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역사의 숨결, 삼척에서 깨어나다
흥전리 사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
통일신라 유물 대거 발굴 학술연구 기여
삼척도호부 관아 복원 2024년 완공 예정
‘관동팔경 제1경’ 죽서루 국보 승격 절차
이승휴 선생 ‘제왕운기’ 천은사에서 탄생
불교문화유산 재조명 등 선양사업 활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다. 누가 한 말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녀와 역사문화 현장을 탐방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유행이다. 다음 세대에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알리고 보존하면서 길이길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런 가운데 삼척에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흥전리 사지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됐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에는 일제 강점기 때 철거돼 90년만에 복원사업이 진행중인 삼척도호부 관아지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됐다. 1년 사이 삼척의 찬란한 문화유산 2곳이 연거푸 정부의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여기에 고려 3대 역사책 가운데 하나이자 우리 민족의 대서사시인 ‘제왕운기’를 저술한 동안거사 이승휴 선생이 머물던 삼척 천은사의 불교문화유산에 대한 재조명 사업도 이제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천년고도’ 삼척의 찬란한 역사문화유산을 찾아 길을 떠나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삼척 흥전리 사지(寺址·절터)’
삼척 도계광산 부근의 옛 절터가 문화재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대 초반이다. 이 곳은 2003년 당시 지표조사와 삼층석탑 실측조사 등을 통해 신라시대의 다양한 석조문화재와 기와조각 등이 수습되면서 당시 대규모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됐으나 10년 넘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후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중요 폐사지 시발굴 조사사업’ 가운데 하나로 2013년부터 2020년까지 9차례에 걸친 시·발굴이 진행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완전한 형태의 청동정병(靑銅淨甁) 등 국보급 유물을 비롯해 신라시대 국왕의 고문 역할을 한 승려를 지칭하는 ‘국통’(國統)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문 조각, 섬세하고 화려한 장식의 금동번(깃발) 등 학계가 주목할 만한 문화유산이 잇따라 출토됐다. 높이 약 35㎝ 청동정병 2점은 매우 희소한 통일신라 청동정병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로 출토됐다. 9세기쯤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번 청동정병은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지정된 고려 시대 청동정병(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국보 제92호)보다 제작 시기가 앞선다.
또 절터에서 ‘국통(國統)’과 ‘화상(和尙)’ 등이 새겨진 비문 조각이 출토돼 국가에서 임명한 큰 스님이 있었고 ‘범웅관아지인(梵雄官衙之印)’이 새겨진 청동인장이 발견돼 문헌으로만 확인되던 승단조직 실체가 처음 증명됐다. 여기에 한국에서는 처음 확인된 투조 금동번(幡)과 금동사자상 등 유물이 출토돼 통일신라시대의 화려한 불교문화와 승단 조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 밖에도 귀면와(도깨비 얼굴을 새겨 장식한 기와), 곱새기와, 연화문·당초문이 새겨진 다량의 암·수막새 등이 무더기로 출토됐다. 학계에서는 그동안의 연구와 유물로 미뤄볼 때 이 곳에 당시 위세가 높은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척시는 이번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지정을 계기로 보다 체계적인 학술 연구 및 복원·정비사업 등을 통해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 행정과 군사 중심지 ‘삼척도호부’
관동지역 정자(亭子) 가운데 으뜸인 삼척 죽서루(보물 제213호)를 품고 있는 삼척도호부 관아 유적에 대한 복원사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오는 2024년쯤이면 옛 관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시는 100억원이 넘는 예산을들여 삼척도호부 관아유적인 객사(진주관, 서·동익헌, 내삼문, 서·동익랑, 응벽헌)를 비롯해 동헌과 내삼문 등을 복원한다. 삼척도호부는 조선시대까지 행정과 군사 중심 역할을 했으나 일제 강점기 때인 지난 1934년 대부분 건물이 철거됐다.
시는 복원에 앞서 지난 2010~2016년 사이 4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객사인 진주관과 내삼문, 응벽헌 등 건물지를 조사했다. 또 동헌 관련 건물지와 수령이 거처한 내아 건물지, 연근당지 등을 비롯해 그동안 문헌기록에서만 알려졌던 고려시대 토성 일부까지 확인했다. 특히 신라시대 수혈(竪穴·땅 표면에서 아래로 파 내려간 구멍) 주거지가 죽서루 주변 일대에서 다수 확인됨에 따라 삼척도호부 관아 일원이 ‘신라 실직주’의 중심지라는 점도 증명됐다. 여기에 조선시대 유구 하층에서 고려시대 유구 일부가 확인되고, 신라를 비롯해 고려 전시기에 해당하는 기와류와 도자기류 등도 출토돼 이 곳이 신라는 물론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 까지 오랜 시간 삼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 같은 문화역사적 가치 등을 인정받아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 ‘삼척도호부 관아지’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고시했다.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2000년)과 삼척 준경묘·영경묘(2012년)에 이은 세 번째이다. 삼척도호부가 특별한 것은 무엇보다 관동팔경 가운데 제1경으로 손꼽히는 죽서루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삼척시는 보물인 죽서루를 국보로 승격시키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어 향후 삼척도호부 관아 유적 복원사업과 연계한 동해안 대표 역사문화 관광지로 거듭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 삼척의 숨겨진 보물 ‘천은사’
고려 3대 역사책 가운데 하나이자 우리 민족의 대서사시인 ‘제왕운기’를 저술한 동안거사 이승휴 선생이 머물렀던 삼척 천은사. 제왕운기는 그가 고려 충렬왕 때 고쳐야 할 폐단 10개 조를 올려 파직된 이후 삼척으로 내려와 미로면 두타산 자락인 구동, 현재의 삼척 천은사지 용안당(容安堂)에서 찬술했다. 이승휴 선생이 71세 되던 1294년(충렬왕 20년) 용안당을 간장사(看藏寺)로 개칭해 불가에 희사했고, 이후 1889년 (고종 26년) 다시 천은사로 바뀌었다. 고려말 외세에 굴복당할 때 겨레의식을 일깨운 역사서인 제왕운기를 집필해 국가의 보물로 남긴 이승휴 선생의 업적과 정신은 현대에 까지 이르고 있다. 삼척시와 동안이승휴사상선양사업회는 매년 천은사 내 동안사와 죽서루 일원에서 동안대제, 전국학생백일장, 사생대회 등 ‘이승휴 제왕운기 문화제’를 열고 있다. 여기에 이승휴 정부표준 영정제작 사업도 펼치고 있다.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두타산과 이어진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천은사에는 민족의 대서사시 제왕운기가 탄생한 ‘이승휴 유허지’가 있다. 이승휴 선생이 머물던 구동, 천은사지는 신라 경덕왕 17년(758년), 서국에서 건너온 두타삼선이 산의 세 곳에 연꽃으로 표식을 남겼는데, 이 표식을 따라 남쪽에 금련대(현 영은사), 북쪽에 흑련대(현 삼화사), 서쪽에 백련대(현 천은사)를 건립한 것을 기원으로 삼는다. 천은사에는 극락보전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삼존불과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통일신라 시대 양식의 소형 금동불이 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최전성기의 양식을 계승한 유물로서 신체와 대좌의 비례가 조화를 이루고 있고 인체 표현도 섬세해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극락보전 안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삼존불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가까이 모시고 있다. 이처럼 찬란한 민족 역사와 불교 문화를 품고 있는 천은사의 유산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구정민 koo@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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