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국가는 타협하지 않는다

김광일 논설위원 2022. 12. 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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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파업 노조를 향해 “불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불법 쟁의는 ‘얻을 게 없는’ 정도가 아니라 서민과 약자의 생업까지 집단적으로 파괴한다. 경제 동맥을 끊는 강성 노조의 불법 쟁의는 반국가적 행위에 근접한다. 그만큼 국민 고통이 막대하다. 필수 에너지와 건설 자재를 끊는 것은 전기와 수도를 끊는 것에 버금간다. 잘못되면 회사가 쓰러지듯 노조도 존망을 걸어야 한다.

지난달 29일 광양항 입구가 집회 중인 화물연대 조합원들과 이들이 세워둔 화물차로 가로막혀 컨테이너가 반출되지 못하고 그대로 쌓여 있다./연합뉴스

국가는 노조원과 비노조원을 양분하는 게 아니다. 준법 시민과 탈법 집단을 구분할 뿐이다. 국민은 법 테두리 안에서만 무한대로 자유롭다. 그를 보장하려고 공권력이 존재한다. 공권력은 국민이 국가에 위탁한 최상위 강제 수단이다. 제복으로 상징되고 진압 장비를 휴대한다. 이때 국가는 최후통첩 권한과 업무 명령권과 면허 취소권을 갖는다.

국가는 협상하지 않는다. 국가는 처벌한다. 기간(基幹)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테러적 행위’에는 언제든 같다. 상습적으로 폴리스 라인을 넘든, 남의 집 현관을 침탈하든 마찬가지다. 국가는 비타협적 구성체다. 국가는 노사 협상과 쟁의 과정에서 어느 쪽을 가리지 않고 불법 행위자에게 배상을 물리고 죗값을 치르게 하는 주체다. 국가는 협상 수완을 발휘하는 당자가 아니라 공권력의 삼엄함을 드러내는 심판자다. 이 역할이 뒤집힐 때 국민은 진정한 체제 저항의 명분을 갖는다.

엊그제 만난 은행 임원 한 분이 말했다. 임기 3년인 사용자 대표가 노조에게 항상 무릎 꿇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노조가 쟁의를 일으키면 며칠 뒤 ‘위’에서 전화가 왔다. “사태를 조용히 마무리 지으라”는 지시가 태반이었다. 노조 요구를 적당한 선에서 들어주고 더 이상 언론에 나오지 않게 하라는 뜻이다. 물론 ‘위’는 사용자의 임면권자다. 청와대, 중앙정부 부처, 감독기관 등이다. 이걸 무시하면 목이 달아났다. 절절한 현장 증언이다.

사용자 대표의 목이 스티로폼이라면 노조 위원장의 목은 강철로 돼 있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 불법을 주도하던 끝에 감옥에 붙들려 가도 지위는 강고하다. 게다가 노조 전임은 10년씩 앉아 있는데, 사용자 임기는 고작 3년이니 협상 테이블은 애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노조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짓이 반복돼 왔기에 고질병이 된 것이고, 국가가 앓는 질병, 즉 ‘한국병(病)’이 돼버린 것이다.

파업은 노조가 사용자를 상대로 벌이는 쟁의다. 법이 보장한 권한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도 국민을 볼모로 삼을 수는 없다. 비노조원을 상대로 해서도 안 된다. 지금껏 불특정 다수가 고통을 호소했지만 법과 원칙이 무너져 있다는 자각 증세마저 없었다. 고질병은 치유 불가능 상태로 악화됐다.

반세기 전 일본은 극렬 좌파가 개입한 노동 쟁의로 폭동 수준의 대혼란이 벌어지곤 했다. 화염병 투척, 경찰 구타, 사용자 감금, 출입구 점령, 시설 방화처럼 전쟁 같은 불법이 반복됐다. 이것을 잠재운 것은 철저한 형사 처벌과 끝을 보는 손해 배상이었다. 형사 책임은 당사자만 구속되면 되지만 민사 소송은 전혀 달랐다. 노조 집행부의 재정을 빈 깡통으로 만들고, 전체 노조원의 봉급이 압류되는 지경으로 이어졌다. 노조원 가족들이 나서서 불법 쟁의를 막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와 사법부가 합심하고 엄정할 때 가능한 일이었다.

폴리스 라인은 광장에도 그어져 있고, 법조문에도 들어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을 보면 각종 유형의 불법적 쟁의를 금지하는 조항이 10군데도 넘는다. 지금껏 노조는 이것을 “여봐란 듯이” 뭉갰다. 오히려 가슴에 붙이는 투쟁의 훈장쯤으로 여겼다. 국가도 “으레 그러려니” 했다. 무법천지가 된 책임은 양쪽에 있다. 노조는 안 지키고 국가는 방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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