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환· 역사· 비경있는 고원길, 사계절을 걷는다

유주현 2022. 12. 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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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석탄 나르던 운탄고도
역사 담은 정선 구간 트레킹 인기
과거에 묻어 둔 미래를 찾는 길
새비재 타임캡슐공원·꽃꺼끼재
그리움·애환 녹아든 사랑의 길
무사 기원 담긴 도롱이 연못
광산으로 향하는 입구 1177갱
고향 그리며 소원 빌던 만항재
정선 운탄고도 1770갱.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개발한 최초의 갱도로 고한 사북지역 탄광개발의 시발점이 된 의미 있는 갱도다.

28.76㎞ - 4길

1960년대 정선, 영월, 태백, 삼척 등 도내 탄광지역에 아버지들의 삶의 애환이 깃든 길이 있었다. 한국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광부들이 탄광에서 일하면서 석탄을 나르던 임도가 바로 그 길이다. 우리는 이 길을 운탄고도(運炭高道)라 부른다. 석탄을 나르던 그 길이 60년이 지난 지금 힐링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로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운탄고도는 영월 통합안내센터를 시작으로 정선, 태백, 삼척으로 이어지는 총 9개 구간 173㎞로 조성돼 있다.

이 가운데 운탄고도 정선지역 구간은 신동읍 예미역~꽃꺼끼재(4길, 28.76㎞), 꽃꺼끼재~정선 함백산소공원(5길, 15.70㎞)길로, 이 구간은 과거에 묻어 둔 미래를 찾아가는 길이자 광부와 광부 아내의 애틋한 사랑이 묻어나는 사랑의 길로 불리고 있다.

4길인 정선 신동읍 예미역~ 꽃꺼끼재 구간은 석탄을 실어나르던, 말 그대로 운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만 천혜의 트레킹 코스로 걷기에 좋은 길을 갖추고 있다. 정선 신동읍 예미리에 위치한 예미역에서 출발해 철로와 나란히 난 국도 421호선 인도를 따라 걸으며 마주치는 풍경은 석탄을 운송하던 열차의 기관사가 보았던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철로를 뒤로 하고 함백 다목적복지회관 인근에 세워진 커다란 타임캡슐공원 입간판에서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이 마중한다.

선 운탄고도 4길에 위치한 타임캡슐공원 전경

바로 새비재다. 배우 전지현과 차태현이 주연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엽기소나무’가 있는 곳이 바로 새비재 정상 부근의 ‘타임캡슐공원’이다. 타임캡슐공원은 방사형으로 12개의 원형블록이 조성돼 있는데, 한 블록 당 400여 개의 캡슐을 설치할 수 있다. 타임캡슐은 100일, 1년, 2년, 3년 후에 꺼내 볼 수 있다. 타임캡슐에 뭔가를 넣어둔다는 것은 과거의 일을 확인하지 않은 채 미래로 건너가고, 그렇게 건너간 미래에 과거를 꺼내보는 것이다.

여기서 두위봉을 거쳐 종착지인 화절령에 이르는 길은 석탄의 주요 수송로였다. 꽃꺼끼재라 불리기도 하는 ‘꽃을 꺾는다’는 뜻의 화절령에서 440리 운탄고도 가운데 가장 긴 코스의 마지막 발길이 멈춘다. 새비재에서 시작해 두위봉에서 화절령에 이르는 운탄고도 4길은 화절령에서 만항재를 잇는 운탄고도 5길과 함께 운탄고도의 본선을 이룬다. 두 길을 합한 30여㎞는 석탄산업이 활발하던 시절 탄을 가득 실은 대형트럭 ‘제무시(GMC)’가 내달리던 신작로였다.

15.7㎞ - 5길

정선 운탄고도 도롱이 연못. 광부와 광부 아내의 애틋한 사랑이 전해지고 있다

4길이 과거와 미래의 만남의 길이라면 5길은 광부와 광부아내의 애틋한 사랑의 길이다. 화절령에서 정선 하이원스키장이 자리한 백운산, 도롱이 연못, 1177갱, 풍력발전단지, 만항재 야생화공원으로 이어진다.

이 곳에는 강원랜드와 하이원스키장이 자리잡고 있지만 한 때는 정선 사북과 고한은 대한민국의 석탄산업을 주도하던 곳이었다. 5길은 석탄산업이 활황을 누리던 시절에 만들어진 도로다. 제무시가 검은 석탄을 실어 날랐던 길이다. 특히 화절령 근처 도롱이 연못에 얽힌 이야기는 짠하다. 광부를 남편으로 둔 아내들의 애타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게 도롱이 연못이라면 뒤이어 마주치게 되는 1177갱은 동원탄좌의 광부들이 막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화절령 근처에는 도롱이 연못과 아롱이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은 탄광 갱도가 지반침하로 인해 생긴 생태연못으로, 언젠가부터 도롱뇽들이 서식하기 시작했다.

하이원리조트 일대에 조성된 하늘길,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원 트레킹 코스다.

사고 이후 화절령 일대에서 살고 있던 광부의 아내들은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하기 위해 연못에 살고 있던 도롱뇽에게 오고 가며 기도를 했다. 그 기도들이 모이고 모여 도롱이 연못이라고 부르게 됐다. 연못에 살고 있는 도롱뇽이 생존하는 한 탄광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서 광부의 아내들은 도롱뇽의 서식여부를 늘 확인했다. 연못을 향해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할 때 도롱뇽을 발견하면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이 곳에는 하이원리조트 일대에 조성된 하늘길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원 트레킹 코스다. 민영탄광으로 최대생산량을 기록했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개발한 최초의 갱도인 1177갱도가 있는데, 고한 사북지역 탄광개발의 시발점이 된 의미 있는 갱도다. 이 갱이 개발되면서 화절령 주변에 약 10여개의 군소탄광이 생겨났고, 채탄된 석탄은 트럭으로 인근 함백역까지 운송됐다. 이때 만들어진 길이 지금의 운탄고도다.

함백산소공원 인근에 있는 만항재는 해발 1330m로, 대한민국에서 차량을 이용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 고려 말 또는 조선 초기에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에 위치한 광덕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두문동에서 살던 주민 일부가 정선으로 이주해 살면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이곳에서 가장 높은 만항에서 소원을 빌었다고 해서 ‘망향’이라고 불리다가 후에 망향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만항재는 천상의 화원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다닌다. 봄부터 가을까지 풍성한 야생화, 수시로 밀려 오는 안개의 풍경, 그리고 겨울의 눈부신 설경이 아름답기만 하다. 유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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