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주의 옛 그림 이야기] 차고 시린 눈발 속에 어엿한 자존감

2022. 12. 2.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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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歲寒圖)'는 송백(松柏)이 주인공 노릇을 한다.

'차고 시린 시절의 그림'에 굳이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출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세모에 소나무 그림을 맛보려는 건 송월(松月)을 앞두어서다.

때로는 솟고 때로는 뒤트는 양태가 소나무의 자생(自生)일진대, 이 그림은 가혹한 겨울을 견뎌내라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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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엔 꼿꼿한 모양의 소나무
뒤엔 갸울어졌지만 잘 버텨
혹독한 냉기 파고드는 겨울
재목은 어엿하게 지조 지켜
 

이인상의 ‘설송도(18세기, 종이에 먹, 117×5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歲寒圖)’는 송백(松柏)이 주인공 노릇을 한다. ‘차고 시린 시절의 그림’에 굳이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출연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추사는 공자의 말을 빌려와 “한겨울이 되어서야 송백이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고 에둘러 말한다. 하기야 그렇다. 만화방창하는 시절에 송백의 푸름은 시답잖게 보이는 게 인심이다. 헐벗는 겨울이 와야 사철 푸른 나무의 진가가 돋보인다. 따습고 배부른 시절의 윤리는 너울에 머물기 쉽고, 춥고 가난한 날의 지조는 비로소 도탑다.

변심 잘하는 세상을 나무라는 소나무는 장구(長久)한 상징인 십장생에 든다. 소나무는 무리 가운데 섞여도 괘념치 않지만 백설이 온 땅을 뒤덮을 때 홀로 푸르다. 소나무는 포실하게 자라지 않는다. 아뜩한 절벽에 뿌리내리고 모진 바위 틈새에서 목숨을 지탱한다. 조선 소나무는 유난하다. ‘남산 위에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에 불변하는 기상’으로 칭송 받는다. 끈기는 민초의 생김새요, 지조는 군자의 됨됨이인 나무가 소나무다.

세모에 소나무 그림을 맛보려는 건 송월(松月)을 앞두어서다. ‘송월’은 정월(正月)을 가리킨다. 마침맞은 그림이 18세기 문인화가 이인상의 ‘설송도(雪松圖)’다. 때는 어둑해진 한겨울의 저물 무렵인 모양이다. 소나무 두그루가 며칠 퍼부은 눈으로 칠갑했다. 머잖아 졸가리만 남게 될 나무는 번거로운 잔가지를 떨쳐버린 노송이다. 트리밍과 클로즈업 기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화가의 과감성 덕분에 소나무는 헌걸찬 몸꼴이다. 그러함에도 저 뾰족 바위 사이로 맨살을 드러낸 솔뿌리는 처연하다. 만고풍상을 겪는 소나무의 가여운 인내가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듯하게 한다.

차고 시린 눈에 뒤덮인들 늘푸른나무가 설마 욕되겠는가. 소나무의 기색은 옹골지다. 앞에 꼿꼿한 틀거지를 자랑하는 소나무는 마냥 치솟을 기세다. 뒤에 갸울어진 소나무는 결코 쓰러지는 게 아니다. 남 보란 듯이 앙버틴다. 때로는 솟고 때로는 뒤트는 양태가 소나무의 자생(自生)일진대, 이 그림은 가혹한 겨울을 견뎌내라고 가르친다. 이인상은 왜 곧거나 버티는 나무를 함께 그려놓았을까.

이인상은 개결한 선비였다. 그의 초상화를 보면 수척한 골상에 눈빛은 내리깔되 입은 다물고 눈두덩이는 깊다. 그는 꽃나무를 아꼈다. 사별한 아내를 기리며 그는 썼다. “그대는 겨울날 땔감이 모자라도 마당의 꽃나무는 베지 않아 나의 측은지심을 살려주었소.” 서출인 탓에 그의 벼슬은 미관말직에 머물렀다. 배움이 넓고 문자 속이 깊은 자가 뜻을 펼 수 없는 세상은 원망스럽다. 가을 서리 같은 몸가짐을 보인 이인상은 ‘세상이 혼탁해서 알아주지 못하니 때를 얻고 잃음이 아침저녁에 달렸구나’ 하며 냉소했다.

‘설송도’로 다시 눈 돌려보자. 화가의 이름 석자를 새긴 인장이 돌부리에 콕 찍혀 있어 의미심장하다. 혹독한 겨울 냉기는 살갗을 파고든다. 하여도 소나무는 어엿하게 자존을 지킨다. ‘빼어난 재목은 가혹한 텃밭에서 자란다’며 역성드는 소나무다. 곧든 굽든 어찌 일깨움이 없겠는가.


손철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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