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book적]교묘한 편향에 가스라이팅, 정신·감정 무력화시켜

입력 2022. 12. 2.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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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은 본성, 뇌는 범주화로 정보 처리,
자동화하면서 고정관념으로 굳어져
보상작용도 작동, 예측 적중 쾌감제공
평등주의자도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해
편향 회로 깨려면 구체적 행동설계 필요
가치중립교육·여성비율정하기 등 도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만나는 곳도 일종의 경계다. 그곳은 편향이 드러나는 곳이며, 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가 편향에 간섭한다면 서로를 보고 반응하고 관계 맺는 다른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편향의 종말’에서)

하버드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제시카 노델은 백인으로서 인종이나 젠더에 관한 차별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는 성적이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지켜줬고 대학에선 학문적 분위기 덕에 젠더 편향으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그에게 편향은 그저 백색소음에 가까웠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대학 졸업 후 언론계에 자리잡기 위해 기획 기사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낙담한 그는 실험 삼아 남자 이름으로 동일 기삿거리를 보냈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합격 통보를 받았다. 실력이 아니라 성별이 문제였던 것이다.

‘편향의 종말’(웅진지식하우스)은 노델이 진실을 직면하게 된 그 때, 젠터 편향의 경험에서 시작한다. 노델은 이후 15년 동안 일터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편향 경험과 연구 사례를 수집하고, 인지 심리학을 접목해 편향의 실체에 다가갔다.

저자가 수집한 편향 목록은 사실 끝도 없이 나열이 가능하다. 가령 미국에서 대학원에 다닐 예정이라면 인도인이나 중국인, 라틴계, 흑인, 여성처럼 들리는 이름을 사용하면 교수들에게 좋은 얘기를 듣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범죄 경력이 있는 백인 취업 준비생은 범죄 경력이 없는 흑인 응시자에 비해 2차 면접을 치를 확률이 더 높고, 흑인 학생은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백인 학생보다 문제 학생이라는 의심을 더 많이 받는다. 여성은 로펌에서 일자리를 얻을 확률이 적은데, 남성에 비해 헌신적이지 않을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 연구할 일자리를 찾는 여성이라면 똑같은 이력서를 낸 남성보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또는 더 적은 보수를 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한 고전적 연구에선 학계에서 교수직을 따내려 할 때, 여성이 남성과 같은 정도로 유능함을 인정받으려면 생산력을 2배 반 높여야 한다. 미국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인지 심리학적으로 편향은 인간 본능에 속한다. 인간의 뇌는 실시간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범주화하면서 고정관념을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보상작용이 벌어지는데, 결과를 예측했을 때 쾌감을 느끼고 반대로 예견이 틀린 것으로 판명될 때 짜증과 위협을 느끼게 된다.

한 실험에 따르면 백인 대학생들은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라틴계 학생들과 교류할 때 비호감과 위협을 느꼈다. 라틴계 학생들이 가난할 것이라는 고정 관념에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보상 시스템 속에서 인간의 두뇌는 끊임없이 고정관념에 중독되고 편향적 사고를 강화한다.

편향은 자신도 모르게 습관화하는데 의식적으로 편견을 거부하는 사람이라도 편향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평등주의자라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이중성은 선의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저자는 바로 그 지점이 편향적 행동을 변화시킬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저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교묘한 편향이다. 교묘한 편향이 공개적인 편향보다 더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교묘한 편향의 애매모호함 때문에 정신적·감정적 에너지를 더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가령 자신이 차별 때문에 승진에서 누락된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특히 자신의 지각에 계속 의문을 갖게 되면서 일종의 내적 가스라이팅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저널리스트 답게 마음 속에서 작동하는 이런 편향의 습벽을 깨는 방법을 집중적으로 탐색한다.

편견은 습관적이고 자동적이기 때문에 문제를 알아차리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전 반응을 새로운 반응으로 교체할 만큼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단순히 다양성 훈련을 도입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포천 500대 기업 대부분은 다양성 훈련을 도입하고 있는데 편향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무의식적 편향을 누구나 갖고 있다는 메시지가 고정관념을 더 강화할 우려가 있다.

저자는 네트워크로 작동하는 편향적 사고의 회로를 끊으려면 애초에 행동 설계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스웨덴 유치원의 가치중립 교육, 평등한 의료 서비스를 가능케 한 존스홉킨스 병원의 행동 설계 목록, 미 경찰관들의 총기 사용 빈도를 낮춘 마음챙김 훈련, MIT 여성 종신 교수 비율을 66퍼센트까지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사례 등을 통해 저자는 그 가능성을 제시한다.

편향은 혐오와 차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많은 사회문제와 비용을 발생시킨다. 누구한테는 일할 기회를 박탈하고, 조직의 건강성을 해치며, 사회갈등을 부추긴다.

1000여건이 넘는 연구 사례와 인터뷰, 특히 젠더 편향을 정량화하기 위한 저자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구축까지 편향 극복의 희망가를 쓰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이 빛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편향의 종말/제시카 노델 지음, 김병화 옮김/웅진지식하우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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