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옛것과 새것이 뒤섞인 거리…눈 오는 날 연인과 함께 걸어보시라

기자 2022. 12. 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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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정동 옛 법조 단지
1971년 대법원, 2021년 대법원 터.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1988년 발표된 이문세의 히트곡 ‘광화문 연가’는 제목에 ‘광화문’이 들어 있으나, 그 가사에서 연인들이 걷는 곳은 광화문이 아니라 ‘덕수궁 돌담길’과 언덕 밑 ‘정동길’이다. 두 사진은 지금도 연인들이 데이트코스로 많이 찾는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이 만나는 조그만 사거리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촬영한 것이다. 사거리를 둘러싸고 동북쪽에는 덕수궁, 서북쪽에는 미국대사관저, 서쪽에는 정동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1971년 사진에서 벽돌로 만든 육중한 문 뒤로, 나무에 가려 반쯤 보이는 오른쪽의 갈색 건물이 대법원 청사이며, 옥상에 높은 철탑이 있는 건물은 법원과 검찰이 나누어 쓰고 있었다. 즉 이 일대가 각급 법원과 검찰청이 모인 법조 단지였다. 낮은 언덕 위에 자리한 대법원 청사는 1928년 일제가 경성재판소로 지은 건물이었다. 사진 왼쪽으로는 덕수궁 돌담이 보인다. 권위의 상징인 법원과 검찰 청사답게 정문 앞에는 ‘택시출입금지’ ‘제차통행금지’라는 입간판이 서 있다. 흰 교복을 입은 여학생도 눈에 띄는데, 교복으로 보아 당시 선망의 대상이던 경기여고생인 듯하다. 이 주변에는 이화여고, 배재고교, 경기여고, 서울고교 등 학교가 많았으나, 1980년대 모두 한강 이남으로 이전하고 이화여고만 남았다.

2021년 사진을 보면, 대법원 정문은 없어졌고, 뒤쪽으로 서소문 거리를 따라 높은 고층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1975년 지어진 옛 대검찰청 청사의 윗부분도 보인다. 역시 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대법원 청사는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사한 뒤,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철탑이 사라진 건물을 포함한 법원, 검찰청 청사들은 서울시청 서소문 청사로 쓰이고 있다. 원래 서울시청 이전 예정지였던 서초동에 법조 단지를 조성하면서, 서울시와 법원·검찰이 땅을 맞바꾸었기 때문이다. 덕수궁 돌담길은 시민들이 걷기 좋도록 인도를 넓히고 차도를 줄였다. ‘광화문 연가’에 나오듯이 흰 눈이 내릴 때, 이 거리를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그리고 서울시청사로 사용되는 옛 대검찰청 청사 13층의 ‘정동전망대’에 꼭 올라가 보길 권한다. “근대 역사의 현장” 정동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 칼럼에 게재된 사진은 셀수스협동조합 사이트(www.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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