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수술 코디로 취직한 과학기술학자의 ‘성형세계 참여관찰기’[플랫]

플랫팀 기자 2022. 12. 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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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
임소연 지음 | 돌베개 | 243쪽 | 1만5000원

2010년대 초반은 ‘성형 메이크오버 쇼’의 전성기였다. <렛미인> <도전 신데렐라> 등 쇼의 이름은 제각각이었지만 콘셉트는 같았다. 기구한 사연의 출연자들에게 전신 성형 수술을 통해 새로운 외모와 더 나은 삶을 선물해준다는 것이다. 매회 화제와 논란을 낳으며 전성기를 누린 이 프로그램들은 외모지상주의를 강화하고 성형 부작용을 외면한다는 비판과 함께 하나둘 종영했다. 하지만 메이크오버 쇼는 사라졌어도 ‘메이크오버’(성형)와 이를 통해 사람들의 변신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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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는 과학기술자 임소연이 대학원생 시절이던 2008년부터 약 3년간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코디로 일하며 참여관찰해 쓴 기록물이다. 저자는 성형외과 의사와 간호사, 상담실장, 환자 등 다양한 주체를 만나 인터뷰하고, 스스로도 쌍꺼풀 수술과 양악 수술을 받으며 성형수술의 당사자가 됐다.

지적 능력으로 평가받는 학계와 외적 매력이 모든 것인 성형외과. 이질적인 두 세계에 동시에 속한 저자는 낯선 성형외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흥미롭게 그린다. 예쁜 얼굴의 기준은 무엇인지, ‘코리안 스타일’과 ‘강남 스타일’은 각각 어떻게 다른지, ‘성형미인’과 ‘자연미인’을 구분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등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은 생각을 풀어낸다. 2000년대 후반 들어 미의 패러다임이 눈에서 코로, 다시 코에서 입(하관)으로 변해가는 과정도 다룬다.

2010년대 초반은 ‘성형 메이크오버 쇼’의 전성기였다. 매회 화제와 논란을 낳으며 전성기를 누린 성형 메이크오버 프로그램들은 외모지상주의를 강화하고 성형 부작용을 외면한다는 비판과 함께 하나둘 종영했다.tvn <렛미인> 캡쳐

성형외과 코디로 일하며 관찰한 성형외과의 세계를 다룬 초반부를 지나 중반부에 들어서면 저자는 성형수술의 당사자가 된다. 수술 당일부터 수십, 수백일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느꼈던 고통과 일상·심리적 변화를 고스란히 기록한다.

후반부에 접어들면 저자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성형수술이 논의되어온 틀이나 그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인종주의나 정치적 올바름, 여성주의적 시각 모두 완전히 틀리지 않았지만 완전히 옳지도 않다고 말한다. 이른바 ‘성형괴물’(지나친 성형수술로 부자연스럽거나 위화감이 드는 외모를 가지게 된 사람을 비꼬는 말)의 존재가 어떻게 ‘여성주의’를 수행하게 되는지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무릎을 치게 된다. 비록 지배적인 미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하게 순응하기 위해 시작되었더라도 결국 지배적인 미의 기준에서 어긋남으로써 강력한 퍼포먼스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

<렛미인>이 출연자의 안타까운 사연(즉 성형을 해야 하는 이유)에 집중했듯이 성형수술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주로 수술의 동기에 집중돼있다. 비판의 주류는 가부장제적 미의 규범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인식이 한국 사회의 특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성형수술을 결심하고 실천하는 여성의 경험과 ‘선택 이후의 삶’, 여성 당사자의 몸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왜’보다 중요한 것은 (수술 이후) ‘어떻게’라고도 한다.

책의 제목이 <나는 왜 성형미인이 되었나>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인 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책에서 저자는 어느 날 갑자기 양악 수술을 결정하고 수술대에 오른 것으로 그려진다.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거나 ‘부정교합으로 평소 불편함을 느꼈다’는 등 ‘왜’에 관한 서술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보다 도드라지게 서술된 것은 수술 후 가족과 의료진으로부터 받은 ‘돌봄’이다. 저자는 나아가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몸’보다 구체적인 현실로서의 ‘살’ 이야기를 더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여성학과 장애학에서의 ‘몸’이 차이와 다양성에 주목했다면, ‘살’은 다양한 차이를 연결해주는 보편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살을 조정하고 몸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어려움을 공유함으로써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당사자들을 연결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저자는 말한다.

최민지 기자 ming@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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