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친구’ 유인원을 살리기 위해, 지금 해야할 것들[책과 삶]
침팬지·보노보·오랑우탄·고릴라…
경작지 만들려고, 식량이 부족해서
유인원 생존을 위협하는 지역사회
선명한 표정 담긴 사진과 여행기는
세상 바꿀 ‘작은 실천’을 촉구한다
우리들은 닮았다
릭 퀸 지음·이충 옮김 | 바다출판사 | 340쪽 | 2만5000원
캐나다의 수의사이자 안과학회 교수인 릭 퀸은 어느 날 책상을 정리하다 전에 모아둔 기사를 읽었다. ‘고릴라 닥터스’를 다룬 기사였다. 고릴라 닥터스는 아프리카에서 멸종위기에 처한 마운틴고릴라들을 치료하는 수의사 단체다. 기사에 감명받은 퀸은 친구 데이비드 램지와 함께 아프리카로 떠났다. 르완다와 우간다 등지에서 고릴라 닥터스와 고릴라를 만나고 온 그는 자신 안에서 무언가 변했다고 느꼈다. “여행은 끝났고 지구 반대편으로 돌아왔지만 우리가 알게 된 문제들이 여전히 눈앞에 있었다. 내 마음의 일부는 결코 그것들을 떠나지 못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경력이 정점에 달한, 겉보기에 분명히 성공한 전문의’는 짧은 여행 뒤 동물보호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제인 구달 박사의 강연을 듣고 ‘닥스포그레이트에이프스’라는 이름의 보호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대형 유인원의 건강과 그들을 둘러싼 지역공동체,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활동한다. 단체를 만든 뒤 퀸은 7년 동안 아프리카 7개국과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섬·수마트라섬을 탐험하며 보노보, 침팬지, 마운틴고릴라, 오랑우탄 등 유인원들을 만났다. <우리들은 닮았다>는 그가 찍은 사진과 여행기를 담은 책이다.
평생 동물을 치료해온 수의사지만 퀸은 유인원들에게서 차원이 다른 동질감과 감정 교류를 느낀다. 그는 “새끼 침팬지 옆에 앉아 그 침팬지의 밝고 맑은 눈을 바라보았을 때, 우리가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물론 비언어적인 소통이다. 이번 경험은 오묘했으며 내가 치료하던 동물들의 눈을 바라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고 썼다. 유인원은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분류된다. 침팬지와 보노보는 인간과 98.4%의 DNA를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릴라는 97.7%, 오랑우탄은 96.4%의 유사성을 가졌다.
그는 “내가 알게 된 것은 그들 모두가 우리를 닮았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찍은 사진들 속 유인원들은 정말 사람과 닮았다. 침팬지, 보노보, 오랑우탄, 고릴라의 얼굴에 표정이 선명하다. 만족스럽거나, 편안하거나, 궁금하거나, 즐거운 유인원들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된다. 애정을 가지고 찍은 유인원들은 늠름하고 사랑스럽다.
불행히도 유인원들은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불법 반려동물 유통이나 고기를 노리고 밀렵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무엇보다 유인원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지역사회의 인구 과밀과 가난이라고 퀸은 말한다. 그가 방문한 마운틴고릴라 서식지인 르완다 화산국립공원은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농촌마을에 둘러싸여 있다. 가족을 먹여 살리려 애쓰는 이곳의 가난한 농부들은 경작지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었고, 이는 고릴라들의 서식지를 파괴했다. 먹을 것이 부족해진 고릴라들은 국립공원을 벗어나 농경지를 어슬렁거리기도 했는데, 마을 주민들은 고릴라를 성가신 동물로 여기고 죽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농작물을 훼손하는 멧돼지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 것이다. 오랑우탄들이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 서칼리만탄주의 열대우림 인근 마을에서는 식량이 부족한 주민들이 오랑우탄을 직접 먹거나 다른 식품으로 교환하기 위해 사냥에 나서기도 했다. 극심한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는 주민들이 유인원들을 죽인다고 비난만 할 수는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유인원들은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해야 하는 사람들에 의해 대부분 희생되고 있다”며 “야생동물의 손실을 막으려면 우선 지역주민의 요구사항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 살고 있는 대형 유인원의 이야기가 너무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당신이 오늘 먹은 것, 당신의 눈앞에 있는 물건도 오랑우탄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데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오랑우탄의 생존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바로 ‘팜유’다. 값싸고 실용적인 팜유는 누텔라, 쿠키, 샴푸, 화장품, 치약, 마가린 등 많은 제품을 만드는 데 쓰인다. 이를 생산하는 기름야자나무를 심기 위해 동남아시아의 나라들은 습지와 숲을 불태웠고, 지금도 불태우고 있다. 퀸은 “우리는 정말로 점점 더 상호의존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며 “대형 유인원의 위기는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퀸은 “수많은 문젯거리로 가득 찬 이 힘든 세상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손을 들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들어도 “희망을 가지고 작은 승리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대형 유인원이 사는 나라의 비영리단체에 후원하기, 야생동물 보호소 지원하기, 대형 유인원의 생존을 위협하는 제품 사지 않기 등 실천할 만한 것들을 언급한다. 이 책을 서점에서 집어드는 것도 대형 유인원을 위한 행동이 될 수 있다. 책의 판매수익금은 전액이 닥스포그레이트에이프스를 위해 쓰인다고 한다. 무엇보다 “너무 작은 것이란 없다”(제인 구달)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작은 실천이 세상을 크게 바꾼다는 뜻이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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