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MVP 김강민, 내년에도 장인의 스윙을 [국영호의 스포츠人사이드 #24]

국영호 2022. 12. 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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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人을 통해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찾아봅니다.
연합뉴스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시즌을 마친 프로야구가 시상식 시즌을 맞았다. 스토브리그도 후끈 달아오른다. 그래도 그라운드를 바라보면 관중석의 함성이 메아리치는 듯하다.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의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2022 프로야구가 그만큼 진한 여운을 남겼기 때문일테다. 포스트시즌, 특히 한국시리즈가 그랬다. 그 중에서 극적인 피날레를 장식한 선수를 꼽으라면 대다수가 김강민(40·SSG)을 꼽을 것이다. 최고령 MVP가 주어진데는 이유가 있다.

야구 기량이 익을대로 익은 김강민을 MBN 스포츠전문 토크쇼 ‘스포츠야’에서 만나 2022시즌 막판에 남긴 노장의 진한 '풍미'를 느껴봤다.
'22년 숙성' 장인의 스윙

잘 알려졌다시피 올해 한국시리즈는 ‘김강민 시리즈’로 불린다. 김강민은 SSG의 4승2패로 끝난 6경기에 대타로 나서 8타수 3안타를 쳤는데 그 중 2개가 홈런이었고, 5타점이나 올렸다. 특히 5차전 9회말 끝내기 3점 홈런은 하이라이트, 소름을 돋게 했다. 한국시리즈 최초 대타 끝내기 홈런이었고, 최고령 MVP를 받는 결정적인 활약이었다. 프로 22년차 장인의 스윙이었다고 해야 할까.

“너무나 간결한 스윙이었어요. 올 시즌 최고의 스윙이 아니었나 싶어요. 팬들의 염원이자 벤치의 동료들의 기운이 아니었나 싶어요. 제가 쳤다고 하기에는 너무 완벽했어요. 다시 해도 그런 스윙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십 몇 년 전 스윙이 나온 것 같아요. 20대 때 스윙이요. 끝내기 홈런을 친 것도 처음이고요.”
연합뉴스

불혹 맞은 노장의 품격

대타이기 때문에 긴장 속에 출전을 기다려야 하니 지쳤을 법하고 김원형 감독에게는 약간의 서운함이 있을 수 있지만,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하도록 프로 선수를 하고 있는 김강민은 오히려 그게 순리였다며,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지 않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노장의 품격이라고 해야 할까.

“올 시즌 주전으로 활약한 최지훈 선수가 선발로 나서고, 제가 뒤에서 이끌게 됐는데, 그게 이번 한국시리즈 키포인트였습니다. 신의 한수였던 거죠. 제가 정규시즌에 키움에 강하다고 해서 선발 출전하겠다고 했으면, 키움 입장에선 충분히 대비를 하고 편하게 시리즈를 치렀을 수 있어요. 최지훈이 초반에 실수를 했다고 선발에서 제외하지 않은 게 옳았던 거죠. 그래서 제가 ‘대타로 출전한 게 더 좋지 않았나 생각했다’고 나중에 감독님에게 얘기도 했죠. 여러모로 잘 맞아떨어진 시리즈였습니다.”

이렇게 김강민은 올초 계획한 목표를 모두 이뤘다. 전신인 SK에서 한국시리즈 4차례 우승하고, 팀명이 바뀐 SSG에서 첫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총 5회 우승.

“올해 목표가 친구인 추신수 선수와 같이 우승 반지 끼는 것, 랜더스로 팀명이 바뀌고 우승하는 것, 그리고 하이라이트 필름 만드는 것, 마지막으로 감독님 재계약이었는데 모든 걸 다 가진 한해가 됐습니다. 한국시리즈 MVP는 전혀 생각 못했고요. 아직도 꿈만 같습니다.”
연합뉴스

Q.5차전 대타 끝내기 홈런에 추신수 선수는 눈시울을 붉혔죠?
“추신수 선수는 그날부터 계속 울었어요. 하하. 추신수가 팀을 이끌면서 시즌 내내 고생을 많이 했는데 프로 무대 첫 번째 우승을 하게 돼서 제가 다 감격스러웠습니다. 우승하고 둘 다 울었던 것 같아요. 추신수가 지난해 팀에 왔을 때와 올해 김광현 선수가 복귀할 때 두 번 모두 다짐했죠. 랜더스 팀명 바뀌고 첫 번째 우승은 ‘내가 꼭 함께 해야겠다’고.”

Q.그런데 목표 중에 김원형 감독 재계약은 왜 있는 건가요?
“‘SK 왕조’ 멤버들이 같은 왕조 멤버인 김원형 감독님을 곁에서 잘 보필하라는 말들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그게 목표였어요. 감독님이 재계약하기 위해서는 우승을 해야 하니까 동기부여가 됐죠. 그래서 우승하고 많이 벅찼죠.”(※김원형 감독은 3년 총액 22억 원에 재계약)
연합뉴스

Q.김 감독과는 선수 생활도 같이 했는데, 감독과 선수로 ‘케미’가 잘 맞나요?
“감독님하고 딱 10년 차이가 나는데, 제가 어릴 때는 쳐다보기도 힘들었죠. 제가 야구도 잘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패기로 야구할 때니까 혼도 많이 났고요. 지금은 감독님이 지시하기 보다는 소통을 하려고 하세요. 귀가 열려 계신 거죠. 그게 정말 고맙고요, 고참들과 많은 얘기를 하세요. 그러면서 저희가 고칠 건 고치고 감독님도 바꿀 건 바꾸셔서 좋은 시즌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후배들과 팀이 올바른 길로 가게 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요, 그런 면에서 추신수, 한유섬, 김광현 선수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함께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잘 풀린 것 같아요. 주장 한유섬 선수에게 특히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새로운 시대의 시작

위에서 언급했듯 김강민은 이른바 ‘SK 왕조’ 출신으로 2007년과 2008년, 2010년,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고, 팀명이 변경된 올해는 SSG 소속으로 총 5차례 우승을 달성했다. 이게 ‘SSG 왕조’의 시작일지는 내년까지 가봐야 안다. 다만, KBO리그 40년 역사상 최초의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시즌 시작과 함께 끝까지 정규리그 1위를 달성한 압도적인 전력이라면 새 왕조의 서막이 열렸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Q.‘SK 왕조’에 이어 ‘SSG 왕조’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저와 추신수를 비롯해서 주장 한유섬 선수까지, 모두의 목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모를 발버둥을 많이 쳐야 합니다. 올해 최다승 타이(88승) 했으니 역대 최다승 가야하죠. 다른 팀들도 쉬는 게 아니고, 전력도 더 좋아질 테니까 저희가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고요. 저희는 우승팀이니까 목표는 타이틀 방어겠죠. 그것부터 해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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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까지 이렇게나 많이 우승을 해서 다섯 손가락에 모두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게 됐는데, 그 중에서 최고는 올해일까?

“아니오. 2007년 첫 번째 우승을 잊을 수가 없어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중견수 자리에서 마운드까지 뛰어가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더라고요. 아득한 느낌.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올해 우승할 때는 정신은 있었는데, 그때는 정신이 없었어요. 그 기분은 앞으로도 못 느낄 것 같아요. 첫 우승은 잊을 수가 없어요. 올해는 팀명이 바뀌고 나서 첫 우승이라 비슷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이번이 선수 생활 중에 마지막 우승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벅찼어요.”
성공의 시작은 기여에 대한 인정

나이 한 살씩 먹을수록 김강민 같은 고참 선수들은 ‘고용 불안’이 오기 마련인데, 오히려 올해는 마음 편하게 야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것은 시즌 중 가장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활약을 펼친 계기가 됐을 수 있는데, 이 대목에서 꼭 소환해야 하는 인물이 있다. 흔히 ‘용진이형’으로 불리는 SSG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다.

“프로 22년차에 구단주로부터 처음 문자메시지를 받았어요. 올해 시범경기 마지막 경기 끝내기 안타를 쳤는데, ‘축하하고, 멋있었다’는 문자를 받은 거죠. 믿기지가 않아서 추신수한테 부회장님 번호가 맞느냐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때부터 ‘우승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부회장님이 ‘사람 마음에 불을 지피셨다’고 해야 하나. 하하. 그리고, 주방에 초대받아 식사를 한 적도 있었는데,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노장되면 대우 못 받고, 홀대 받고 그만두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아니다. 너희들이 야구를 그만두는 건 내가 직접 정하겠다’다고요. ‘열심히 하고 잘하는 베테랑들을 우리는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읽혔어요. 속에서 뭔가가 올라오더라고요. 정말로 감사한 순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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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최선'이 모여 '최고'를 만들었다

김강민은 이외에도 족집게처럼 상대 전력을 맞추고 예상한 전력분석팀과 선수단이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르게 해준 ‘보모 같은’ 트레이닝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특히 불철주야 노력하며 자신에게 터미네이터 같은 몸을 유지시켜준 트레이닝팀에게 고마워했다. 오늘의 ‘짐승강민’ 있게 해준 원동력이다.

Q.중견수 수비력은 여전히 최고 수준인데, 그만큼 몸 관리가 철저한 것 같아요, 나이를 거꾸로 먹는 듯한 활약인데요?
“그런 면이 조금 있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능력치가 확 떨어지기 마련인데, 저는 조금 더 서서히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 채우려고 노력하면 조금씩 메워지는 것 같더라고요. 트레이닝 파트 도움을 많이 받아서 그런 것 같아요. 몸 회복이 하루하루가 다르다보니 관리를 굉장히 잘해주세요. 매일 만나서 트레이닝하고 치료받고 있죠. 제가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니까 편한 부분도 있고요.”
'최상'이 아니라면 미련없이 떠난다

그럼 김강민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 언제까지 뛰느냐다. 이미 마흔이 넘었으니까. 언제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다.

“떠날 때가 언젠가는 오겠지만, 하루라도 더 늦추는 게 목표에요. 팀이 나를 필요로 할 때까지 열심히 준비할 거고요. 후배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제 자리를 위협하고 더 좋은 성적을 내면 저는 웃으면서 떠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저 또한 뛰려고 굉장히 많이 노력할 것이란 거에요. 이전보다도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려고 노력할 거고요. 내년에도 뛸 겁니다. 지금 그만두기엔 아쉽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그리고 내년에도 우승해야죠. 하하.”

Q.마지막에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요?
“가장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정말 소박했어요. ‘이렇게 수비 잘하는 외야수가 있었다’ 정도? 예전에는 외야수 하면 공격이 외야수 능력을 대변했는데, 제가 수비형 외야수로 알려지면서 수비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줬죠. 그런데 지금은, 글쎄요. 어떤 선수로 기억되는지는 제가 은퇴하기 전에 세워야 할 목표라고 해야할 것 같아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은퇴하는 시점에는 정할 수 있을 것 같고, 그전까지는 냅다 달리겠습니다.”

‘노장’은 살아있다. 프로야구의 품격도 높였다. 과거이면서 현재이고, 미래를 잇는 존재이기도 하다. 내년에도 김강민이거나 또다른 노장이 프로야구의 각본 없는 감격스러운 드라마를 써주길 기대한다.(*위 기사는 11월 24일 스포츠야 방송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국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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