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조’를 흔든 독일과 스페인의 오만
축구공은 둥글다. 강팀도 자만하면 무너지는 법이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죽음의 조’로 불린 E조에선 독일과 스페인이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유럽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최강을 다투는 이들은 조별리그에서 몇 수 아래로 얕봤던 일본에 나란히 졌다.
독일이 지난달 23일 조별리그 1차전에서 일본에 1-2로 역전패하더니, 스페인 역시 최종전에서 같은 결과를 반복했다. 월드컵 역사에서 독일과 스페인이 단일 대회에서 한 팀에 모두 패배한 것은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의 오스트리아(8강) 이후 일본이 두 번째다.
그 결과 일본은 2회 연속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기쁨을 누렸다. 반대로 독일은 4년 전 러시아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조별리그 탈락의 치욕을 맛봤고, 스페인은 간신히 16강에 올랐다. 스페인은 코스타리카가 독일을 2-1로 앞서다가 2-4로 역전패한 게 다행이었다.
축구에서 객관적인 전력을 따지는 지표라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을 살펴보면 스페인와 독일은 각각 7위와 11위. 일본은 24위였다. 예상을 뒤엎은 결과였던 셈이다.
유럽을 넘어 세계적인 강호인 두 팀의 충격적인 패배는 예년만 못한 실력도 실력이지만, 방심도 컸다.
독일은 일본을 상대로 전반 33분 일카이 귄도안(맨체스터 시티)이 선제골을 터뜨리자 상대를 무시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했다. 수비수 안토니오 뤼디거(레알 마드리드)가 일본 아사노 다쿠마(보훔)를 막는 과정에서 놀리는 것처럼 뒤뚱뒤뚱 달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른바 타조 걸음이라 불린 이 장면은 이번 대회에서 왜 독일이 무너졌는지는 상징한다.
독일의 탈락에는 여전히 토마스 뮐러(바이에른 뮌헨)가 에이스 역할을 맡는 등 세대 교체가 늦은 것과 상대 수비를 무너뜨릴 크랙의 부재도 있겠지만 자신이 가진 최선의 플레이를 하지 못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독일이 과연 코스타리카전에서 막판 보여준 경기력이 첫 경기부터 나왔다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을지 의문이다. 후회하는 듯한 뤼디거의 뒤늦은 울음보는 녹슨 전차를 살리지 못했다.
스페인도 오만한 것은 똑같았다. 자신들이 자랑하는 티키타카(짧은 패스를 주고받는 전술)로 코스타리카를 7-0으로 대파한 것은 분명 대단한 성과였다. 빌드업 축구의 이상향답게 상대가 공을 잡지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두드렸다. 그러나 독일과 승패를 가리지 못한 상황에서 일본과 맞선 마지막 경기는 무적 함대가 다시 침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겼다.
스페인도 독일처럼 일본을 상대로 전반 11분 첫 골(알바로 모라타)을 넣자 여유를 부렸다. 상대 수비수 셋에게 모두 경고를 안긴 과정까지는 고개를 끄덕일 만 했다. 그렇다고 골키퍼까지 압박할 정도로 절실한 상대에게 공을 끄는 안이한 플레이를 화를 불렀다. 우나이 시몬 골키퍼의 어설픈 볼 처리가 후반 3분 도안 리쓰(프라이부르크)의 날카로운 중거리슛으로 연결돼 동점골을 내줬고, 6분에는 수비 불안 속에 역전골(다나카 아오)까지 헌납했다.
스페인은 역전골 직전 미토마 가오루(브라이튼)가 올린 크로스가 이미 골라인 아웃이라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대회의 특징은 머리카락 하나가 닿는 것까지 잡아내는 신기술에 있다. 비디오 판독을 거쳐 득점이 인정된 장면에 항의해봤자 그 호날두(무적)처럼 망신살이 뻗칠 것이 뻔하다. 오히려 도하의 비극이 반복될 것을 우려해 마지막까지 온 몸을 던지 수비한 일본의 신중함이 돋보였을 따름이다.
스페인에 그나마 다행이라면 조2위로 16강에 오른 덕에 오히려 강호 크로아티아 대신 모로코를 만났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스페인이 일본을 상대했던 것처럼 모로코를 얕본다면 이번 대회에서 무적 함대의 부활은 요원할 것이다.
도하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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