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온·오프라인 장쩌민 애도 물결…"현체제에 대한 불만 반영"(종합2보)
(홍콩ㆍ베이징=연합뉴스) 윤고은 조준형 특파원 =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의 사망 소식에 중국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애도 물결이 일고 있다.
장 전 주석 사망 소식은 지난달 30일 발표되자마자 곧바로 중국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에서 검색어 1∼3위를 차지했다. 장 전 주석 부고 기사를 실은 중국중앙TV(CCTV)의 웨이보 계정에도 순식간에 100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고 홍콩 명보가 1일 전했다.
웨이보를 포함한 중국 SNS에서 많은 중국 네티즌들은 고인을 '장할아버지', '어르신' '위인' 등으로 칭했고, '가는 길 평안하시라'는 등의 애도를 표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중국을 변화시킨 당신의 열정을 잊을 수 없다", "최고의 시대를 열었다", "개방의 자유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 분"이라는 등의 헌사를 보내기도 했다.
홍콩 더스탠더드는 "수많은 중국 웨이보 이용자들이 장 전 주석의 죽음을 '한 시대의 종말'로 표하며 애도하고 있다"며 "많은 이들이 그를 '장할아버지'라 부르면서 그가 자신들의 유소년·청년기를 대변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일부는 장 전 주석의 죽음을 시진핑 현 주석에 대한 은근한 비판의 기회로 삼는다"고 소개했다.
이어 "마치 지금까지 일어난 것은 충분하지 않았다는 듯 2022년은 한 시대가 끝났음을 더 잔인한 방식으로 고한다", "장쩌민의 시대는 최고로 번영했던 시대는 아니었지만 좀 더 관대했던 시대다", "나는 그에 대한 많은 비판을 들었다. 하지만 그가 비판적 목소리를 허용한 사실은 칭송받을 만하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고 전했다.
장쩌민 전 주석의 재임 시절 사진과 동영상들도 잇달아 올라왔다. 영어, 러시아어와 루마니아어에 능통했던 점, 카메라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는 등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도 네티즌들 사이에서 회자했다.
장 전 주석이 세상을 떠나기 전부터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한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에서 국민들에게 소탈한 아저씨 이미지로 다가왔던 장쩌민에 대한 향수가 중국 사회에 존재했다.
앞서 장 전 주석이 권력을 놓은 지 10년여 지난 2015년 중국에서는 장쩌민 '숭배 놀이'인 '두꺼비 숭배'(膜蛤文化)가 시작된 바 있다.
두꺼운 검은 뿔테 안경, 커다란 입 등 외모 때문에 두꺼비라는 별명을 가진 장 전 주석의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되짚는 일종의 '네티즌 놀이'다. 그러나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시진핑 정권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집권 당시에는 인권 탄압과 부패 문제, 불같이 화를 내는 성격 등이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시진핑 체제에 대한 반감이 장쩌민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간 누리꾼들은 장 전 주석이 공개석상에서 보여준 화통하고 다소 코믹했던 모습을 소환해내며 조롱하고 풍자하는 듯하면서도 그를 '어르신'으로 부르며 숭배 놀이를 전개했다.
이들은 장 전 주석이 1996년 스페인을 방문해 후안 카를로스 전 국왕을 만난 자리에서 난데없이 빗을 꺼내 들어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이나, 2000년 이스라엘 사해 방문 때 두꺼비 같은 자세로 수영을 즐기는 모습, 바지를 높이 끌어 올려 입는 '아저씨 패션' 등에 '열광'하며 댓글을 달았다.
장 전 주석의 마지막 생일이었던 지난 8월 17일 즈음에는 그의 다양한 표정을 모은 합성 사진이 올라오곤 했다.
그가 2000년 홍콩 기자의 끈질긴 질문에 버럭 화를 내며 쏟아낸 발언들도 지금까지 회자하고 있으며 해당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당시 젊은 기자가 말만 하면 바로바로 끊고,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훈계했다. 특히 "투 영(too young)", "투 심플, 섬타임스 나이브(too simple, sometimes naive)"라고 영어를 섞어가며 말했다.
중국 누리꾼들은 장 전 주석을 희화화하면서도 국가 지도자로서는 파격적인 면모를 보여줬던 그에게서는 시진핑 현 주석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인간미가 느껴진다고 반응한다.
특히 큰 소리로 말하고 화통하게 웃으며 영문 시와 경구 등을 자주 인용한 그의 모습을 인상적이라고 보고 있다. 장 전 주석은 박학다식했고 오페라와 팝송을 즐겨 불렀으며, 평상시에는 웃는 낯으로 "좋아, 좋아"를 연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누리꾼들이 자신을 '하쓰'(蛤絲·두꺼비 팬)라고 칭하고 장쩌민을 '어르신'이라고 부른 것은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책이라고 명보는 설명했다.
장 전 주석의 정치적 고향격인 상하이 등을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추모 열기도 뜨겁다.
CCTV 영상에 따르면 1일 장 전 주석 시신을 베이징으로 이송하기 위해 운구차량이 상하이 화둥병원을 떠나 훙차오 공항으로 가는 동안 도로 양쪽에 시민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같은 날 고인의 고향인 장쑤성 양저우의 장 전 주석 고택 담장 앞에는 수북이 쌓인 조화들이 골목길을 '점거'하다시피 했다.
일각에서는 장 전 주석의 사망이 최근 중국에서 일고 있는 '제로 코로나' 반대 '백지 시위'를 자극할 수도 있다고 보기도 한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는 직전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에서 촉발됐다.
후야오방은 1982년 총서기직에 올라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꼽혔으나, 1986년 발생한 학생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1987년 실각했다.
이후 1989년 4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고, 그의 죽음은 같은 해 6월 톈안먼 민주화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그러나 톈안먼 유혈 진압의 여파를 수습하며 1인자가 된 장쩌민 역시 공산당 일당 권위주의 체제의 충실한 계승자였기에 냉정히 말해 현 백지시위 참가자들에게 '대안적 존재'로 부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견해도 많다.
그럼에도 고도의 디지털 기술까지 가세한 시진핑 시대 '사회 통제'의 강도가 20년 전 장쩌민 시대에 비해 더 강력하다는 적지 않은 대중의 인식이 장쩌민에 대한 노스텔지어로 연결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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