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거듭하는 러시아, 중앙아시아·캅카스서도 ‘종이호랑이’ 신세
옛 소련 국가들, 서방과 협력 나서
구소련의 일원이었던 중앙아시아 5개국(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과 캅카스 3개국(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은 냉전 종식 이후에도 러시아의 막강한 군사적·경제적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러시아는 이 지역을 자국의 ‘뒷마당’으로 여겼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하면서 중앙아시아·캅카스 국가들과 러시아 사이의 역학관계가 변화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은근히 모욕당하고 있다면서 이 추세는 러시아 경제가 타격을 받으면서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자흐스탄이 대표적이다. 카자흐스탄은 최근 중국, 튀르키예, 유럽과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를 이탈한 수백개 서방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 징집 명령을 피해 탈출한 러시아인 수만명의 중간 기착지 역할도 하고 있다.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경제, 에너지, 교육 부문 협력을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파리를 방문한 것은 7년 만이다.
앞서 지난달 23일에는 샵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파리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만났다. 같은 날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자국 수도에서 열린 옛 소련권 군사·안보협력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정상회의에서 지난 9월 CSTO 회원국인 아르메니아와 비회원국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무력 충돌이 벌어졌을 때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러시아가 CSTO를 주도하는 국가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회의장에 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나 마찬가지다.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은 지난 10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독립국가연합(CIS) 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우리도 존중받고 싶다”면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과거 소련처럼 대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WP는 푸틴 대통령의 약화된 영향력은 지난 9월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에서도 포착됐다고 전했다. 정상들과의 약속 장소에 늦게 나타나기로 악명 높은 푸틴 대통령이 정시에 도착해 인도,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 키르기스스탄 정상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영향력이 약해진 틈을 타 서방이 이 지역 국가들에 구애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샤를 미셸 유럽의회 의장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 지난달에는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고위대표과 도날드 루 미 국무부 차관보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을 방문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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