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E조로 끌려갔을 때 당신을 동정했습니다
[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2022 카타르 월드컵 조편성이 진행된 날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이 넘쳤습니다.
E조에 한 자리가 비어있었습니다. 이미 스페인, 독일, 코스타리카가 자리를 잡고 있었지요. 한국과 일본은 그 한 자리를 놓고 무언의 경쟁을 했습니다. 서로가 E조에는 들어가지 말자고 기도했을 겁니다. 그 경쟁에서는 한국이 이겼습니다. 일본이 E조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한국은 H조로 편성이 됐지요.
한국은 함성을 질렀지요. H조가 만만한 조라서가 아니라 E조가 너무나 막강했기 때문이었죠. E조는 '죽음의 조'라고 불렸습니다. 일본은 아마도 상갓집 분위기였을 겁니다.
어느 팀이 올라갈지 모르는 죽음의 조? 아니죠. 나머지 두 팀이 죽을 거라는 의미였죠. 죽음의 조라는 정확한 의미는 스페인과 독일이 100% 16강에 올라갈 것이고, 나머지 두 팀은 100% 떨어질 거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고백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유럽도 그냥 유럽이 아니라 유럽의 최강호, 그리고 월드컵 우승 경험이 있는 두 팀을 상대로 일본이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하더라도 힘들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독일과 스페인이라는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느껴지는 두려움이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동정심'을 가졌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일본의 월드컵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분수에 넘치는 동정이었습니다. 일본은 1차전에서 독일에 이겼습니다. 그것도 2-1 역전승이었습니다. 놀랐습니다. 그들의 이변에 박수를 쳤습니다. 하지만 2차전에서 코스타리카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일본의 전진도 끝날 줄 알았습니다. 다음 상대가 스페인이었으니까요. 일본을 이겼던 코스타리카를 0-7로 무참히 밟아버린.
이때까지만 해도 스페인과 독일의 16강 진출을 예상했습니다. 또 실수를 저지른 것이지요. 일본은 스페인마저 무너뜨렸습니다. 또 다시 2-1 역전 승리였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아시아 축구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아시아에서 한국과 경쟁하는 일본이지만 당신들의 저력은 한국이 본받아야 마땅합니다.
일본은 아시아 축구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2회 연속 16강에 올랐고, 원정 월드컵에서 최초로 조 1위를 차지했습니다. 또 조별리그에서 아시아팀이 월드컵 우승국 두 팀을 모두 격파한 것도 최초의 일이라고 합니다. 대단합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분수에 넘치는 동정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하지만 약간의 핑계를 대자면 세계 그 누가 일본이 월드컵에서 독일과 스페인을 잡을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당신들의 성과와 기운이 이제 한국 대표팀에게도 전해졌으면 합니다. 한국이 곧 포르투갈과 최종전을 치릅니다. 한국과 일본이 함께 아시아 축구의 위상을 더욱 높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토너먼트에서 한국과 일본이 만날 수 있는 날도 올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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