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노동과 학습권 모두의 폐해, 특성화고 현장실습
왜 국가는 직업계고 현장학습제도를 포기 못할까. 문제가 많다면 개선의지는 있는지 모르겠다. 청소년들이 위험한 환경에서 목숨을 잃고 있는데도 말이다. 일터에서의 존엄성은 고사하고 차별 및 부당대우에도 적절한 권리구제 수단도 없다. 현장실습생의 신분은 학생이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노동자와 유사한 일을 수행한다. 그렇다 보니 학생이 일을 하는지 일하는 학생인지 구분도 힘들 정도다. 직업계고 현장실습은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그리고 일반고 직업반 학생이 참여한다. 직업교육이 청소년의 학습권보다 강조되면서 피해가 적지 않다. 인문교육 미흡, 진학 결정의 정보 부족, 노동권·건강권 침해 등이 언급된다.
2011년 A자동차 공장의 실습생 뇌출혈부터 2021년 여수 요트업체 실습생 사망사건까지. 지난 10년 동안 실습과정에서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사고가 적지 않은데도 정부는 제대로 파악조차 안 하고 있었다. 현황 파악이 안 되니 어떤 예방조치를 할지 마련되지 않았다. 현장실습생 산재특례제도가 1998년부터 시행됐는데도 말이다. 현재 직업계고 7만7053명이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방치되어 있다. 실습학생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기업 인력 공급의 화수분처럼 활용되고 있다. 실습생을 노동력 제공의 도구로 바라보는 인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0년 이후 현장실습 대책을 무려 10차례 발표했다. 그렇지만 현장실습 산재·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 학생 14.9%(3865명)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 하고 있다. 과연 이게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인가.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부터 중대재해법의 적용 제외 사업장이다. 안전 보장장치 없는 위험한 일터에 청소년들을 내모는 것이 정상인가. 최소한 노동안전이나 기준이 보장되지 않는 곳과 야간근무 등 불규칙한 일들이 많은 곳에는 현장실습이 배제되어야 한다. 최근 직업교육 과정에서 산업안전문제가 포함되긴 했으나 포괄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한다.
사실 현장실습은 “진로와 관련하여 취업 및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기술 및 태도를 습득할 수 있도록”한 취지가 있다. 직업현장에서 실시하는 교육훈련과정 내지 다양한 직업적 체험과 현장 적응력 제고를 위해 현장실습은 교내 실습, 현장 체험 학습 등으로 운영된다. 대체로 산업체 파견형을 지칭한다. 1963년 학교 내 실습시설을 갖추도록 규정한 산업교육진흥법이 그 시초로 볼 수 있다. 그런데 1973년 법률 개정 후 국가는 직업계고 학생들이 재학 중 기간산업체에서 일정기간 현장실습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강제했다. 과거 독재정권 시기 입법 조치는 산업체에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2년 제1회 ‘아동노동이 없는 미래’라는 주제를 내걸고 아동노동 캠페인을 시작하고 있다. 물론 취업 최저 연령 협약(138호, 1973년)과 아동노동의 가장 나쁜 형태의 협약(182호, 2020년)을 기본 협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전 세계 1억5000만명의 아동노동 중 절반가량은 위험한 작업에 내몰려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연소노동자보호법을, 뉴질랜드는 도제 학생의 건강권 문제를 법제화했다. 한국은 두 협약 모두 비준했으나 적절한 이행감독과 수단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경제사회노동위와 국가인권위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 노동환경 및 노동인권 개선과제들이 논의된 바 있다.
최근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 보호’ 혹은 ‘일하는 사람 권리보장’ 기본법이 발의되었다. 특성화고 학습권 보장과 교육과정 운영, 노동권과 건강권 보장, 청소년 노동기본권 확대가 이 법률에 포괄되면 좋겠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현장실습제도를 폐지하지 못한다면 국가와 이해당사자들이 견지해야 할 원칙과 방향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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