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팅 외치는 사자상 · 패딩 뒤집어쓴 나한상… 박물관은 살아있다

2022. 12. 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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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주말이면 국립중앙박물관에 간다.

별일 없이 가던 국립중앙박물관에 '계획 좀 갖고 가자'고 마음먹게 한 책이 출간됐으니, 신지은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원의 '박물관을 쓰는 직업'이다.

아, 이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닌 '국립경주박물관'에 있으니 '화이팅 넘치는 사자'의 뒷모습이 궁금하신 분은 경주행을 택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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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평론가의 서재

간혹 주말이면 국립중앙박물관에 간다. ‘사유의 방’에서 사유 아닌 딴생각을 한 것은 10번도 넘을 것이고, 독대하고 있으면 서슬 퍼런 기운마저 느껴지는 윤두서 선생과는 또 얼마나 얼굴을 마주했을까.

별일 없이 가던 국립중앙박물관에 ‘계획 좀 갖고 가자’고 마음먹게 한 책이 출간됐으니, 신지은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원의 ‘박물관을 쓰는 직업’이다. 신 연구원은 서두에 다음과 같이 썼다. “박물관에는 단 하나의 표준어가 존재한다. 그건 바로 고고학도 역사학도 미술사학도 보존과학도 교육학도 그리고 박물관학을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말’이다.”

‘박물관을 쓰는 직업’은 저자 특유의 재치가 살아 있는 책이기도 하다. 통일신라시대 유물인 ‘석조사자입석(石造獅子立石)’은 범상치 않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등을 돌리고 서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그 뒷모습만으로도 ‘우렁차게 포효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재질과 모습을 소개하는 글도 재치 있다. “단단한 화강암을 마치 찰흙 빚듯 부드럽게 조각해서 등부터 엉덩이, 네 발에 다 바짝바짝 힘이 들어간 견고한 긴장감이 생생하다.” 이 꼭지의 제목은 금상첨화, ‘화이팅을 외치는 사자상’이다. 아, 이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닌 ‘국립경주박물관’에 있으니 ‘화이팅 넘치는 사자’의 뒷모습이 궁금하신 분은 경주행을 택하시라.

고려시대 유물인 ‘동제(銅製) 보살손’과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연결하는 글은 공교(工巧)하기까지 하다. 신들의 세계로 들어선 치히로의 몸이 투명해지며 사라지는 장면을 아느냐고 묻는 한 동료가 있었는데, 연구용역 사업 프리랜서 연구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직원이 되고 보니, 그 말이 결국 자기에게 건넨 작은 인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가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손에 든 쿠키 접시를 내밀 듯, 소탈하게 건네는 가벼운 상냥함의 힘”을 지닌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애니메이션 주인공처럼 두 손이, 하여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 같은 세계에서도, ‘동제 보살손’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이가 우리 주변에 한둘은 늘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해주었다.

저자 주변에는 도(道) 통한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기회가 닿아 참여한 ‘창령사 터 오백나한’ 전시는 꽤 강도 높은 작업이었다. 자양강장제로는 피로를 떨칠 수 없어 “롱패딩 점퍼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지퍼를 코끝까지 올리고 쿨쿨 토막잠을 자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부장님의 한마디.

“아따, 여그도 우리 나한들이 있네! 이름표를 붙여줘얄랑가, ‘패~딩을 뒤집어쓴 나한’으로!” “지금도 무언가로 계속 만들어져가고 있”는 유한한 존재가 “유물처럼 완결된 존재”에 대해 쓰는 일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궁금하다면 책을 들춰볼 일이다.

영화처럼 유물이나 인형들이 살아 움직일 리는 만무하지만 “박물관은 살아 있다”는 사실만큼은 여실하게 보여준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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