다.
영문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특종'이라면서 중국 연구팀이 오미크론의 병원성이 원래의 코로나바이러스와 그 변이들에 비해 약화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우한대 바이러스학 국가핵심연구소의 란커 소장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오미크론의 병원성이 극적으로 감소한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중국 정부의 정책 변화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 방역 완화 조치에 앞서 반정부 시위 잇달아
하지만 중국의 오미크론 확산이나 백신 접종 등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11월 이후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셉니다. 지난 며칠 감소세를 보였다지만 그래도 3만 명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공고히 유지해왔던 중국 정부가 방역 정책의 '급변침'을 결단할 때는 다른 배경들을 함께 생각해야 합리적일 것입니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최근 중국 곳곳에서 벌어진 反코로나 정책 시위입니다. 광저우, 상하이, 우한, 청두 등은 물론 베이징 대사관 밀집 지역에서도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지난 달 27~28일 절정을 이룬 시위 현장에서 反방역을 넘어 反공산당, 反시진핑 구호까지 쏟아져 나왔습니다. 1989년 천안문 민주화운동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시위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백지를 흔들며 시위를 한다고 해서 '백지 시위', '백지 혁명'이란 말도 나옵니다. 50여개 대학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우루무치 화재 참사를 매개로 연대의 가능성까지 관측됐습니다. 일부 대학은 학생들에 대해 조기 귀향 조치를 했습니다.
외신들은 정치 시위, 학생 시위를 주목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의미있는 시위가 있습니다. 지난 주말 한인 밀집 지역인 왕징을 비롯해 베이징 여러 곳에서 주민들의 집단 항의가 잇달았습니다. 여러 사례가 있지만 핵심은 중앙 정부가 방역 완화 20가지 대책을 발표했는데 왜 서취 등 하부 조직이 정부가 금지한 아파트 단지 봉쇄를 강행하느냐 였습니다. 성난 주민들이 봉쇄를 위해 쳐놓은 철제 담장을 힘을 모아 뜯어내기도 했습니다. 이후 실제 적잖은 아파트 단지가 봉쇄를 풀었습니다.
중국인들이 규정을 근거로 따지며 실력 행사에 나선 겁니다. 가만히 있으면 나만 손해보겠다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SNS 덕에 다른 지역의 실시간 정보를 알 수 있어 가능한 일입니다. 이를 본 현지 한국인들은 "20년 중국에 살았는데 처음 본다", "드디어 시민 의식이 생겼다"라고들 말합니다.
■ 장쩌민 전 주석 사망 애도 분위기…추모 집회가 시위가 될 가능성도
또 다른 변수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사망입니다. 위독설이 여러 번 있었지만 장 전 주석 사망은 공교롭게도 베이징 반정부 시위 직후인 지난 달 30일 발표됐습니다. 이후 일제히 애도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관영매체 화면과 지면은 물론 상업용 인터넷 사이트도 흑백으로 바뀌었습니다. 장쩌민 전 주석의 사저 앞에는 고인을 기리는 조화가 수북히 쌓였습니다. SNS에도 장 전 주석에 대한 추모 댓글이 하루만에 백만 건을 넘겼습니다.
고도 성장·사회적 관용이 있던 장 전 주석 집권기에 대한 향수를 반영한다는 분석이 뒤따랐습니다. 현재의 높은 청년 실업률, 저성장, 강력한 사회 문화적 통제 등과 비교됩니다. 홍콩 매체 더스탠더드는 "일부는 장쩌민 사망을 현 (시진핑) 지도부에 대한 은근한 공격에 이용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같은 현상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중국은 정치 지도자에 대한 추모 집회가 시위로 전환된 사례들이 있습니다. 1976년 저우언라이 전 총리 추모 집회와 1989년 후야오방 전 총서기 추모 집회가 모두 천안문 시위로 이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장쩌민 전 주석에 대한 추모 분위기는 현 지도부 입장에서 보면 양날의 칼입니다. 과도한 방역에서 비롯된 분노를 노정객에 대한 애도 분위기로 잠시나마 덮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추모를 명분으로 시민들이 모일 경우 과거 사례처럼 정치적 시위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 백지 시위·장쩌민 사망 맞물린 갑작스런 방역 완화…과제 여전
불과 며칠 사이 베이징·상하이 '백지 시위'와 장쩌민 사망 발표를 고비로 중국 당국이 발빠르게 방역 완화를 추진하는 것은 수세적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라는 해석이 그래서 나옵니다.
하지만 정치적 선택에 과학적 실력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에 대한 우려도 여전합니다. 중국은 여전히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큰 mRNA 계열 백신 접종을 시작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온 저장을 위한 콜드체인 시설 미비, 비용 부담, 외국 기술 의존 등 여러 고민이 있을 것입니다.
섣불리 '위드 코로나'로 갔다가 사망자가 속출할 경우 정치적 부담도 걱정될 것입니다. 시진핑 주석은 관행을 깨고 3연임 했습니다.
조성원 기자 (sungwon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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