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학문의 전성기는 무지갯빛 다양성과 관용 속에서 꽃피었다[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

기자 입력 2022. 12. 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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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카타르 월드컵과 이슬람 황금시대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인공지능 속 ‘알고리즘’의 어원은 이슬람 수학자 알 콰리즈미에서 비롯
그가 활동하던 시기의 바그다드는 자유로운 발상이 넘쳐난 학문의 허브
칼리프의 개방성·유연성이 큰 역할…동서고금 과학은 폐쇄주의와 상극
SAOT라는 새 알고리즘 도입한 카타르 월드컵, 인권침해 논란 등 오명
이슬람의 영광은 한두 가지 첨단기술이나 대규모 행사로 재현되지 않아

사상 최초로 중동에서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이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카타르의 이웃 나라 사우디아라비아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강호 아르헨티나를 2 대 1로 격침시키면서 이번 대회 첫 이변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사우디의 거짓말 같은 승리에는 이번 대회에 처음 도입된 최신 기술도 한몫했다. 바로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기술(SAOT)이다. 오프사이드는 축구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반칙으로 공격자가 상대방의 최후방 2번째 수비수보다 앞서서 공을 넘겨받을 때 성립한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비디오 보조심판(VAR) 제도가 도입되었다. 오프사이드를 포함해 경기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을 비디오로 판독하는 제도이다. 경기장의 심판이 판정하는 것보다야 VAR이 더 정확하겠지만, VAR도 어쨌든 사람이 화면을 돌려보며 판정을 내리는 체계이다. 그래서 시간도 꽤 걸린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처음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돼 오프사이드를 1차로 판단한다. 경기장 지붕에 설치된 12대의 카메라가 축구공과 각 선수의 29개 신체부위를 추적해 매초 50회 정보를 전송한다. 공인구 알 리흘라 속에는 관성측정센서가 내장돼 있다. 관성측정센서는 3방향의 속도 변화와 3방향의 회전 등을 감지할 수 있으며 매초 500회 정보를 송신한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인공지능이 종합적으로 분석해 오프사이드 여부를 판독하고 VAR 조정실에 통보된다. 조정실의 비디오판독 심판이 인공지능의 판독 결과를 경기장의 주심에게 알려주면 주심이 최종적으로 판정을 내린다. SAOT는 오프사이드 상황을 3차원 화면으로 재생해 경기장 화면에 띄워준다. 판정시간도 단순 VAR의 평균 70초에서 25초로 대폭 줄였다.

SAOT는 아르헨티나의 득점 상황을 세 차례나 오프사이드 반칙으로 잡아내 무효로 만들었다. 제아무리 천하의 메시가 이끄는 최강의 공격진이라 하더라도 무려 세 번이나 오프사이드에 걸린다면 공격의 칼날이 무뎌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강팀에 유리한 방향으로 판정을 내릴 수도 있는 인간 심판의 편향 가능성을 SAOT는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이번 월드컵이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로 마무리되든 역사는 아마도 카타르 월드컵을 최초로 인공지능이 판정에 도입된 월드컵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하필 사상 첫 ‘중동’ 월드컵이라는 사실도 재미있다. 인공지능을 대유적으로 표현하는 말 중에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있다. 알고리즘이란 일반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절차이다. 알고리즘의 어원은 이슬람 황금시대의 위대한 수학자였던 알 콰리즈미(780?~850?)이다. 알 콰리즈미는 십진법 아라비아 숫자체계를 도입하고 전파했으며 대수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책이라 평가받는 <완전제곱과 등식 계산 개요(al-Kitab al-mukhtasar fi hisab al-jabr wa‘l-muqabala)>를 저술했다. 이 책에서 알 콰리즈미는 2차 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소개했는데 지금 우리가 푸는 방식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al-jabr’(항을 옮김)는 대수학을 뜻하는 영어 algebra의 어원이 되었다.

알 콰리즈미가 활동했던 시대는 이른바 이슬람 황금시대의 초기로 아바스 왕조가 중동 일대에 세력을 떨치던 때였다. 특히 7대 칼리프 알 마문(786~833)은 학문적 전성기를 이끈 인물로 수도 바그다드에 ‘바이트 알 히크마’(지혜의 전당)라는 학술연구기관과 천문대를 건립하기도 했다. 그 이전까지는 기독교나 고대 그리스 문화를 의료, 종교 활동 등 실용적인 목적으로 도입했다면 알 마문 대에는 학문 자체가 성장하고 이전의 지식들이 융합돼 종합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 결과 바그다드가 학문의 허브로 부상하며 자유롭고 창의적인 발상들이 넘쳐났다. 특히 알 마문은 각종 문헌의 수집과 번역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의학이나 천문학, 산술, 연금술 등을 다루는 실용서뿐만 아니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대 그리스 문헌 등이 바이트 알 히크마에서 아랍어로 번역되었다. 아바스 왕조의 방대한 번역운동은 거의 2세기에 걸쳐 진행되었다.

흔히 유럽에서는 아바스 왕조에서 꽃핀 과학의 황금시대를 ‘그리스 과학의 냉장고’라 한다. 그만큼 고대 그리스 문명을 방대하게 번역해 잘 보존해서 유럽에 다시 넘겨주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슬람 황금시대는 단지 그리스 문명을 보존하는 데에 국한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와 전통 이슬람 문화는 물론 페르시아나 인도 등 주변의 다양한 문명들이 하나의 용광로에서 뒤섞여 새로운 이슬람 문명으로 융화되었다. 그 결과 수학뿐만 아니라 의학, 광학, 연금술 등이 후대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알 라지(854~926)는 중세 최고의 임상의학자로 불렸으며 백과사전식 의서인 <총서>를 출판했다. 그 뒤를 이은 이븐 시나(980~1037)는 ‘아랍의 아리스토텔레스’, ‘학문의 왕’, ‘의사의 왕자’라 불릴 정도로 모든 분야에서 출중한 능력을 선보였다. 특히 그때까지 알려진 거의 모든 의학지식을 집대성한 <의학정전>은 유럽에서 17세기까지도 의학의 기본서로 사용되었다. 13세기의 이븐 알 나피스(1213~1288)는 처음으로 혈액의 폐순환을 발견했다. 이는 유럽보다 약 300년을 앞선 발견이었다.

이븐 알 하이삼(965~1040)은 현대 광학의 선구자이다. 그가 쓴 <광학의 서>에서 빛의 직진과 굴절, 반사 등 기본적인 빛의 성질을 연구했다. 이는 뉴턴의 <광학>보다 거의 700년을 앞선다. 또한 눈의 해부학적 구조와 빛의 관계로부터 물체에서 튕겨 나오는 빛이 눈을 자극해 우리가 물체를 보게 된다고 분석해 눈에서 광선이 나와 사물을 보게 된다는 고대 그리스의 주장을 극복했다. 나아가 가설검증을 위한 실험통제 방법을 개발해 과학적 방법론을 제시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이 밖에 자비르 이븐 하이얀(721~815)은 이슬람 시대의 위대한 연금술사로 황과 수은의 비율을 조절해 모든 금속을 만들 수 있다는 ‘황-수은설’을 제기했다. 이는 이후 유럽 연금술의 기본 토대가 되었다. 연금술(alchemy)은 훗날 근대적인 화학(chemistry)으로 발전한다. 알칼리(alkali), 알코올(alcohol) 등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이슬람 연금술의 흔적이다.

이슬람 문명이 찬란한 황금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최고지도자인 칼리프의 개방성 및 유연성, 학문을 존중하는 풍토, 국가적 지원 등이 큰 역할을 했다. 반면 종교적 극단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에는 이슬람 과학이 쇠퇴의 길을 걸었다. 특히 전쟁이 빈발하고 경제가 파탄나면 학문을 뒷받침하던 체계 자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학문, 특히 과학은 극단주의나 폐쇄주의와는 상극이다.

카타르 월드컵은 SAOT라는 새로운 ‘알고리즘’을 도입해 1200년 전 알 콰리즈미의 전통을 훌륭히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카타르 월드컵은 개막 전부터 카타르의 인권침해 등 논란으로 얼룩졌다.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6700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사망해 ‘피의 월드컵’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이들뿐만 아니라 카타르에서는 여성과 성소수자를 억압한다는 인권침해 논란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종교적 율법의 영향으로 돼지고기가 반입되지 않고 음주나 복장에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는 현실도 세계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대회조직위원회는 이런 논란들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오직 축구에만 집중하자는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의 호소에 전혀 일리가 없지는 않다.

지난달 28일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조별리그 포르투갈과 우루과이 경기 도중 한 남성이 그라운드에 난입했다. 이 남성은 이란 여성 인권을 지지하는 티셔츠를 입은 채 무지개 깃발을 들었다. AFP연합뉴스

그럼에도 우리 인간의 삶은 너무나 총체적이어서 찬란한 빛의 향연 속에서도 온갖 무지개색의 빛깔과 그림자까지 있는 그대로 하나의 세상으로 받아들인다. 아시아 최강의 축구 실력으로 오랜 세월 우리를 괴롭혔던 이란의 전사들은 첫 경기 때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조국의 국가를 차마 큰 소리로 부를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이란 또한 국가와 종교가 여성의 인권 및 이를 지키려는 수많은 이란인들을 억압하고 있다. 선수에게도, 관중에게도, TV로 중계방송을 보는 세계 모든 시청자들에게도 그들의 삶에서 축구만 따로 떼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태극전사들과 이들을 응원하는 우리 국민들의 가슴 한 구석에는 이태원의 아픔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이란을 첫 경기에서 6 대 2로 대파한 잉글랜드는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이른바 ‘무지개 완장’을 차지 않은 것으로 자국에서 비판을 받았다. 무지개 완장은 유로2020 대회부터 네덜란드 주도로 차별에 반대하고 다양성과 포용성을 옹호하기 위해 착용하기 시작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네덜란드를 비롯해 잉글랜드, 웨일스, 벨기에, 독일, 스위스, 덴마크 등 7개국이 무지개 완장을 차기로 결의했으나 FIFA의 강력한 제재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첫 경기에서 대승을 거둔 자국 선수들에게 이란 선수들에 비해 수치스럽다며 비겁하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스포츠에서만큼은 강자도 약자도 모두 차별 없이 똑같은 규칙과 똑같은 조건에서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겨루기 때문이다. SAOT가 각광받은 것도 마찬가지이다. 차별과 피의 무덤 위에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스포츠정신을 구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형용모순인가. 이슬람의 영광은 한두 가지의 첨단기술이나 대규모 국제행사를 개최하는 것만으로 재현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여러 논란 속의 카타르는 지금 한국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의 첫 경기가 있었던 11월24일에는 국내에서 화물연대가 파업에 들어갔다. 빵 공장 혼합기에 젊은 청춘이 목숨을 잃은 것이 엊그제 일이다. 성소수자를 향한 종교와 일부 정치인들의 공격은 여전히 기세가 등등하다. 온갖 종류의 차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은 아직도 여의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카타르는 사실상 세습국왕이 지배하는 나라이지만 대한민국은 엄연히 민주공화국이다.

▶이종필 교수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이종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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