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광, ‘겨울나그네’의 신선한 도발…“슈베르트의 1800년대와 지금이 만났죠”

2022. 12. 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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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일, 예술의전당 ‘겨울나그네’
현재 시점에서 돌아보는 과거 여행
1인극 형태의 신선한 시도와 도발
고전과 현대 아우르는 편곡 시도
전통성 살리면 새로운 변화
바리톤 이응광 [봄아트프로젝트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내가 사랑을 노래하려고 할 때마다 사랑은 고통이 되었고, 고통을 노래하려고 하면 고통은 사랑이 되었다.” (프란츠 슈베르트)

저벅저벅, 한 남자가 걸어나온다. ‘찰나’ 같은 젊음과 사랑의 시련을 모두 견뎌낸 남자. 그는 관객과 마주하고 지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의 노래에 맞춰 반주해 줄 수 있겠소?”

완연한 겨울과 함께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가 돌아왔다. 바리톤 이응광의 ‘겨울나그네’는 조금 다르다. ‘신선한 도발’이 슈베르트를 무대로 소환한다.

“‘겨울나그네’는 뮐러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거지만, 이번 공연에선 마치 슈베르트의 인생인 것처럼 구성했어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이 계절의 단골손님이다. 올해에도 12월 첫 주에 만나야 할 ‘겨울 나그네’ 공연만 해도 세 편. 그 중 이응광의 공연(12월 2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은 조금 다르다. 지난해 5월 선보인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모놀로그(1인극) 시리즈다. 클래식의 확장에 대한 음악가로의 평소 고민이 이번 공연에도 녹아났다.

리허설 현장에서 만난 이응광은 “‘겨울 나그네’는 늘 여러 차례 무대에 올려졌고, 훌륭한 성악가들이 슈베르트의 본질을 보여준 공연을 많이 들려줬다”며 “이번 공연에선 우리만의 방식으로 편곡해 색다른 슈베르트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공연은 음악적으로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곳곳에 이응광의 깊은 고민과 음악적 방향성이 묻어났다.

우선 프로그램에선 ‘겨울나그네’ 스물 네 곡 중 4개의 곡은 빠졌다. 대신 어떤 곡은 전주 등 일부만 차용해 극 안에 녹아든다.

“‘겨울 나그네’에선 절망을 노래한 곡이 너무나 많아요. 1시간 20분간 이어지는 극의 흐름상 관객들이 힘들고 지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가장 큰 시도는 클래식 음악의 장르적 변화다. 클래식과 재즈 두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해온 작곡가 다움이 편곡에 참여했다. 이응광은 “긴장감을 가지고 지루하지 않도록 새로운 편곡을 덧붙였다”고 했다. 물론 모든 곡이 편곡된 것은 아니다. “원곡 자체가 참신한 리듬감과 그루브”(작곡가 다움)를 가지고 있는 데다, “짜임새가 완벽한 곡들이 많아”(이응광) 최대한 원곡이 주는 느낌을 살렸다.

“편곡을 마치고 나니 1800년대 슈베르트의 감성과 2022년의 감성이 섞이더라고요. 고음악적 요소가 녹아있으면서도 아방가르드 풍의 음악이 담겼어요. 고음악과 현대음악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슈베르트의 다른 연가곡 중 ‘백조의 노래’에 나오는 ‘세레나데’를 이번 ‘겨울나그네’에 차용한 것도 색다른 시도다. “힘든 겨울에 잠시라도 꿈을 꾸는데 행복했던 때를 떠올릴 수 있는 곡을 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세레나데’는 ‘겨울나그네’의 11번째 곡인 ‘봄의 꿈’을 통해 어우러진다. “‘겨울나그네’를 잘 아는 사람에겐 서프라이즈 같은 곡이고, 모르는 사람에겐 많이 들어본 선율이 들려 반가운 곡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의 노래 역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조화를 중심에 둔다. 이응광은 “‘겨울나그네’는 학구적이고 오랜 전통을 가진 음악인 데다 텍스트가 심오해 한 음 한 음 표현해야 할 것이 많은 어려운 작업이다”라며 “특히 모놀로그 리사이틀은 협연이나 오페라, 뮤지컬보다 부담스럽기도 하다. 전통성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담아낸 노래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리톤 이응광 [봄아트프로젝트 제공]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응광 역시 고민이 적지 않았다.

“원형은 살리되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고심했어요. 마니아에겐 클래식을 존중하는 신선한 시도라고 느끼고, 일반 관객에겐 호기심과 궁금증을 주고 싶었어요.”

이응광은 지금 하고 있는 이 작업들이 클래식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향해가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는 “이것이 지금 이 시대에 우리 세대가 보여줄 수 있는 시도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며 “스펙트럼을 넓혀 활동하며 클래식이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대 위 이응광은 슈베르트이면서 이응광 자신이 되기도 한다. 그는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음악가로 보낸 긴 시간동안 23개국을 오가며 노래해온 ‘이방인의 삶’을 떠올렸다.

“연주, 콩쿠르, 오디션 등 여러 일정으로 많은 나라를 다녔더라고요. 2002년 불가리아 소피아, 2005년 독일 베를린, 2008년 스위스 바젤로 떠났던 저는 늘 이방인이었어요. 여러 도시를 다니며 기쁨도 만났고, 좌절도 경험했어요. 이국의 도시에서 절망할 때, 원하는 결실을 얻지 못할 땐 ‘겨울나그네’의 방랑 같은 시린 느낌이 있더라고요. 그 기억과 경험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이응광은 이번 ‘겨울 나그네’를 통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 우리에게 찾아올 희망의 씨앗을 건넨다. 그는 “누구에게 한 번쯤 시련은 찾아온다”며 “이 작품을 통해 우울감이나 좌절이 아닌 봄을 기다리는 작은 희망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겨울나그네’는 단지 사랑의 시련이 아니라 우리 삶을 관통하는 아픔, 절망, 좌절을 담아낼 수 있는 작품이에요. 마지막 곡에서 거리의 악사에게 동행을 제안하는 화자처럼, 삶의 고통을 겪는 모든 이들에게 음악으로서 손 내밀며 위로하고 싶어요. 팬데믹과 비극적인 참사, 여전히 이어지는 전쟁으로 어려운 때에 이 음악들이 우리의 삶을 어루만질 거라 믿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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