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예금의 시대 만약 은행이 파산하면?

변진경 기자 입력 2022. 12. 2.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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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도 무한정 안전하진 않다. 예금자보호제도가 있지만 1인당 한도는 5000만원이다. 금액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금융회사와 소비자에게 양날의 검이다.
11월15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정기 예적금 특판 광고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다시, 예금의 시대다. 돈이 은행의 저축성 수신 상품으로 몰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11월9일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 10월 중 은행 정기예금 잔액이 지난달보다 56조2000억원 늘었다. 2002년 1월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역대 최대 증가 폭이다.

정기예금 금리도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다. 지난해 평균 1.05%였던 예금은행 평균 수신 금리가 올해 9월 기준 3.35%까지 올랐다. 13.39%까지 올랐던 1998년 IMF 외환위기 직후보다는 아직 한참 낮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첫 금리 상향 추세다. ‘돈은 은행에 묵혀두는 게 아니다’ ‘빚을 질수록 돈을 번다’는 게 금융 상식인 것처럼 통하던 시대도 막을 내렸다.

예금도 무한정 안전하진 않다. 은행도 기업이라 망할 수 있다. 내 돈을 맡겨놓은 금융기관이 폐업하거나 파산한다면?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1997년 12월2일 한국 금융 역사상 처음으로 9개 종합금융회사들에 영업정지 명령이 내려졌다. 불안감을 느낀 고객들이 한꺼번에 예금을 인출하면서 정상 영업 중이던 종금사들까지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2011년 1월 시작된 ‘저축은행 사태’ 때도 비슷했다. 부실경영 진단을 받아 영업 정지를 당한 금융기관에서는 한동안 정상적인 예금거래가 중단된다. 맡겨놓았던 돈을 당장 찾아 쓸 수 없는 예금자들은 불안해지고, 그 불안은 금융계 전반으로 번져 또 다른 금융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피해와 불안을 막아내는 중요한 안전장치가 ‘예금자보호법’이다. 1993년 정부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은행이 도산할 경우에 대비한 예금자보호제도 도입을 중장기 정책과제로 설정했다. 2년 뒤 예금자보호법이 국회에서 통과됐고 3년 뒤 예금보험 업무를 전담하는 기구인 예금보험공사가 설립됐다. 제도가 전면 시행된 건 1997년 1월부터다. 이때부터 예금자들은 은행이 파산해도 일정 한도 내에서 예금액을 지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은행들이 평시 예금보험공사에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보험료가 이 파산 보전금의 재원이 된다.

첫 시행 당시 1인당 금융기관별 최대 예금보장한도액은 2000만원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한시적으로(1997년 11월19일~2000년 12월31일) 모든 예금이 전액 보장되도록 보호법 시행령이 개정되었다가, 고금리 예금 유치 경쟁이 심해지는 등 금융회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다수 발생하자 1998년 8월1일부터 부분보호제로 다시 바뀌었다. 그러다 금융시장 불안이 진정된 2001년 정부는 예금보장한도액을 5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그 한도가 20년째 유지되어왔다. 예금자보호법 제32조 2항에 따르면 1인당 국내총생산액, 보호되는 예금의 규모 등을 고려해 예금보장한도를 정할 수 있다. 20년 사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배 증가했다. 예금 자산 규모도 5배 이상 늘어났다. 해외 주요 국가와 비교해도 한도가 낮은 편이다. 미국은 1인당 25만 달러(약 3억3200만원), 일본은 1000만 엔(약 9500만원), 독일은 10만 유로(약 1억3800만원)까지 예금자보호제도에 의해 보장받는다. 이에 맞추어 예금보장한도액을 1억원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예금보험공사와 금융위원회는 올해 3월부터 이런 요구를 포함해 예금자보호제도 개선 과제를 검토하고 있다. 내년 8월까지 제도 개편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예금보장한도가 상향되면 예금 유치액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들은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납부해야 할 예금보험료가 오르기 때문이다. 예금보험료는 금융회사별로 매년 다르게 책정된다. 예금보험공사가 각 회사의 경영 및 재무 리스크를 평가하고 차등화된 예금보험료율을 적용한다. A+에서 C까지 5등급으로 나눠 각 업권별 표준요율(은행 0.08%, 보험사 0.15%, 금융투자사 0.15%, 저축은행 0.4%)에서 할인하거나 할증한다. 예금보장한도가 올라가면 목표 기금액이 증가하고 보험료율도 따라 오른다. 1997년 한시적으로 모든 예금 전액을 보호하게 되었을 때도 보험료율이 0.01% 올랐다(당시는 차등보험료율제가 아니었다).

예금보장한도 상향이 희소식이 아닌 이유

금융 소비자 처지에서도 예금보장한도 상향은 양날의 검이다. 한도가 올라가면 당장 목돈을 안전하게 불리고 지키기는 좋지만, 길게 보았을 때 은행이 지는 예금보험료 상승의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 금융회사들은 ‘예금보험료율이 오르면 그만큼 수신 금리는 낮추고 대출금리는 높이면서 수익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금융사가 대출금리를 산정할 때 가산금리를 구성하는 비용 중 하나에 예금보험료가 포함되어 있다. 예금할 자산은 없고 대출할 필요만 있는 서민층에겐 예금보장한도 상향이 희소식은 아니다.

보장한도 상향으로 금융시장 내 고금리 경쟁이 격화되면 결국 모두의 피해로 돌아갈 위험도 있다. 재정건전성이 열악한 금융기관일수록 출혈 고금리 경쟁을 통해 더 많은 예금을 유치하고, 위험성이 높은 사업에 투자할 기회와 유혹에 노출된다. ‘예금보험 보호 한도액의 증대가 은행의 도덕적 해이에 미치는 영향(박아련, 2012)’에 따르면 예금보장한도액이 증가함에 따라 은행들의 고정 이하 여신비율이 증가하고(건전성 악화), 총자산 대비 순이익률이 감소했다(수익성 악화). 금융기관과 예금자의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예금보장한도를 확대하더라도 금융회사 업권과 재정건전성 등에 따라 차등화해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파산 보전금이 원하는 때 당장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도 예금자들이 알고 있어야 할 사항 중 하나다. 예금자보호법에는 ‘보험 사고가 나고 2개월 이내 위원회 의결에 따라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라고 지급 결정 시한만 명시되어 있다. 2017년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는 ‘영업인가 취소일로부터 7일 이내’ 예금보험금을 지급하도록 조항을 추가한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보장한도를 초과한 예금액은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절차가 끝난 뒤 파산 배당을 통해 일부에 대해 보전이 이루어진다. 87개 저축은행 파산 사례를 분석한 ‘금융기관 부실과 개산지급금 제도에 대한 연구(오승곤 외, 2011)’에 따르면 예금자들이 돌려받은 평균 배당률은 약 55.45%였고, 지급까지 평균 약 2.04년(1차 배당), 3.49년(2차 배당)이 소요되었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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