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전차군단·무적함대 연파한 일본의 힘…우연 아닌 시스템의 결실
2050년 월드컵 우승 노리는 '일본의 길'…"대표팀-풀뿌리-J리그 선순환"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일본 축구가 기어이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전차군단' 독일에 이어 '무적함대' 스페인까지 격파하며 두 대회 연속 16강 진출의 기쁨을 만끽했다.
일본은 2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칼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E조 조별리그 최종 3차전에서 2-1로 역전승을 거뒀다.
'죽음의 조'라 불리는 어려운 조 편성에도 스페인과 독일을 밀어내고 조 1위의 쾌거를 이뤄냈다.
아시아 국가 최초로 2개 대회 연속 16강에 오르면서 한국(6승)을 넘어 아시아 본선 최다승(7승)도 달성했다.
새 역사를 쓴 놀라운 선전의 비결에도 관심이 쏠리는데, 전문가와 외신은 우연이나 행운이 아닌 장기적인 시스템 개혁의 산물이라는 진단한다.
"유럽서 하던 대로 할 것"…유럽파가 4골 모두 책임
표면적으로는 조별리그 4골을 모두 책임진 유럽파들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먼저 0-1로 끌려가던 조별리그 1차전 독일전 후반 '독일파'가 움직였다.
독일 분데스리가 프라이부르크에서 '작은' 정우영과 한솥밥을 먹으며 포지션 경쟁을 펼치는 도안 리쓰와 아사노 다쿠마(보훔)의 연속골이 터져나왔다.
도안은 이날 스페인전에서도 0-1로 끌려가던 후반 3분 강력한 왼발 중거리포로 골망을 흔들었고, 3분 만에 다나카 아오(뒤셀도르프)가 역전 결승골로 조별리그 파란을 완성했다.
다나카에게 문전에서 완벽한 기회를 만들어준 선수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브라이턴에서 뛰는 윙어 미토마 가오루였다.
이런 유럽파 선수들의 비중을 일본이 개막 전부터 유럽 강호들과 승부에서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근거였다.
미나미노 다쿠미(AS 모나코)는 지난 16일 교도통신과 인터뷰에서 '죽음의 조' 상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과 대결을 두려워하는 선수는 (대표팀에) 한 명도 없다. 이제 그런 시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표팀에 유럽파 선수들이 많다며 "우리는 유럽의 소속팀에서 평소에 하던 것처럼 뛸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유럽파만 19명…유럽이 들여다보게 한 일본
일본은 '축구의 본산' 유럽 무대에서 뛰는 선수가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다. 26인의 최종 명단 중 19명이 유럽파로 벤투호(8명)의 2배가 넘는다.
이들 유럽파의 존재는 사실 일본 축구가 공을 들린 '시스템 개혁'의 산물이다.
스포츠 매체 디애슬래틱은 최근 일본 선수들이 인기가 높아졌다며 유럽 구단이 낮은 몸값과 함께 기술적 기량과 현지 적응력에 매력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는 일본 축구계가 부단히 애쓴 덕이라고 짚는데, 특히 테리 웨스틀리 J리그 기술 고문의 존재가 그런 노력의 표상이라 봤다.
2016년 일본 프로축구 J리그 이사진은 선수 수준의 발전을 위해 유럽 전역을 돌며 각지 유소년 아카데미를 연구했다.
그러던 중 웨스트햄(잉글랜드)이 유소년 단계부터 선수 기술 발전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에 감명을 받았고, 자국 내 코칭 프로그램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자각했다고 한다.
이에 프리미어리그(EPL)급 선수들을 길러내는 지도 방식을 도입하고자 웨스트햄 유소년 아카데미를 이끌던 웨스틀리를 전임 고문으로, 운영 책임자 애덤 레이메스는 전략 기획 이사로 데려왔다.
2019년 일본프로축구는 이런 노력을 종합한 '비전 2030'과 '프로젝트 DNA'를 출범해 선수 수준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현지 영자지 재팬타임스의 축구 전문 기자 댄 올로위츠는 영국 BBC방송에 "일본에는 모든 포지션에 세계적 기량과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있다"며 "이제 유럽 구단들이 일본 선수들의 재능을 깨닫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2050년 월드컵 우승 내다 보는 '일본의 길'…풀뿌리·대표팀·J리그
일본축구협회(JFA)는 2005년 '일본의 길'(Japan's Way)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철학을 명확히 제시했다.
JFA는 "2050년까지 축구 관련 인구를 1천만명까지 늘리고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 우승한다"고 이 프로젝트의 목표를 소개한다.
대표팀, 유소년, 지도자, 축구 저변 확대라는 4개 항목을 둔 JFA는 17년간 이 프로젝트를 뚝심 있게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통계 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JFA에 등록된 선수만 82만명을 넘는다.
프로축구 리그만 3부까지 운영하는 데다 각 지방자치단위에서 꾸리는 리그까지 합치면 무려 9부 이상으로 나눌 수 있다.
흔히 수준별로 리그가 승강제로 연결된 축구 선진국 잉글랜드의 시스템을 '축구 피라미드'라 하는데, 일본 역시 유사한 자체 생태계를 구성한 것이다.
이 생태계의 정점에 유럽파 선수들이 있다.
2019년 J리그에서 3개월가량 연수를 받는 등 일본 축구에 정통한 박공원 대한축구협회 이사는 "JFA와 J리그는 국가대표-풀뿌리-프로축구의 선순환 삼각 구조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박 이사는 "JFA가 풀뿌리 수준에서 저변을 넓히고 기술적, 체력적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한다면 J리그가 그 선수들을 최대한 유럽으로 보내려 한다"며 "그 선수들이 은퇴 무렵 돌아와 리그 수준을 올려주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도 독일 뒤셀도르프에 파주 NFC 같은 해외 베이스캠프를 만들어 시설, 언어, 문화적 적응 등 유럽 진출을 위한 각종 지원에 나서려 한다"며 "결국 시스템의 성공"이라 진단했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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